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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구 Dec 01. 2019

일간 크로스핏 : 양심의 총량을 키우는 운동

행동하는 양심


늦은 시간 도로변 신호를 지키는 사람에게 양심을 지켰다는 명분으로 당시 가전제품 중 가장 비쌌던 냉장고를 선물해주던 티브이 예능 프로그램 '양심냉장고'는 화제성과 시의성 그리고 시청자들의 엄청난 관심 덕분에 1996년 TV 방영과 함께 국민 프로그램이 됐다. 그 덕분에 양심냉장고의 진행을 맡던 이경규 역시 국민 MC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23년 전 쪼꼬미 했던 나는 당연하게도 '양심 냉장고'라는 TV 프로그램이 주는 시의성을 읽지 못했다. 그 때문에 쪼꼬미 명구에게 '양심 냉장고'는 그저 온 가족들과 함께 둘러앉아보는 프로그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점차 나이가 들고 '양심' 혹은 '도덕'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감을 느끼고서야 '양심 냉장고'라는 프로그램이 주었던 시의성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감은 나를 향한 무거운 잣대가 됐고, 주변 사람들이 답답할 정도로 작은 양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행동하게 됐다. 아빠와 함께 심야영화를 보고 집에 가는 길 시간은 새벽 1시를 한참 넘겼다. 그 시간, 우리 아파트 단지 내 상가 바로 옆에 있는 작은 횡단보도에는 언제나 차도 사람도 없다. 그렇기에 늘 많은 사람들과 차들이 상황에 따라 효율적으로 유연하게 신호를 활용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고, 우리 아빠 역시 내가 목격한 그런 유연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그날도 아빠는 신호등 앞에서 몇 초간 주변을 살핀 뒤 차도 사람도 전혀 없음을 확인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했다. 그 찰나 나는 아빠의 팔을 잡으며 "아빠 갑자기 왜 건너? 아직 신호 안 바뀌었어" 말과 함께 아빠의 무단횡단을 저지했다. 그 순간 아빠와 나는 눈이 마주쳤고, 아빠의 눈빛에는 답답함이 역력했다. 하지만 아들의 행동에 저항 없이 크게 수긍해주었다. "차가 하나도 없는데? 그래 기다리자 아들이 그러자는데"라는 대답과 함께. 이러한 내 행동은 여자 친구에게도, 엄마 아게도 향했고 그럴 때면 그들 모두 아빠가 내게 보냈던 같은 답답한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 언제부턴가 나는 이게 편하다. 누군가에게는 답답한 고집일 수 있겠지만 내게 이 행동은 '양심상' 맞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양심을 지키고 지키지 않고의 득과 실의 차이가 얼마 나지 않지만, 운이 나쁘다면 양심을 지키지 않음에 대한 그 실이 목숨을 내놓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언제나 목숨을 건 양심의 시험대에 올라 선택을 한다. 그리고 나와 우리가 가진 양심에 대한 시험대는 신호등과 횡단 보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 여기저기에서 우리는 시험대를 인지하지 못한 채 시험대에 오르기도, 예상하지 못한 장소와 순간에도 우리가 가진 양심에 대한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때로는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조차 나를 상대로 양심의 시험대에 올린다. 그 시험대에 오를 때면 '쓰레기는 먼저 본 사람이 줍는 것이다.'라는 생각 쪽으로 양심의 기울기가 기우르며 쓰레기를 줍는 선택을 한다. 



이렇게 거리 위에 버려진 쓰레기만큼 마주 할 수 있는 뜻밖에 시험대가 내게는 하나 더 있다.  바로 크로스핏 WOD에서 주어진 동작을 수행하며 횟수를 셀 때 맞이하는 양심의 시험대이다. 아무래도 나를 포함한 많은 생활 크로스피터들이 나와 같은 양심의 시험대에 오른다 감히 판단해본다. 크로스핏 WOD를 진행할 때 내가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남들이 어떻게 하든, 몇 개를 하든 횟수를 세가며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경쟁자나 페이스 메이커가 있지 않은 이상 말이다. 그렇기에 WOD를 진행하며 힘들어 죽을 것 같은 순간 내 우뇌가 이 시실을 인지하는 순간 나는 양심의 시험대에 올라가 악마의 달콤한 속삭임을 듣기 시작한다. 



"한 개 더 안 한다고 아는 사람 없어 :)..."


"이 삼초 일찍 시작한다고 아는 사람 없어 :)..."



이 시험대에서 언제나 악마의 속삭임을 뿌리치고 양심을 지키는 쪽을 선택하지는 못한다. 다만, 열의 아홉은 양심을 지키는 쪽을 선택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양심을 지키는 선택이 당연한 선택이지만, 이 당연한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얻게 되는 뿌듯함은 가을철 풍년을 맞이하는 쌀만큼 풍족하다. 그 풍족함은 양심을 지키지 않은 것보다 한 개를 더 했음에 얻게 되는 근육이나 체력 등과 같은 육체적 성장뿐만 아니라, 양심의 총량을 성장시켰다는 기분에서 오는 풍족함에 분명하다. 크로스핏은 종합적인 육체 능력 성장뿐만이니라, 양심의 눈을 뜨고 양심의 총량을 키워주는 운동이기도 한 것이다. 더 강한 신체능력을 넘어 더 강한 행동하는 양심을 만들어주는 운동이랄까? 정말이지 크로스핏은 하면 할수록 매력적인 운동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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