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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Nov 28. 2021

진정한 의미의 채식이란?

어떤 식재료를 소비해야 환경을 지키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육류를 먹는 것보다 대체육을 먹는 것이 환경에 더 이로울까?
식물성 식재료 중에서도 어떻게 생산된 것을 먹어야 할까?


몇해 전부터 재활용 쓰레기 문제가 이슈화 되었다. 말 그대로 다시 사용하는 물건이라 생각한 '재활용품'이 그렇게 만만하게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알려졌다. 그 이후,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버릴 때마다 내 업보가 하나씩 쌓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계기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생활 속에서 쓰레기를 줄이는 노력과 함께 플로깅을 병행했다. 즉흥적으로 시작한 쓰레기 줍기는 채식을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자동차를 타지 않는 것보다, 샤워시간을 줄이는 것보다 환경에 이로운 일은 육류 소비를 줄이는 일이라 했다. 계기는 단순했다. 지구에 흔적을 덜 남기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실천에 주저함은 없었다. '씨스피라시', '카우스피라시' 와 같은 다큐멘터리 몇 편을 보고 비건을 지향하겠노라 다짐했다.


그렇게 몇달간 채식을 하게되었다. 그리고 여러 공부를 했다. 채소가 생산되는 환경을 다룬 책 (도서 : 진짜 채소는 그렇게 푸르지 않다), 채식을 몇 십년간 실천한 저자가 채식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쓴 책 (도서 : 채식의 배신), 지속가능한 식재료란 무엇인지를 다룬 책(도서 : 제 3의 식탁), 채식에 연관된 철학을 다룬 책 (도서 : 채식의 철학) 등을 비건인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읽었다.




p.56 (도서 :  진짜 채소는 그렇게 푸르지 않다)

땅에 뿌린 비료를 채소가 전부 빨아들이지는 않는다. 땅에 남거나 지하수로 흘러 든다. 화학비료든 가축 분뇨로 만든 유기비료든 지나치게 많이 뿌린 비료가 지하수에 섞이면 지하수의 초산성질소 농도가 높아져서 생활폐수가 섞였을 때와 마찬가지 상태가 된다. 



동일한 규격과 색상의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농업 현장에서는 부자연스러운 행위들이 벌어지곤한다. 벌레 먹지 않고 진한 초록색의 잎 채소를 생산하기 위해 농약을 살포한다. 목표로 하는 작물 외의 풀들을 제거하기 위해 제초제를 뿌린다. 햇볕에 닿지 않는 사과의 아랫부분까지 빨간 색을 내기 위해 은박 필름을 땅에 깔아 해를 반사시킨다. 땅은 공장이 아닌 미생물이 살아가는 거대한 우주임에도, 때문에 가꿔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최대로 뽑아내기 위해 비료를 과다하게 주기도 한다. 과연 그렇게 길러진 채소가 환경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비건 중에서는 아보카도나 팜유를 먹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식물성 식재료라고 하더라도 생산하는 데에 많은 양의 물을 소비해야하는 아보카도는 친환경적이지 못하다. 팜유 또한 아마존의 넓은 부지를 없애고 나무를 심어 생산한다. 효율을 앞세운 생산은 소중한 것들을 잃게 한다. 아마존이 불탈 때 대기는 오염되고, 그 곳에 살던 수많은 동물이 함께 불탄다. 


탄소발자국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어쩌면 필리핀에서 생산된 바나나를 먹는 것보다 국내에서 자연양돈 방식으로 기른 돼지를 먹는 게 환경 측면에서는 더 이로울 수도 있다. 숲을 경작해 대량으로 심은 콩으로 만든 대체육도 예외이지 않다. GMO콩이나 수입산 콩으로 만든 대체육을 소비하는 게 과연 환경적인가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다. 


어찌되었든 100% 옳은 선택과 행동은 존재하지도 않고, 스스로 실천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채식'을 한다는 행위에만 집중하면 안된다는 걸 느낀다. 누굴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모두 다른 기준을 가지고 식생활을 이어 나간다. 스스로의 건강이 되었든, 쾌락적인 맛을 위해서든 취사 선택한다. 나는 무엇을 선택하면 좋을지 나의 기준을 갖기 위해서 공부가 필요하다. 어떤 시스템 속에서 먹거리가 생산되는지 더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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