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일주일
#29
11월 14일 수능일이었다.
합정역과 강남역에는 앳된 소년 소녀들이 어른들의 옷을 흉내 내어 입고 분주히 걸어 다니고 있었다.
지하철에 앉아 멍하니
숫자 맞추기나 풍선 터뜨리기 게임을 했다.
잠시라도 진숙이를 떠올리면
곧장 눈물이 차올랐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다른 일에 몰두해야 했다.
엊그제는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포인트 적립을 한다며 전화번호를 누르는데
내 번호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허둥대다가 내 명함을 찾아 번호를 눌렀는데
그마저도 틀린 번호란다.
끝내 포인트 적립은 못하고 나왔다.
어제는 뚜껑이 열린 텀블러를 가방에 넣고 다녀
가방에 커피가 흘러넘쳤다.
만년필로 쓴 일기장은 죄다 번져
글씨를 알아볼 수 없게 됐다.
오늘은 지하철 내릴 역을 놓쳐
반대편 역사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슬픔이 머리 한쪽을 마비시켜 바보가 된 와중에도
기사를 쓰고 취재를 하고 예정된 인터뷰를 했다.
어른은 이별에도 의연할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실상은 먹고사는 일에 치여
마음껏 슬퍼할 시간조차 박탈당한 채로
애써 무심한 척하는 가련한 이들이 어른이다.
수능이 끝나고 들뜬 아이들과 지친 어른들 틈에서
지하철 차가운 금속 난간에 기대어 울음을 삼켰다.
#30
아침저녁 하루 2번 알약
하루 2번 수액 주사
철분제 한 알
신장 영양제 한 스푼
진숙이는 내가 자기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려나?
그래도 수액을 맞으면 조금 기운을 내어
사료 2-3알 정도를 천천히 뽀득뽀득 씹어 먹었다.
그 소리가 고맙고 기특해
평소 좋아하던 간식을 꺼내 주면
금세 흥미를 잃고 이불속을 파고들었다.
한밤중에는 진숙이가 화장실로 가서 한참 돌아오지 않았다.
똥을 밀어낼 힘도 없는지 항문에 걸린 채로 진숙이가 모래 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똥을 잡아 빼주고 항문을 닦아주자 또 이불속으로 숨어버렸다.
마른 엉덩이를 토닥이며 여러 번 괜찮다고 말해줬다.
고양이도 수치심을 아는 걸까?
나를 보는 진숙이 얼굴이 부끄럽고 서글퍼보였다.
늙고 병들어 배변조차 남의 손에 기대야 한다면
견딜 수 없이 수치스럽고 자괴감에 괴롭겠지…
스스로 생존할 수 없다는 감각은 얼마나
삶에 대한 의지를 무참히 꺾어버리는가…
고양이는 그런 입체적인 괴로움은 모르길 바란다.
진숙이는 이내 지쳐 깊이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