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일주일
#24
2024년 11월11일 오전 5시40분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부스스 눈을 떴다.
창밖으로 어슴푸레한 새벽빛이 밝아오고 있었다.
진숙이는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진숙아 잘 잤어?”
진숙이는 눈을 한번 깜박, 길게 애-옹 울었다.
머리를 쓰다듬자 얼굴을 비비더니 침대 위로 폴짝 올라왔다.
요즘 통 식욕이 없는지 사료도 거의 먹질 않아서
기운이 없었는데, 이렇게 뛰는 것이 퍽 기특했다.
“오늘은 기운이 좀 났어?”
갸르릉 대며 몸을 웅크리는 진숙이를 쓰다듬으며 다시 잠에 들었다.
그후 6시10분, 6시50분, 7시10분
깜박 잠들고 깨기를 반복했다.
눈을 뜰 때마다 진숙이는 머리맡에 앉아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귀여워서 이불을 들춰주면 쏙 들어와
옆구리께 자리를 잡았다.
따뜻한 체온이 행복해 미적거리다
출근시간이 임박해서야 정신없이 준비해 집을 나섰다.
“진숙아 언니 다녀올게!”
배웅을 하기엔 아침잠이 달콤한 모양인지
이불 아래서 꼼지락거리는 게 보였다.
사랑스러운 나의 고양이
진숙이는 그날 저녁 병원에 입원했다.
#25
초음파, 혈액검사, X레이 검사 소견이 좋지 않았다.
진숙이의 장기 곳곳에 종양이 퍼져서
신장, 폐, 간에 전이됐다고 했다.
빈혈이 심각하고 신장 수치가 높게 나왔다.
차트 곳곳에 빨간 숫자가 불길하게 느껴졌다.
수의사가 차분히 각 지표들을 설명했지만
어쩐지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목구멍 뒤로 울컥 토해지는 뭔가를 애써 삼켰다.
급하게 신장 수치라도 개선하려면
밤새 지켜보며 수액 치료라도 해야 한다기에
입원 동의서를 작성했다.
연명치료에 동의하냐는 질문에 멈칫 했다.
인공호흡을 하면 기도에 튜브를 넣거나
심장압박을 하다 갈비뼈가 부러질수도 있단다.
그러면 진숙이가 많이 아플것 같은데,
내가 없는 새 진숙이가 홀연 떠나는 것도 싫어서
펜을 쥔 손이 한참 허공을 헤맸다.
동의함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하고 싶으니까…
조금만 버텨주길
진숙이는 입원실 구석 모서리에 붙어 있었다.
잔뜩 화가 나서 앙칼지게 우는 소리를 듣자니
아프다는 게 실감나질 않았다.
“너 우는 소리만 들으면 아픈 줄 모르겠어.”
사실은 괜찮은 거 아닐까
그런 현실성없는 기대를 품었다.
소식을 들은 엄마가 수요일에 집에 오겠다고 했다.
동생도 같은 날 집에 오기로 했다.
뭔가를 결정해야 하지만 도저히 혼자서는 결정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어떡하지?”
진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까지 원하지 않는 뭔가를 결심해야 하는 일은 처음인데.
울면서 걷다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춥고 어두운 골목길에서 혼자 남겨질 것이 두려워
엉엉 울고 말았다.
#26
11월12일
퇴근길에 진숙이를 데리러 갔다.
다행히 높았던 신장 수치가 떨어져
위급한 상황은 넘겼다고 했다.
그러나 일시적일 뿐 이미 종양이 퍼졌고
장기 부전 징후가 보이니 안락사를 고려해볼 수 있는 정도라고 했다.
약만 먹이면 길어야 몇일,
집에서도 수액을 투여하면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거라는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여기서 더 심해지면 어떤 증상을 보이나요?”
“걷지 못할 거예요. 힘이 없어서 픽 쓰러질 겁니다.“
수액으로 공급하는 수분과 영양이 없으면
걷지도 못하고 숨만 쉬게 될수도 있단다
수의사는 천천히 결정해도 된다고 배려해줬다.
“수요일에 가족들이 와서 상의할 거예요. 조금만 더 버티게 해주세요.”
차근차근 수액 놓는 법을 배웠다.
큰 주사기에 옮겨담고 작은 나비침을 꽂아
진숙이 피부 아래 수액을 채워 넣으면
천천히 혈관으로 흡수된다고 했다.
차가운 수액이 몸속에 들어오니
진숙이가 바르작 몸을 떨었지만 그마저도 연약했다.
집에 와서는 사료와 물을 조금 먹고
화장실을 다녀와서는 이불 속에서 잠들었다.
씻고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진숙아 잘 자”인사하면
연약하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슬픔 없는 평온한 일상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