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와 약자 그리고 목자(牧者)

Cinema : 펄프픽션

by Telos

“사람이 나쁜 거냐, 세상이 나쁜 거지.” 요즘 들어 자주 드는 생각이다. 물론 도처에 나쁜 사람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우리는 곧바로 개인의 귀책으로 돌리지만, 정작 핵심은 개인을 넘어 사회와 구조에 있을지 모른다.



이전에는 개인의 심리와 본능에 집중해 세상을 미시적으로 바라봤다면, 이제는 구조와 환경을 중심으로 거시적 관점을 가지려 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무엇일까? 후생경제학을 공부하며 인상 깊었던 대목이 있다. 국제 비교 연구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이 적은 나라의 서민이 불평등이 심한 나라의 부자보다도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Wilkinson & Pickett, 2009) 결국 핵심은 ‘불평등’이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힘은 단순히 개인 차원이 아닌, 바로 이런 구조적 불평등이다.



그러나 불평등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타란티노 감독은 《펄프 픽션》을 통해 그 근본 원인을 ‘자존심’이라고 제시한다. 마르셀러스의 금가방과 부치의 금시계는 각자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메타포이다. 자존심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기에, 사소하게라도 건드리는 순간 필연적 폭력으로 이어진다. 사회구조는 강자에게 약자의 자존심을 쉽게 짓밟는 정당성과 유인을 제공한다.



폭력과 갈등의 해결책은 사전에 준비된 것이 아니라, 사건이 벌어진 뒤 우리가 내리는 선택에 있다. 극 중 윈스턴 울프는 시체 처리반 총괄자라는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급박한 순간에서도 상대를 존중하며 젠틀하게 폭력사태를 깔끔히 수습하는 "진정한 강자"로 등장한다. 쥴스는 그를 본받아 마지막에 ‘shepherd’의 길을 선택하듯, 목자란 폭력을 정당화하지 않고 화해를 택하는 자임을 증명한다.



요즘 들어 나도 ‘의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덕적 우월감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어른이란 약자의 손을 잡고 올바른 길로 이끄는 사람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힘을 갖되, 그 힘을 언제나 상대의 자존심을 헤아리는 데에 써야 할 것이다.



목자의 길은 고되겠지만, 그 시작점은 쥴스가 울프를 마주친 우연처럼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



오늘, 그런 예감이 드는 하루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