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일주일
#31
11월15일
수액팩에 큰 주사기를 찔러 넣고 50ml를 뽑는다.
굵은 바늘을 빼고 링거줄이 달린 나비침을 꽂는다.
바늘 양쪽에 나비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나비침은
바늘을 꽂고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할 때 요긴하다.
소독솜까지 준비해 놓고 잠든 진숙이를 데려왔다.
양쪽 팔 사이 날개뼈의 가죽을 위로 들어 올려
피부와 근육 사이에 공간을 확인한다.
피부를 알콤솜으로 잘 소독한 후
살짝 비스듬히 나비침을 찔러 넣는다.
주사기의 피스톤을 천천히 밀어 넣으며
수액을 피부아래 공간에 채워 넣는다.
작은 물주머니처럼 수액이 고이고
혈액이 역류하거나 수액이 새지 않으면 된다.
“간호학과를 갈 걸 그랬나 봐.”
짐짓 너스레를 떨었더니 엄마도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나 말이야.”
의료인을 흉내 내며 아픈 고양이를 돌보는 중에도
작게 웃을 일을 만들어 나간다.
진숙이는 수액을 맞고 기운이 나는지
사료를 조금 먹고 오래간만에 스크래쳐를 긁었다.
남은 주사기와 바늘은 의료 폐기물로 모아두고
약봉지와 소독솜, 비닐을 잘 모아 버린다.
뭐든 처음만 어렵고 반복하면 쉬워진다.
#32
진숙이의 상태는 하루하루가 다르고 아침과 저녁이 달랐다.
낮에는 제법 기운을 차린 듯했는데
저녁부터는 사료도 물도 먹지 않았다.
그 와중에 엄마는 하루종일 음식을 했다.
김치찜, 잡채, 도토리묵, 카레, 미역국, 연근조림, 깻잎장아찌…
통일성 없는 음식들이 냉장고에 꽉꽉 채워졌다.
마치 엄마의 기억 속에서
한 번이라도 내가 맛있게 먹은 음식들은
죄다 만들어 저장할 기세였다.
내가 진숙이를 돌보면 엄마는 나를 돌봤고
내가 진숙이를 보고 울면 엄마가 내 등을 쓸어줬다.
우리 집 막내딸처럼 키운 진숙이가 아프고
큰 딸인 내가 시도 때도 없이 눈불바람인 동안
엄마는 주방에서 끊임없이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했다.
세 여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금요일 밤 진숙이는 비틀대면서
내 배 위에 올라와 잠을 잤다.
느껴지는 무게가 가벼워 울망 울망
코 끝이 찡하게 올라와 훌쩍대자
진숙이는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어
내 얼굴과 목을 쓸어줬다.
고양이는 가끔 기가 막히게 사람의 마음을 읽고
꼭 필요한 만큼 위로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