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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구 Jul 08. 2019

일간 크로스핏 : 맛없는데 맛있는 음식.

외할머니와 아빠 그리고 요리에 관한 짧은 이야기.

크로스핏을 처음 시작하는 이들의 목적은 대부분 다이어트이다. 나 역시 그런 그들과 마찬가지로 매일 크로스핏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체중조절이다. 먹는 걸 좋아하는 그중에서도 특히 빵, 과자, 라면처럼 체중 증가로 직결되는 군것질을 좋아하기에 운동을 안 하고 방심하기 시작하면 체중은 미친 듯 올라간다. 더불어 이러한 몸 상태를 가지고 연애를 시작했기에 체중 조절을 위해 먹기 위해 더더더더 더욱 운동에, 크로스핏에 집착하고 있다.  


미한과 나 그러니까 우리는 어느 연인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많이 검색하고 찾아다니는 곳은 '맛집'이다. 그러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연인 치고 우리의 입맛은 참 겸손하다. 어디를 가더라도 늘 3인분 이상 주문하고 그 맛에 너나 할 것 없이 감탄하며 맛을 즐긴다. 물론 같이 먹는 사람이 미한이기 때문에 어디서 무엇을 먹든 맛있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전투 식량도 늘 남기지 않고 먹은 나의 입맛은 장담컨대 겸손하다.


내 입맛이 겸손해질 수 있는 이유는 어려서부터 맛없는데 맛있게 먹어온 음식들 때문일 것이다. 흔히들 전라도 음식은 무조건 맛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전라도 음식이 무조건 맛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는 것을.  우리 엄마의 고향은 전라도이기에 외할머니표 전라도 음식을 쉽게 접했다. 더불어 어려서부터 전라도 음식이 제일 맛있다는 소리를 어른들의 입이며 TV며 어디에서건 쉽게 들어오며 커왔다. 그렇게 자라오며 외할머니가 보내주신 외할머니표 음식을 먹다 보니 우리 외할머니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고 세뇌당하게 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외식이 잦아지는 나이가 됐고, 진짜 맛있는 전라도 음식도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외할머니 음식이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 이 사실 덕에(?) 자연스럽게 외할머니 음식을 베이스로  요리해서 우리(형과 나)에게 주던 아빠의 음식도 그리 맛있는 음식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됐고, 형이 어느 날부터  아빠의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를 준 이유도 알게 됐다.(TMI : 뽀시래기 명구 시절부터 우리 집 요리 담당은 아빠였다.) 하여튼, 나는 어려서부터 그리 맛있는 음식이 아닌 음식들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 세뇌당하며 먹어왔고 그 덕에 어떤 음식을 먹어도 감탄하며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겸손한 입맛을 가지게 됐다.


2016년 외할머니가 더 이상 음식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셨고 얼마 뒤 우리 곁을 떠나셨다. 외 할머니가 떠나가신 뒤로 우리 가족은 외할머니가 해주신 마지막 김치, 마지막 참기름, 마지막 볶음 깨, 마지막 고추장, 마지막 한과를 아끼고 아껴먹으며 외할머니를 추억했다. 맛없지만, 맛있었던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외할머니의 음식들을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외할머니 음식과 더불어 특별한 맛을 내던 아빠의 맛없지만 맛있는 음식을 양껏 먹고 있다.


아빠는 40년 가까이 다닌 직장을 퇴직한 뒤 집에 온 뒤로 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하나 있다.


"아빠가 맛있는 거 해주랴?"


나는 그 질문을 받을 때면 마음 한 편으로 가슴이 찡해진다.(정말 복합적인 생각이 들지만 그러기에 너무 오랜 시간과 문장이 필요하기에 거두절미해서 표현해보련다.) 아빠는 40년 가까이 다닌 직장의 상실을 통해 본인 존재의 상실감은 물론이고 능력의 무력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더 이상 가족을 위해 내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은 무력감 말이다. 그 무력감 속에서 완전한 존재의 상실을 하지 않기 위해 힘겹게 붙잡은 것이 젊은 시절부터 아들들을 위해 해 주었던 요리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빠에게 늘 쉽고 명쾌하게 대답한다.


"알았어 먹을게, 근데 뭐 맛있는 거 해주려고?"


요즘 운동 끝나고 집에 돌아간 늦은 밤, 아빠와의 수다를 곁들인 맛없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하게 저녁 식단을 망치고 있다. 언제고 분명 외할머니의 음식처럼 아빠가 해주는 이 맛도 그리워지고, 못 먹게 될 터이니 먹을 수 있을 때 양껏 먹어둬야겠다 라는 마음으로. 이거 먹고 로잉 1000미터 더 타지 뭐 하는 마음으로.  


오늘의 일간 크로스핏

201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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