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고양이
#23
살금살금 아무 일도 없는 척 주방으로 간다.
바스락-
약봉지를 뜯는 소리가 나면
후다닥-
진숙이가 도망치는 소리가 들린다.
머리 좋은 녀석.
동물병원에서 준 약을 며칠 먹였더니
진숙이는 약봉지 소리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침대 밑이나 벽장 안으로 도망쳐 버린다.
그럼 또 약만 타 놓고 한참
딴짓을 하고 있어야 한다.
TV를 보거나 핸드폰을 하면서...
약봉지 소리에 놀란 진숙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슬금슬금 나올 때까지
방심하고 내 무릎에 다시 앉을 때까지
그렇게 가까이 와서 손을 핥을 때쯤
잽싸게 몸통을 낚아채고 입을 벌려 약을 흘려 넣는다.
진숙이는 쓴 약에 고개를 도리질하며 뱉어내려고 한다.
발버둥 치다 손톱으로 내 팔에 한두 개쯤 생채기를 낸다.
"알았어. 약만 먹으면 놔줄게!"
그럼 다시 후다닥-
원망과 배신감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본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그 눈빛이 제법 매서워 서운한 마음이 든다.
"그 약 먹어야 언니랑 오래 같이 살지..."
진숙이는 들은 채도 않고 침대 밑으로 몸을 숨긴다.
#24
친구에게 말했다.
"다시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을 거야."
노을 진 강을 바라볼 때
만개한 벚꽃을 바라볼 때
겨울 냄새 물씬 나는 거리를 걸을 때
고양이와 함께이고 싶다고 바랐다.
강아지를 키우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함께 볼 수 있어서 부러웠다.
반면 고양이에게는 작은 집이 전부니까.
내가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기까지
진숙이는
대구 집에서
창원 집에서
서울 집에서
나의 귀가를 기다리는 것이
삶의 전부였다.
"다시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을 거야.
다시는 누군가가 나만을 애타게 기다리게 만들지 않을 거야."
그러니 진숙이는 내 인생의 마지막 고양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