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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숲 Jun 27. 2022

[ 펀딩 수난사 ] 4. 제작한 뱃지가 도착하지 않는다

왜 내게 이런 시련을

  뱃지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뱃지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길어지는 일이지만, 아무튼 공장에 제작을 맡겼던 2000개 가량의 뱃지가 기한이 지나도록 제작되지 못했습니다. 펀딩은 종료 되었고, 500여명의 후원자들이 뱃지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 사태를 파악한 뒤 해당 내용은 텀블벅 커뮤니티를 통해 공지했고, 만일 기한 내 뱃지가 배송되지 않는다면 모든 후원금은 환불(펀딩에서 말하는 환불은 제 통장에서 후원자님의 통장으로 입금하는 방식입니다)됨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공장을 독촉하기 시작했습니다. 500건의 입금을 어떻게 처리할 지 생각하자면 마냥 아득해졌습니다만, 어쨌든 노력은 해야합니다. 최선의 노력을. 

슬픈 마음으로 썼던 공지사항.



  공지를 쓸 때의 압박감은 뭐라고 해야 할까요. 일단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어 그 압박감이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나를 믿고 후원해 준 500명의 후원자들과, 내가 여태 들인 노력과 재화와 시간들이 무용해지는 것을 생각하면 심장이 죄어드는 것 같았습니다. 송구스러운 마음과 괴로운 마음이 한데 섞여 잠깐의 숨고르기에도 기분이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생산과 관련된 이야기를 구구절절 써내려간 후, 퇴고하며 순간 망설였습니다. 후원 취소가 줄을 잇겠지? 다들 날 질타할지도 몰라. 물론 최대한 빨리 배송하기 위해 미리 생산을 요청 했었지만, 아무튼 결과적으로 생산이 다 되지 못했잖아. 사람들의 반응이 무서워. 그래도 이 이야기는 후원자들이 꼭 알아야만 했습니다. 저를 믿고 후원금을 지불한 사람들이니까요. 더 늦게 공지해봐야 달라질 것은 없고, 욕 먹어도 어쩔수 없어.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야. 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저장 버튼을 눌렀습니다.


천사 1호


천사 2호

  놀랍게도, 꽤나 너그러운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화를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저 상황이 해결되길 바라는 사람들만 있을 뿐. 지레 겁먹고 있던 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어쨌거나 후원자들은 이 상황을 이해해줬고, 저는 후원자들로부터 이 일을 바로잡을 시간을 허락받은거에요. 감사합니다! 예이! 




  이후의 일들은 기다림과 독촉과 택배 준비의 반복이었습니다. 저는 남자친구인 Y의 인맥까지 동원해 일을 잘 바로잡았습니다. 해내야한다고 계속 되뇌이면서, 계속 공장과 일정을 조율하고 독촉했어요. 그렇게 제작이 재개되기까지 거의 한달이 걸렸습니다. 


  그동안의 환불 요청은 단 한 건.

  처음 제가 지레짐작하기론 환불 요청하는 분들이 못해도 30건은 되겠지,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성사될지 실패할지 아무도 알지 못했고, 얼마나 기다려야할지 또한 미지수였으니까요. 그런데 단 한 건을 제외한 다른 후원자들은 불확실성으로 점철된 그 시간들을 기다려주었습니다. 


  그 이유를 '주 후원층의 팬심'과 '커뮤니티를 통한 소통' 덕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펀딩의 가장 큰 후원층은 저를 좋아하는(=제 인스타그램 계정을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저 개인을 좋아하는 분들이니, 이런 상황에서 보다 너그러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더불어 커뮤니티를 통해 상황을 투명하게 밝히고 앞으로의 해결 방안을 고지한 것이 후원자들에게 믿음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쓴 공지는 '생산에 차질이 생겨서 배송이 늦어질것 같아요'에서 끝내지 않고, '현재 보유 수량은 이만큼이고, 이 수량은 모월 모일에 후원 시간 순으로 순차배송한다, 만에하나 기한 내 생산이 완료되지 못하면 후원금은 전액 환불한다'는 사후 대책도 함께 작성했습니다. 후원자 입장에서는 어쨌거나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후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니 후원 취소보단 기다리는 쪽을 선택하시지 않았나 합니다.




  시간은 흘러, 뱃지가 도착했습니다.


  펀딩 마감까지 7일이 남은 시점.

  보내야 할 택배 500개.

  택배 포장 인원 1명.


  ... 해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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