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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정우 Aug 05. 2021

달리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외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욕심껏 채운 배를 부여잡으며 한시바삐 소화를 시키기 위해 가까운 거리를 굳이 돌아가고 있었다. 한적한 길 위에서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다, 사람 하나 없는 탁 트인 주차장을 만났다. 별안간 뛰고 싶다는 생각이 울컥 올라와 함께 걷던 부모님께 뜬금없이 말했다. “나, 갑자기 달리고 싶다!” 거침없이 대화의 맥락을 끊어버린 딸에게 아빠는 “뛰어. 저기 끝까지 뛰어갔다가 다시 돌아와.” 하고 간단하게 답했다. 


허락을 구한 건 아니었지만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탕,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호흡이 차올라 고통스럽다가 이내 온몸에 피가 돌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몇 시간이고 이렇게 뛸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에 사로잡힌 채, 마치 들판을 뛰노는 한 마리의 망아지처럼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러너스 하이: 장시간 지속되는 운동을 했을 때 느낄 수 있는 행복감과 도취감. 


헤로인이나 모르핀, 마리화나를 투약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과 유사하다고 한다. 가벼운 뜀박질로 시작해 그렇게 정신을 놓고 사방팔방을 뛰어다닌 걸 보면, 아마도 그때 이 ‘러너스 하이’의 언저리 즈음에 가 닿았던 것 같다. 이후로도 나는 종종 사람이 없는 대로변을 (마음만은) 전광석화처럼 뛰어다니고는 했다.


독일에 온 후 한동안은 달리기를 잊고 지냈다. 사실 너무 바빠 시간이 없다는 것은 다 핑계고, 단지 이전처럼 땅을 박차고 나갈 에너지가 없었다. 수업에, 과제에… 할 일을 끝내고 나면 혼이 쏙 빠져서, 맥없이 침대에 누워 핸드폰의 작은 화면에만 시선을 고정하다 잠에 들기 일쑤였다. 그러다 우연히 달리기를 주제로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푸르른 바다와 산을 양 옆에 두고 달리는 출연진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작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갈망을 실행으로 옮기는 데에는 1분도 채 걸리지 않건만! 조용한 탄성은 게으름의 벽에 가로막혀 미세한 울렁임만 남긴 채 수그러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기는 끊임없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샀구나, 내가 또. 이 많은 걸..’ 매일 아침 정신을 차려보면 인터넷으로 주문한 러닝화와 스포츠웨어, 각종 장비들이 문 앞에 배달되었다. 그렇게 달리기에 대한 그리움이 땔감처럼 차곡차곡 쌓여갈 때 툭 하고 불씨를 놓은 것은, 단거리 달리기 선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 <런 온>이었다. 스포츠를 다루는 여느 작품들처럼, 레이스에 빗댄 인생 명언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왔다. 문득 ‘그냥 달리고 싶어서’ 미친 듯이 달렸던 그날이 떠올랐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오전 7시, 경쾌한 알람이 울려 퍼진다. 남의 속도 모르고! 굳은 결심의 효과였을까, 평소와는 다르게 천근만근의 눈꺼풀을 이겨내며 잠에서 깼다. 단단히 옷을 챙겨 입고, 간단히 스트레칭을 시작한 후 이어폰을 꽂았다. 차가운 아침 공기를 마주하기 전 굳게 닫혀있는 대문 앞에 서서 마치 시합을 앞둔 선수처럼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냥 달려보자. 할 수 있는 만큼만 한 번 해보자. 


음악 스트리밍 어플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런 온> OST의 드럼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주차장에서 미친 듯이 달렸던 그날처럼 힘껏 땅을 박차며 달려 나갔다. 밤새 내린 비의 냉기와 축축함이 채 가시지 않은 공기가 뺨과 온몸을 휘감고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두 다리는 정신없이 바람을 가르며 내달렸다. 사람 하나 없는 고요한 도로 위,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레드카펫처럼 길 위에 깔리며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양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래 이 맛에 달리기 하지! 그렇게 내달리기를 5분. 생각보다 위기는 빨리 찾아왔다. 숨이 가빠오는 것은 물론이고 온몸에 힘이 빠져 엉터리 예술가의 마리오네트처럼 팔다리가 각자의 리듬으로 팔랑거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둔 코스의 10%도 채 가지 못하고 달리기의 로망은 고작 5분 만에 비극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산소가 모자라 서였을까, 그날은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랜만의 격한 운동으로 화들짝 놀라 한껏 움츠린 근육들을 달래고 이틀 뒤 오전 7시. 다시 대문 앞에 섰다.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해보자. 오늘은 계획한 코스를 모두 마치는 거야. 기억해, 씁씁후후! 느린 속도로 걷기 시작해 천천히 속도를 높여 조깅하듯 달려 나갔다. 천천히, 그리고 다시 빨리. 속도의 변화에 따라 몸에 오는 부담감을 느끼며 조금씩 내게 가장 안정적인 속도를 찾아나갔다. 딱히 편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힘들지도 않은 빠르기로 그날은 계획한 모든 코스를 완주했다. “빨리 달리는 것보다 오래 달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작자 미상의 명언, 혹은 조언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나만의 페이스를 찾고 나니 풍경과 사람이 보였다. 길 양 옆에 펼쳐진 푸른 들판과 그와 경계를 마주한 여린 빛의 하늘이, 농장의 동물과 사람들이 맞이하는 아침이 오감으로 느껴졌다. 길 위에서 만나는 일면식 없는 동네 사람들도 반가운 러닝 동료들이 되었다. 눈이 마주치면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는데, 그 인사는 “좋은 아침!”이 되기도 하고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짓는 미소가 되기도 한다. 


달리기도 나름 스포츠라 그런가. 묘한 경쟁심리가 생길 때가 있다. 언젠가 한눈에 봐도 프로 같은 복장을 하고 엄청난 속도로 나를 앞질러 나가는 러닝 선배(?)를 보았던 적이 있다. 어어, 너무 빠른데, 나보다 더 빨리 가겠는데! 빨리 걷는 것과 진배없는 속도로 달리는 주제에, 가당찮은 무근본의 경쟁심에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실은, 나는 언제 저렇게 달릴 수 있을까하는 부러움의 발로였다. 눈을 꼭 감고 그저 받아들였다. 그의 속도가 나의 속도가 될 수는 없음을. 들쑥날쑥한 리듬과 도저히 믿기 힘든 느린 속도로도 언젠가는 목표지점에 도착한다는 것은 경험이 알려준 소중한 가르침이다. 그렇게 결승선에 다다랐을 때 시간과 기록에 관계없이 엄청난 뿌듯함이 가슴을 채우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는 경쟁자가 아니라 러닝 메이트가 될 수 있었던 건, 우리 각자가 자신만의 목표와 속도가 있음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발에 닿는 흙의 감촉과 뺨을 감싸는 차가운 공기, 오가는 사람들과의 따뜻한 인사로 이제는 매일 아침, 이 지치는 레이스가 비단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님을 확인하며 위로 받고 있다.  


달리기의 로망을 실현하게 해 준 드라마 <런 온>의 마지막화에서 주인공들은 해피엔딩의 정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자가 그리는 서로 다른 행복한 결말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이다가 결국은 합의를 보지 못하고, 맥주가 가득한 잔을 부딪히며 외친다. 완주를 위하여! 


달리기의 해피엔딩은 무엇일까. 모르긴 몰라도 결승선을 넘는 그 순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는 성취감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혼자만의 레이스를 해나가고 있다. 힘껏 내달리다 고꾸라질 수도 있고, 앞질러 나가는 이들을 보며 조바심이 나 괴로울 수도 있다. 그렇게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면서 자신의 속도를 찾아가게 될 테다. 고통의 순간에 찾아오는 러너스 하이의 아이러니처럼, 이 기나긴 레이스의 해피엔딩은 결승선이 아닌 우리가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찾아온다. 산뜻한 바람 속에, 트랙 위에서 마주치는 이들의 미소와 인사에, 언제든 힘들 때면 쉴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벤치 위에, 어디에나 ‘해피’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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