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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정우 Aug 05. 2021

파란 일상, 나는 우울과 춤을 춘다

청명한 하늘, 눈이 부시게 흩날리는 햇살, 아주 약간의 따스함을 머금은 산뜻한 바람. 독일에 사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반드시 포기해야만 하는 3대 기상 상태이지 않을까. 이곳에서는 계절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대부분 비가 오기 전이거나, 비가 오거나, 혹은 비가 온 후의 날씨가 기본값처럼 설정되어있다. 그래서인지 하늘은 늘 구름을 몇 겹씩 껴입고는 좀처럼 말간 얼굴을 내보이지 않는다. 두 볼에 빵빵하게 물을 채우고 언제든 퉤, 하고 쏟아낼 준비가 되어있는 회색의 구름에게는 도무지 다정한 마음이 들지가 않는다. 그 체한 듯 질려있는 낯빛이 청명하고 드높은 파랑의 하늘을 파랑도 검정도 아닌 심해의 모래바닥으로 순식간에 뒤집어 놓기 때문이다.


마천루가 즐비한 서울과는 달리 내가 살고 있는 튀빙겐에서는 높은 건물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덕분에 굳이 고개를 뒤로 꺾지 않아도 자연스레 시선은 하늘과 맞닿는다. 안타깝게도 매번 마주치는 하늘은 회색 옷을 레이어드 한, 어딘지 조금 애매한 파란빛을 내뿜는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발아래로 툭 떨어져 가라앉는 것을 보면, 우울을 뜻하기도 하는 영어의 Blue라는 단어는 어쩌면 독일의 하늘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날씨에 영향을 잘 받지 않지만, 유학 생활에서 느끼는 각양각색의 설움과 이 흐린 날씨의 콜라보는 그 누구라도 기어코 우울의 늪에 빠트리고 만다. 


모처럼 행정 처리가 필요해 학교에 방문한 날이었다. 공공장소와 실내에서는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기 때문에 독일어를 알아듣는 일이 곱절로 어려워진 터였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직원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조금만 크게 이야기 해주시겠어요?“하며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그는 크게 한숨을 쉬고 성가시다는 듯한 눈동자로 날 쳐다보며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다시 말해주었다. 순간 모멸감이 일었다. 평소 독일인들 특유의 무뚝뚝함이 그렇게 거슬린 적이 없었는데, 유독 그 표정과 말투가 마음에 작은 생채기를 냈다.


독일에 온지도 벌써 2년이 되었다. 누구는 1년이면 귀가 트이고 2년이면 말이 트인다는데, 왜 나는 이 짧은 문장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내뱉어야 하는 걸까. 왜 여전히 상대방이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남몰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걸까. 왜 친구의 말에 즉각 대답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서야 '아, 이 말을 할 걸.' 하며 머리를 쥐어뜯어야 하는 걸까.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충분히 채워지지 못하니 존재마저 옅어지는 것 같았다. 한국어를 하는 자아와 독일어를 하는 자아, 그 둘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도 커서 스스로에게 잦은 실망을 안겼다. 어떤 날은 모두가 내 독일어를 두고 비웃을 것만 같아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물론 팬데믹으로 인해 2년 중 상당 시간을 고립되어 지냈다는 핑계가 있었지만, 그 조건 속에서도 왜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았느냐는 자문에는 당당하게 답할 수가 없었다. 


노력하지 않았다.


한국인이라면 으레 귀결되는 자아비판의 종착역. 노력이라는 단어가 특히나 잔인한 이유는 판단의 기준이 되는 객관적인 지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상한이 없다는 데에 있다. 언제고 나의 상태를 가장 밑바닥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그래서 늘 닿지 않을 저 멀리 꼭대기의 어딘가를 바라보며 고개를 쳐들고 아픈 목을 부여잡는 수밖에는 없다. 그렇게 스스로를 고문하며 다다른 곳은 모멸감과 열패감으로 가득 찬 웅덩이다. 첨벙첨벙, 차가운 물이 감각을 깨우고 나서야 웅덩이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리지만 이미 흥건히 젖어 귀찮게 달라붙는 바짓단의 축축한 감촉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회색의 아스팔트 위를 걸으며 회색의 하늘을 보는 것이 가끔 괴로울 때가 있다. 언제든 위아래가 뒤집혀도 이상하지 않을, 모래시계에 갇힌 듯한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회색의 공기 속에 엷게 배어있는 불안과 우울은 일상이 된다.


우울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친구가 있다. 누구나 그러하듯 나 역시도 우울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인데, 차이가 있다면 나의 경우는 그 순간의 침울함을 떨치려 내뱉는다는 것이고 그 아이는 역설적으로 우울이 주는 가치를 설파한다는 것이다. 내겐 철천지 원수 같은 우울이 그에게는 더없는 예찬의 대상인 모양이었다. 그에게 우울이란 일정 기간 생겨났다 사라지는 어떤 감정적인 상태가 아닌, 일종의 삶의 한 구간처럼 보였다. 어느 날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잘 지내? 나는 요즘 너무 우울해. 아무것도 손에 잘 안 잡히고.“

돌아오는 답은 역시나 예상 밖이다.

"친구야, 우울할 때 네 가장 깊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 나는 그래서 우울이 좋아.“


우울과 좋음이 서로 상응하는 단어였던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하긴, 우울할 때만큼 스스로에게 빠져드는 시간은 없으니.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가장 밑바닥에 있을 때 본연의 모습을 마주하기 마련이다. 나는 생각보다 나 자신에게 무심하고, 무지하다. 물론 더 깊은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한 별도의 안전장치는 필요할 테지만, 우울이 가져다주는 의외의 효과에 대한 친구의 주장에는 이견이 없다. 우울한 시간은 그저, 그간 살피지 못하고 지나친 상처들을 돌보는 시간이다. 축축하고 불쾌할지언정 이 웅덩이를 지나고 나면 분명 한 발짝 나아가 있다.


19세기 미국에서 노예제로 고통받던 흑인들이 창시한 블루스라는 음악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블루스가 음악보다는 춤의 한 종류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블루스는 고유한 특성을 가진 음악의 한 장르다. 블루스의 어원 또한 음악의 시대적 배경과 크게 멀지 않다. 아프리카 문화권의 장례식에서 입는 옷의 색깔이 청색인 것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우울과 슬픔을 뜻하는 ‚블루 데빌스‘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어찌 되었든 당시 이 음악을 즐겨 부르던 이들의 우울과 슬픔의 정서가 녹아있는 장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블루스는 후에 재즈와 소울, 로큰롤 등의 장르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데, 우울과 슬픔이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장르로 각기 다르게 발현되었다는 것이 묘한 위로를 준다. 나의 우울도 가끔은 폭발적이고 또 가끔은 부드럽고 충만한 에너지로 변모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다. 슬픔을 음악으로 승화시켜 위안을 받았던 그들처럼, 내 안의 우울이 다양한 힘으로 변환되어 새로운 연료가 될 수 있기를.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우울을 밀어내기보다 기꺼이 함께 춤을 추겠다. 배경음악은 니나 시몬의 <Love me or leave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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