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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May 11. 2024

내가 없는 하루

    어제는 일을 늦게 마치고도 바로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무거운 다리로 터덜터덜 목적지도 없이 걸었다. 맥주나 칵테일을 한잔 할까 싶다가도 몽롱하게 취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라. 차라리 잠들지 않는 게 낫겠다 싶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잔 마신 때가 저녁 9시 59분. 새벽 2시까지 남은 일을 마무리하고 문득, 나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아닌 것들에 너무 많은 관심을 쏟기 때문일까? 기자란 직업은 본질적으로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나르기 때문에 나의 의견, 나의 감정, 나의 취향은 배제하고 글을 쓴다. 그제야 요즘은 나를 위한 글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회수와 좋아요를 바라고 쓰는 글들은 다소 소모적이다. 미적지근한 반응이나 날 선 댓글들은 알게 모르게 신경을 마모시킨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이미 길들여진 듯이...


    좋아하는 노래를 들었다. 오롯이 나의 감정에만 집중하면서. 하고 싶었던 것들을 생각했다. 해야 할 것들에 밀려난 소망들. 좀 더 나에 대해서 말해본다. 누가 읽던 신경 쓰지 않고. 나만의 취향과 스타일을 찾아본다. 남들이 개성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하여.


    사실 옷이나 인테리어, 향수 같은 것들에 취향이 없다. 남들이 보기 좋다는 것으로 선택한다. 타인의 기준과 취향은 때마다 다르니 일관성 없는 스타일이 모여있다. 타인의 기준을 덕지덕지 모아놓은 꼴라쥬 같은 인간이다. 당장은 눈에 띄고 색다르지만 어지러운 것 같다. 조금 덜어내자고 다짐한다.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너무 많이 주워 삼킨 모양이다.


    마음이 공허할 때는 다시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 투명한 내면에 그의 색이 번지는 것을 보고 싶다.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는 이 밤에도 당장 연결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쩐지 그들도 나처럼 색을 찾지 못한 것 같다. 의미 없이 뒤섞어놓으면 혼탁해질 뿐이라, 다시 지난 사랑을 떠올렸다. 그들의 취향으로 물들어갔던 날들. 그땐 그것이 행복했다.


    헤어진 사람에게 말한 적이 있다.

"난 내가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자랑스러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야."


    그때의 나는 누구였을까? 나는 매일 나와 함께 있는데도 가끔 내가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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