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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Oct 16. 2017

에릭 피슬,  Daddy’s Gone, Girl

에릭 피슬이 다시 담은 지금, 미국.

이중적 상징을 적나라하고도 은밀하게 드러내는 에릭 피슬(Eric Fischl, 1948~)의 작품들입니다. 

지난 봄에 전시된 그의 2016 최신작들은 특히 트럼프 아메리카 시대를 관음하게  줍니다.

 

 "Late America", Eric Fischl (2016)

“Late America”에서의 'Late'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벌거벗은  수영장 바닥에 퍼질러 낮잠을 자는 건지 (공화당일 수도 있고), 심장마비가  응급사태인지 (기막혀하는 자유당일수도 있고) 알  없는 나체의 남성 뒤로 아른하게 보이는 남아메리카계의 일꾼들누워 있는 백인 남성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성조기 타월 두른 소년그 모든 것이 늦었거나, 엎질러졌거나차마 슬픈 우리 모두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Daddy's Girl", Eric Fischl (1984)

1984년의 "Daddy's Girl"은 아동성애자를 다루었다며 크게 논란이 일기도 했던 작품이죠. 어찌 보면 중산층 백인의 개인 수영장에서 있을 법한 풍경이지만 시선을 달리 보면 매우 유쾌하지 않은 장면이기도 합니다. 


"Daddy’s Gone, Girl", Eric Fischl (2016)

2016년의 "Daddy’s Gone, Girl"은 장례식 복장을 한 채 수영장에서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아마도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후로 추측되는 작품 제목에서 에릭 피슬의 1984년 작품을 떠올려 본다면, 이 두 작품은 세월의 공간까지 끌어안은 연작인 셈입니다. 

수영장에 앉아 술 한 잔 기울이는 중년 여인은 1984년의 "Daddy's Girl"에 등장한 바로 그 아이의 성인 된 모습을 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6년의 "Daddy’s Gone, Girl"은 베스트셀러 소설이자 영화였던 <Gone Girl> 타이틀의 위트 있는 패러디 또한 관전 포인트.


매우 경이로운 풍자와 위트, 그리고 무언가 싸하게 가슴을 찌르고 지나가는 통증이 남겨지는 에릭 피슬의 최신작에서 이 시대의 통렬함이 조금은 아프게 느껴집니다.


참고: <에릭 피셜의 2016년 최신 작품 속에 있는 트럼프 아메리카> 기사



다음 matgrim-artist에서 따로 소개할, 멀티디자이너, WOODKID의 Iron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뛰면서 죽이고 죽어갑니다.


https://youtu.be/vSkb0kDac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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