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일주일
#35
11월17일
“엄마, 만약 내가 나을 수 없는 병에 걸린다면…“
“그런 일은 없어.”
엄마는 단호하게 말허리를 잘랐다.
만약을 부탁하려다 본전도 못 찾게 됐다.
진숙이는 이미 1년 7개월 전,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동안 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진숙이의 끝을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올수록
나의 끝을 미리 정해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다른 생명의 마지막을 결정하는 일이 괴로웠고
이 고통을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전가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요일 밤, 동생에만 따로 전했다.
“내가 만약 진숙이처럼 나을 수 없는 상황이면 연명치료하지 마.”
“알겠어.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다시 말해줘.”
동생은 담담하게 수용했고 여지를 남겨주었다.
가족들이 나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럼에도 만약 나의 최후를 결정해야 할 순간이 온다면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덜어주고 싶었다.
여전히 나에게는 생의 의지가 있다.
내 가능성의 한계를 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지금 이 순간 생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비극이 닥쳐올 때
가족들이 조금은 편하게 나를 놓아주길 바란다.
순전히 내 죄책감이 끝을 결정하지 못하게 했다.
만약 진숙이도 나처럼 아직은 살고 싶은게 아닐까.
망설이는 동안 내 작은 고양이는
먹은 것도 없이 위액만 게워냈고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36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반려동물을 보냈을까?
어떤 이는 첫번째 고양이를 안락사하고
그 죄책감이 너무 괴로웠다고 한다.
두번째, 세번째 고양이는 전부
집에서 마지막을 보냈다고 했다.
어떤 이는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니
고양이가 홀로 죽은 것이 가장 슬펐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괴로워하다 홀로 끝을 맞이하게 한 것이미안해서 후회했다. 안락사를 했어야 한다고……
누구의 기록을 읽어보아도
괴롭지 않은 선택이란 없었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가지 않은 길이 후회로 남을 것이다.
반려동물의 생명을 거두는 것도
보호자의 책임인 것을 진작에 알았다면
좀 더 의연하고 단호하게 결정할 수 있었을까?
밤새 울다 지쳐 잠든 밤과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이 만나는 시간
웩웩 토하는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더니
처음 보는 광경에 참담해졌다.
진숙이는 위액을 토하다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방 구석으로 숨어 몸을 바르르 떨었다.
온 몸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눈과 마주쳤을 때
마침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욕심이 널 고통스럽게 하고 있구나…’
벼랑끝에 매달린 한쪽 손을 놓고 추락하는 듯 했다.
삶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일 때는
죽음만이 유일한 구원이고 휴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