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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Nov 28. 2024

고양이와 헤어지는 중입니다(14)

마지막 일주일

#33

11월16일 토요일 오전

진숙이는 어제밤부터 물도 입에 대지 않았다.

수액을 맞히고 약을 먹였는데

진숙이의 입안이 유난히 마르는 듯 했다.


진숙이가 아프다는 걸 안 후로

주변에서 “고양이에게 잘 해줘”라고들 했다.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잘 해줄 수 있는게 없었다.

사냥놀이를 할 기운도 없고 간식에도 흥미를 잃고

온종일 구석에서 잠만 자는 노령묘에게

해줄 것은 많지 않았다.

때로는 쓰다듬는 것조차 버거운지

이불 아래로, 깊은 구석으로 숨기 일쑤였다.


진숙이가 곧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걸 알아도

보호자인 내가 해줄 것은 간호 뿐이었다.

진숙이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난 그저 지루하고 무력하게 진숙에 곁에 있었다.


죽어가는 생명은 으레 세상과 타인에 무심하다.

오래전 요양원에 봉사를 갔을 때였다.

치매와 노환으로 거동이 어려운 환자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주라는 요청을 받았다.


대학생 봉사단원들에게는 꽤나 곤혹스러웠다.


어르신들이 알만한 노래도 모르거니와

박수나 환호소리도 없이 고요한 요양원에서

신나는 노래를 부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죽을 날만 기다리는 일은

이미 떠나버린 영혼이 무색하게

살아있는 육체만 마른 나무토막처럼

이승에 남은 것 같았다.


진숙이는 점점 더 요양원의 할머니들 같이

마르고 무력하고 무심하게 변해갔다.


모든 죽어가는 이들은 끝내 비슷해졌다.


#34

엄마와 공원에 산책을 나왔다.

붉은 단풍 낙엽이 지고

곳곳에 가을 꽃이 피어있었다.


“코스모스가 참 예쁘네”

“저건 코스모스가 아니라 데이지야.“


세상에, 평생 데이지를 코스모스인줄 알고 살았다.

진노랑색이 선명하기에 코스모스라고 했더니

엄마는 노란 데이지라고 알려줬다.


“엄마, 진숙이 땅에 묻어줄 때 노란 꽃을 심어주고 싶어.“

“…그래, 그러자.”


정말 보내야 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조금씩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날들이었다.


진숙이가 노란 국화꽃 향기를 좋아한 것이 떠올랐다.

킁킁 냄새를 맡더니

덥썩 입으로 가져가기에 깜짝 놀랐다.

좋아하던 노란 꽃을 심어주면

매년 진숙이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국화, 데이지, 코스모스, 프리지아, 개나리…

알고있는 모든 노란 꽃의 이름을 떠올리며 집에 돌아왔다.


우리는 진숙이 옆에 누워 긴 낮잠을 잤다.


시간이 지나도 늘 이날을 그리워할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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