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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Aug 19. 2024

아주 사치스러운 연애

<연애>-버둥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의 지난 과거를 전부 끌어안아야 한다. 살아온 세월만큼 우리 모두 상처를 안고 있기에.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만나는 사람들의 상처도 점점 깊어지는 것을 발견한다. 어떤 상처는 감히 깊이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마음으로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내 삶의 무게도 만만치 않아서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기란 갈수록 어렵다. 지난 사랑이 남기고 간 아픈 기억들은 종종 떠올라 머릿속에 끈적하게 들러붙는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 진저리 친다. 깊은 내면 속 유난히 여린 부분이 있다. 덜 아문 상처가 건드려지면 굳게 입을 닫고 움츠러들게 된다. 상처투성이의 두 사람이 만나 사랑하는 일은 누더기를 덕지덕지 기워 어떻게든 포근한 이불을 만들려는 것 같아 애처롭기까지 하다. 연애는 어쩌면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사치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동생에게 말하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누나, 물들지 않은 사람은 없어.
누구를 만나던 지나온 관계에서 물들었을 거야.

 내가 누더기라고 말하는 것을 동생은 수채화처럼 물든다고 표현한 것이 퍽 기특했다. 녀석이 최근 사랑을 하더니 제법 어른스러운 말을 한다. 사랑이 소년을 남자로 만들었다.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은 깨진 지 오래다. 이제 현실의 연애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처럼 유쾌하지도, 할리퀸 로맨스 소설처럼 낭만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반복되는 직장인의 루틴 속에서 허락된 낭만은 간간이 주고받는 메시지와 퇴근 후 만나는 짧은 데이트가 전부다.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한번 더 돌아보고 자기 전에 통화를 하다 스르르 잠들어버리는 날들이 현실 로맨스의 민낯이다. 그리고 이제는 이렇게 편안하고 평범한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모든 환상을 포기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연애는 쉽지 않다. 왜 나에게는 서로의 일상에 녹아드는 아주 평범한 연애도 쉽지 않은 걸까. 가끔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오히려 연애가 허락된 소수의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사치스럽고 주제넘은 일이라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고 위안할 수 있다면 조금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평범한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사치인거지. 


https://www.youtube.com/watch?v=KJGhKFru3M8

<연애>-버둥

내가 아주 사치스러운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지금 

너는 그걸 함께 하려고 하는 거잖아 지금 

우리가 손을 잡고 누운 방이 둥글게 

둥글게 가라앉아 숨을 쉴 수가 없네 


내가 아주 주제넘은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지금 

너는 그걸 함께 하자고 말하는 거야 지금 

우리가 같이 듣던 음악이 영화가 

침대가 새로운 세계를 만든 거야 지금 


숨기지는 않을 거야 

날 네 것으로, 널 내 것으로 

만들지는 않을 거야 

날 거짓으로 널 환상으로 

기대는 네 무게가 간질이는 내 꿈처럼 

나와 함께였으면 좋겠다 

나와 함께였으면 좋겠다 


너는 아주 당연스러운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지금 

가끔 나는 슬퍼질 수 있겠다 다짐하고 있으니까 

우리라는 말이 널 붙잡고 흔들리게 할 때면 

손을 놓고 멀리 떠나가면 돼 


내가 아주 사랑스러운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지금 

너는 그걸 먼 미래가 돼서야 깨달을 수 있다 해도 

우리가 같이 듣던 음악이 영화가 

침대가 사실 난 지금 모두 마음에 들어 


숨기지는 않을 거야 

날 네 것으로, 널 내 것으로 

만들지는 않을 거야 

날 거짓으로 널 환상으로 

기대는 네 무게가 간질이는 내 꿈처럼 

나와 함께였으면 좋겠다 

나와 함께였으면 좋겠다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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