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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May 06. 2020

어린이가 사랑받는 곳에는 어린이날이 없다

어린이날

어린이가 사랑받는 곳에는 어린이날이 없다.


“(…) 16년 전 나온 <구름빵>은 엄마, 아빠, 누나, 남동생의 이야기인데요. 무신경한 저런 설정이 얼마나 많은 엄마, 아빠, 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지 정말 미안합니다. 다양한 가족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어떤 구성이라도 사랑만 있다면 그걸로 완벽한 가족, 가정이니까요. 그래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아빠(<알사탕>),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상한 엄마>), 혈연관계가 없는 가족(<삐약이 엄마>)의 모습을 그린 거예요.”
(4월 18일 한겨레 백희나 작가 인터뷰 기사 중에서)



조금 전 운전하면서 93.1 FM 라디오를 듣는데, “어린이가 사랑받는 곳에는 어린이날이 없다”는 멘트와 함께 백희나 작가의 코멘트가 소개되었다. 마을 전체가 함께 어린아이들을 사랑하며 돌보는 것이 “당연”한 곳에서는 아이들을 위하자는 모토와 주의를 가지고 특별한 날을 지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래 그렇지 하며 뭔가 툭 슬픔 같은 것이 내려앉았다.

가족’이라는 단어 하나에 담긴 어떤 이데올로기에는 사실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남녀의 성적 사회적 인식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당연하다. 쉽게 바뀌어지지 않는 ‘습관’이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애를 써 가며 조금씩 고쳐보겠다는 의지 없이는 변화되지 않는 것이 사람에 대한 “문화적 위치”의 해석이니까.

우리나라만 해도 당장 정론지, 각종 방송사며 거의 모든 언론 매체에서 “엄마”는 “아이”와 세트 구성이다. 아이들이 이슈가 되는 모든 뉴스에는 반드시 엄마가, 조금 양보해서 아빠까지 필수적 타이틀로 매칭이 된다. 대한민국의 2020년 현재, 과연 모든 어린이는 엄마-아빠와 함께 어린이날의 특별 대우를 받고 있을까?

2015년의 자료에 따르면, 양부모 가정 가구수는 4.2% 줄었으며 한부모 가정이 2.1% 늘었다고 소개되어 있지만 정확한 통계는 되지 못한다. 2018년의 뉴스 기사를 보면, "여가부에 따르면 동거가족과 조손가족은 현재까지 제대로 된 통계가 없어 현황 파악 자체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즉, “엄마, 아빠 그리고 나”를 생각하지 못하는 어린이들 규모가 매우 커지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 고개를 돌려 동사무소를 가 보면, 얼마나 많은 미성년자들이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민자들이 많은 다인종 국가들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각종 어린이의 교육자료에 “전형적인 과거 가족 구성”을 탈피한 콘텐츠 개발을 강조해왔고, 우리나라 또한 꽤 오래전부터 정책적으로 이에 대해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안다. 그러나 정책의 단계를 넘어, 우리들 개개인의 인식의 단계에서는 아직도 기존의 관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당장 며칠 전에도 아이들의 온라인 개학 현황을 다루는 보도의 대부분은 엄마들에 대해 쓰고 있으며 심지어 타이틀마저 “엄마 개학인가”가 버젓이 뜬다. 아직도 우리나라 말에, 언어에 "미성년 보호자"에 대한 공식적인 단어가 없다.(care giver의 한국말이 있는가?) 그저, 엄마 아빠다.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어린이. 어린 사람은 절대적 약자다. 보호와 관심 속에서 최대한의 자립 연령까지는 성장시킬 수 있는 공동체에 건강한 미래가 있다. 우리는 아직도 어린이날이 필요하다. 아직도 어린이날에 “엄마 아빠와 함께 나들이” 타이틀을 단 기사가 쏟아지는 것을 보니 멀었다.
어린이는 모두의 아이들이다.




World Children's Day 2019

https://youtu.be/DtzlxpDRi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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