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악마성

고양이 임시 보호하려다 인간 환멸 느낀 썰

by 구름조각

간혹 너무 끔찍한 범죄에 대한 뉴스나 인간성을 의심하게 하는 뉴스 댓글창에 이런 댓글이 달린다. [사탄: 교수님 진도가 너무 빠릅니다.] 악마 중의 악마인 사탄이 인간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정도록 타락한 인간성을 풍자하는 한 줄이다. 나는 악마들에 대해서 꽤 관심이 많은 편이다. 어린 시절 한창 판타지 소설에 빠졌던 적이 있는데 그때 자주 등장한 소재가 중세시대의 악마들이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이나 서브컬처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굳이 기독교 모태신앙이 아니어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내용일 것이다. 악마들은 다양한 이름과 권능(능력)을 가지고 있고 생각보다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각자의 역할에 따라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극도로 효율적이고 비인간적인 관료주의 제도의 창시자는 사탄의 자식들, 악마들의 발명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식인 사람을 타락시키고 시험하고 지옥 불구덩이에 떨어뜨리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열심히 활동하는 진정한 일꾼들이다.


난 일찍이 학교 도서관에서 중세시대의 많은 악마들의 쓸데없을 정도로 디테일한 프로필을 읽었을 때 '어쩌면 악마는 인간이 자신의 악함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든 상상의 존재'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천국에 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순결을 지키고 많은 금기 속에서 늘 긴장하는 삶을 살아야 했을 중세시대 유럽인들에게도 욕망과 광기가 숨어있었을 것이다. 본디 하나님의 자식으로 태어나 선해야 할 인간이 스스로 타락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기에 악마의 유혹이라는 이름으로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밤 중에 몽정이라도 하고 다음날 죄책감에 고해성사를 하는 젊은 남자에게 몽마(서큐버스)라는 악마는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겠는가. 자신의 성욕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고 더럽기에 나도 모르게 자다가 사정하고만 것은 교활한 여자를 닮은 악마의 유혹 때문이었다 고백하고 헌금으로 죄 사함을 받아 다시 밝은 빛으로 걸어 나가는 역겨운 광경이 눈에 선하다. 그 과정에서 가장 배를 불리는 것은 죄책감으로 신도들을 조종하는 성당과 교회의 권력자들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왜 악마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풀어놓냐면, 버려진 고양이를 돌봐줄 집사를 찾으려는 나에게 놀라운 경고장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나를 타깃으로 하는 경고장이 아니고 세상에 이렇게 많은 악마(같은 인간)들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장이었다. '포인 핸드'라는 유기동물들의 입양을 도와주는 어플에 새끼 고양이들의 광고를 올렸는데 내가 쓸데없이 디테일하게 주소지와 전화번호를 공개해 놓고 '뭣도 모른다'는 티를 낸 게 문제였다. 그걸 보고 걱정이 된 모양인지 익명의 누군가가 긴 글의 링크를 보내준 것이다.


유기묘나 길 잃은 고양이를 발견했을 때는 이렇게!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글의 주요 내용은 나처럼 버려진 고양이의 새 집사를 찾아주겠다는 사람들에게 선량한 얼굴로 접근해 고양이를 데려간 후 학대하거나, 키우는 파충류의 먹이로 주거나, 무려 나비탕을 끓여 되파는 인간들이 있다는 경고였다. 그런 사람들은 사람 좋은 척 속이려 하기 때문에 그가 정말로 고양이를 키울만한 사람인지 분별할 수 있는 기준과 방법들을 상세히 적혀있었다. 그 장문의 글을 꼼꼼히 뜯어보다가 괜스레 체한 것처럼 속이 더부룩해졌다. 내 소화기관들은 개복치 같은 감수성을 가지고 있어서 조금만 심리적 충격을 받으면 활동을 멈춰버린다. 진정작용에 좋다는 캐모마일 차를 끓여 마시면서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글귀를 떠올렸다.

사탄은 예수의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20211015_004048.png 출처:유기묘나 길 잃은 고양이를 발견했을 때는 이렇게!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링크된 블로그 글의 일부인데, 이 구절이 내 소화기관을 멈추게 만들었다. 학대할 동물을 구하기 위해 저런 입바른 소리에 연기까지 하면서 접근하다니...저게 희생자를 찾아다니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과 다를게 뭐란 말인가? 이런 사람들을 걸러내기 위해서 페이스북의 '길 고양이 친구들'이란 페이지에는 애니멀 호더(자신의 사육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많은 수의 동물을 기르는 사람, 동물학대의 일종)나 학대자들의 특징을 게시글로 올려 조심하도록 서로 경고해주기도 한다. 그 게시글들을 읽어보면 이런 학대자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집요하고 지능적으로 유기동물을 데려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11015_004605.png 페이스북 '길고양이 친구들' 페이지 일부 캡처

장문의 블로그 글에는 유기범과 학대범을 가려낼 수 있는 방법이 나오는데 공익성도 있고 긴 글을 보기 좋게 정리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테지 짧게 요약해보려고 한다. 그래도 유기동물의 임시보호나 입양에 관심 있는 사람들, 혹은 생각지도 못하게 유기동물을 구조하게 된 경우에는 길더라도 링크된 블로그의 글을 꼼꼼하게 읽어주면 좋겠다.


<<유기범/ 학대범을 가려내는 법>>
1. 임시보호 계약서, 입양 계약서 작성하기
-법적인 책임을 명시하려는 장치이고 유기한 경우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실내에서 안전하게 키울 것, 외출 시 이동장 이용 의무 표기
-파양 시 구조자에게 돌려보낼 것
-입양 조건 확인을 위해 구조자의 방문과 연락 권한을 인정할 것

2. 신분증 확인

3. 가정방문(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는 상황인지 확인하기)

4. 입양 책임비
-책임비를 받아 동물병원에서 중성화 수술을 시키게 한다거나 몇 개월 후 입양된 동물이 잘 지내는 것을 확인하고 돌려주도록 계약서에 명시하기. 돌려줄 때는 반환이 아니라 용품 지원의 명목으로 돌려줘야 하는데 돈을 반환하게 되면 입양 계약서의 법적 효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5. 방묘문/방묘창(가정방문 시 확인)

6. 그 외 위험요소들(피해야 할 입양 희망인들)
-미혼 동거 커플 : 헤어지면서 유기하는 경우 많음
-신혼부부 : 임신이나 부모님 반대로 유기하는 경우 많음
-미성년자나 20대 초반 : 가족과 보호자의 허락이 필수
-결혼 예정, 군미필 남성, 가족 중 알레르기나 반대가 있는 경우

세상에 인두겁(사람의 형상이나 탈)을 쓴 악마들이 많지만 그런 악마들보다 선량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알고 있다. 오늘 구조된 새끼 고양이들도 수많은 초등학생들이 힘을 합쳐 구한 아이들이고, 그 아이들이 직접 동물병원에도 데려갔고, 지금은 이웃의 집에서 고양이들은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친절하게 임시보호시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익명의 누군가도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정의감이 세상의 거대한 악을 무찌르는 법이다. 그들이 교활하게 우리를 속이려 한다면, 우리들은 더더욱 현명해지고 서로 도우면서 생명을 살리는 데 힘을 보탤 것이다. 그 평범한 사람들 중에 하나인 나도 새벽에 정의감에 불타올라 잠 못자고 이 긴 글을 쓰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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