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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Mar 22. 2020

n방, 그리고 어떤 놀이터를 위하여

딸아이가 20개월쯤 되었을 무렵, 캐나다에서 있었던 일이다. 둘째 임신으로 만삭의 나는 벤치에 앉아 있었고, 딸아이는 미끄럼틀 옆 모래를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한 9살쯤으로 보이는 백인 남자아이 두 명이 미끄럼틀로 뛰어왔다. 두 아이는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기도 하고 마징가 제트 모양으로 두 손을 앞으로 뻗어 거꾸로 타고 내려오는 등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아장아장 걷던 딸아이는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미끄럼틀 옆에 서서 아이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한 아주머니가 뭐라 뭐라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 ‘설마 아시안 나가라 그런 소리인가?’ 싶어 화들짝 벤치에서 몸을 일으켜 다가갔다.

“얘들아, 지금 옆에 어린 친구가 있잖아! 그럴 때는 너희가 그렇게 놀면 안 돼! 아이가 보고 따라 하면 위험할 수 있는 걸 왜 모르니! 어린 친구가 옆에 있을 때는 더욱 너희가 바른 자세로 미끄럼틀을 타야 하는 거야. 알겠니?”라며 엄청 화를 내시며 말하던 아주머니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작은 입모양으로 “(Sorry~)”라고 했다. 아,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배웠던 순간.


요 며칠 n방 사건으로 시끄럽다. 모두의 마음과 가치관도 시끄러울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과 생각이 부딪히며 시끄럽다. 적지 않은 여성들이 남성 혐오를 넘어 섹스 공포증에 준하는 충격을 받고 있음이 보인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성(性)의 역사에서 그것 자체가 유희이자 놀이가 되었던 때가 있었을까? 어쩌면 우리가 짐승인지 인간인지 스스로 몰라하던 아주아주 오래전 옛날 그랬을까, 그러나 문명이 존재한 이래 섹스가 무조건 즐거웠던 적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특히나 남성 중심의 권력 질서로 연속해왔던 모든 문명의 여성들에게는 피임기구가 나오기 이전 시대까지는 ‘유희’로 누렸을 확률은 더더욱 낮은 것이고.

그러나 20세기를 넘어 21세기, ‘어느 정도는 먹고 산다’는 세계 각국은 이제 생리대 사용법과 콘돔 사용법을 같이 가르치는 상황이 되었다. 혼전 섹스를 찬성하든 말든, 종족번식 이외의 ‘유희’로서의 섹스는 이미 통용 중이다. 다만 문화권별로, 국가별로, 또한 세대별로 인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섹스’는 거대한 놀이터를 형성하고 있다. 현대적 성(性)을 당신 인정을 하든 안 하든, 이미 놀이의 가치관과 맞물려 있는 상태에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당장 나의 부모님 세대는 ‘손만 잡아도 결혼해야 하는’ 인식이 일반적이었고, 그들의 자녀였던 우리들의 경우, 80년대 후반 중고등학교 남학생이었으면 인쇄매체나 VHS로 된 누드 화보나 에로 영화 정도를 접했으며, 우리들의 사촌 동생들은 90년대 일본판 야동 테이프를 돌며 보며 자랐다. 여학생들의 경우는 각자의 정도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또래 남학생들보다 조금 늦게 성인 영상을 시각적으로 체험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춘기를 지나며 성인의 문턱을 넘으며 우리는 미디어 세대에 걸맞은 경험을 스텝을 밟았을 뿐이다. 여기에 ‘더럽다’, ‘추하다’, ‘역겹다’는 혐오 감정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생리 과학적으로 이러한 과정과 현상 자체가 더럽고 추하고 역겨운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국 대학원 시절 알게 된 사우디아라비아 남성이 있다. 나름 왕족 혈통인 이 친구는 능력 있는 시각디자이너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귀국하여 사우디에서 교수로 살고 있다. 우리는 이후로도 몇 년 동안 자주 메시지와 안부를 주고받는 친구였다. 2003년이었나, 그 친구와 오랫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친구가 약혼자와의 성관계 문제로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했다. 사우디에서는 여성의 처녀성이 아직도 너무나 중요한 문제라서, 자기들은 항문섹스(애널)를 주로 한다는 것인데, 자긴 그것이 싫다고. 21세기를 살고 있는 ‘인간’으로서 속해 있는 문화가 아직 수용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부작용이다. 우리나라도 한때 처녀막 재생수술, 일명 ‘이쁜이 수술’ 광고를 흔히 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분명, 감추고 가리고 누른다고 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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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끌었던 영국 드라마 <오티스의 비밀상담소 (Sex Education)>에는 고등학교 아이들이 오르가즘을 느끼는 방법에서부터 게이들의 항문 성교법, 레즈비언 성관계 회복에 대해 코믹하고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개인에 따라서는 이 또한 ‘역겹고, 더럽고, 추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이미 시대는 그렇게 처리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 시대가 우리 아이들이 곧 만나게 될 시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만든 영국의 성범죄율과 성범죄 처벌 수위를 확인해보라. 우리보다 상황이 좋다.)

2010년 지금의 아이들을 생각한다. 며칠 전, 초등학교 5학년 남아가 어린 여자 아기를 다치게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초등학생 상당수가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아이들 중에서 성인 영상에 노출되는 아이들의 연령과 수치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정확한 통계가 어렵겠지만, 당장 아들이 있는 각 가정이라면 알 것이다. 결단코, 정말로, 당신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아이들은 이미 “노출”되어 있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와 <모모>를 보며 펑펑 눈물을 쏟아냈던 나의 초6 아들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복잡한 레이어의 갖가지 논의점들이 있겠지만, 다 걷어내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n방 사건으로 남성 혐오로 빠지는 것은 반대한다. 섹스 혐오로 자신의 건강한 성 인식을 다치게 해서도 안 된다.
남녀가 서로 합의 하에 이루어지는 섹스는 그 자체로 건강하고 좋은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세계 각국에 엄연히 존재하는 성인 산업들, 각종 섹스 산업들 그 자체도 "유희하는 섹스"라는 거대한 놀이터 안에 있는 철봉, 그네, 미끄럼틀일 수도 있음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다만, 모든 놀이터에는 안전을 위한 규율이 있다.


n방은 일반 성인 산업도, 섹스 산업에 포함시킬 수 없는 악질적인 비즈니스였다. 더군다나 미성년 어린 여학생들이 노예처럼 학대를 받았던 표현할 길 없는 범죄행위다. 이런 종류의 ‘성인 산업’이 우리 아이들이 결국 찾아오게 될 어떤 ‘놀이터’에 있음이 확인되었다면, 당장 나의 20개월 딸아이를 위해 9살 아이들을 나무라며 뛰어나왔던 그 아주머니처럼 뛰어나와야만 한다. 그리고 말리고, 막아야 한다.


“얘들아, 지금 옆에 어 친구가 있잖아! 그럴 때는 너희가 그렇게 놀면 안 돼! 아이가 보고 따라 하면 위험할 수 있는 걸 왜 모르니! 어린 친구가 옆에 있을 때는 더욱 너희가 바른 자세로 미끄럼틀을 타야 하는 거야. 알겠니?”라고 꾸짖었던 그 아주머니의 말처럼… n방의 운영자들과 참여자 모두의 단호하고 엄중하고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시 우리들의 안전한 놀이터를 확보해야 한다. 나의 아들과 나의 딸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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