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수육 찍먹파와 부먹파의 싸움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탕수육의 기원부터 시작해 제대로 된 탕수육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까지 이어지며 팽팽하게 다투던 양측은 '취존(취향 존중)' 하자는 걸로 끝났다. 이제 사람들은 함께 모인 자리에서 탕수육을 먹기 전 이렇게 묻는다. "찍먹이야, 부먹이야?"
찍먹과 부먹처럼 팽팽한 다툼은 아니지만 매년 여름이면 양측으로 갈라져 싸우게 되는 이슈가 있다. 바로 딱복(딱딱한 복숭아)과 물복(물렁한 복숭아)이다.
상대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의 수가 많은 물복파는 이렇게 말한다.
"딱복 먹을 바엔 그냥 무를 먹어. 소고기 딱복국이나 끓여라"
그에 맞서는 딱복파의 주장은 이렇다.
"물복을 먹을 바엔 그냥 물을 마셔", "물복은 껍질 깎다가 팔꿈치까지 물이 줄줄 흘러 고상하지 못하다"
어떤 고구마 좋아하세요?
길을 걷다 군고구마 냄새에 뒤를 돌아보게 되는 계절인 겨울이 왔다.
20년도 이맘때 '나 혼자 산다'에서는 딱복, 물복처럼 밤고구마파 VS 호박고구마파로 나눠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방영되었다. 달고 촉촉한 호박고구마가 최고라는 주장에 밤고구마파들은 퍼석퍼석하고 묵직하게 툭 갈라지며 목이 콱 막힐 때 우유를 마셔 샥- 내려가는 맛이 밤고구마의 매력이라 말했다. 하지만 밤고구마를 찾는 소비자가 적어서 그런지 네이버 쇼핑에 검색했을 때 호박고구마의 상품수가 밤고구마에 비해 만 건 정도 앞서 나간다. 밤고구마 상품 페이지에 정말 퍽퍽한 밤고구마가 맞는지 질문하는 소비자 또한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고구마 품종인 '베니하루카' 는 수확 직후 밤고구마였다가 숙성의 단계를 거치며 전분이 당분으로 변하며 단맛이 강해지고 촉촉해져 호박고구마 같은 특징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밤고구마를 먹으려면 품종뿐만 아니라 수확시기까지 챙겨봐야 되는 거다. (두통)
LG상남도서관이 운영하는 LG Science Land 홈페이지에서는 호박고구마와 밤고구마를 비교한 표를 공개했다.
Ⓒ LG Science Land 과학이야기 '밤고구마 VS 호박고구마'
당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밤고구마는 전분 함량이 많고 수분량은 적어 조리했을 때 밤이 연상되는 퍽퍽함을 가지고 있고, 호박고구마는 속이 노란색인 외형에서부터 촉촉하고 단맛이 많은 단호박과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고구마를 호박과 밤에 비유하니 각 각의 특징이 쉽게 와닿는다. 감자처럼 전분 함량을 중심으로 분질 고구마(밤고구마), 점질 고구마(호박고구마, 물고구마)로 나누기도 한다. 전분 함유량이 20% 이상이면 밤고구마이고 그 이하면 호박고구마나 물고구마라는 식이다.
호박고구마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겨울철 고구마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방식이 군고구마이기 때문아닐까? 구웠을 때보다 찌거나 튀겼을 때 진가를 발휘하는 밤고구마는 비주류인 듯하다. 수분이 많은 호박고구마를 찌면 물이 너무 많아 질척해지고, 튀기면 더 빨리 눅눅해진다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호박고구마, 밤고구마 말고 다른 고구마 없을까?
패션뿐만 아니라 음식으로도 자신을 표현하는 시대가 왔다. 유행하는 맛집을 방문한 사진이나 맛있게 차린 집밥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자랑함으로써 유명세를 타기도 한다. 신제품을 남보다 빨리 구입해 사용해보는 사람들을 뜻하는 신조어인 얼리어답터(Early-adopter)가 먹거리 측면에서도 적용되는 말이 되었다.
호박고구마, 밤고구마처럼 전분으로 구분하지 않고, 색으로도 고구마를 나누어 볼 수 있다. 주로 칩이나 분말로 가공되는 자주색 고구마 중 '신자미' 품종은 단면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 선명한 자주색에 밀도감 있는 쫀쫀한 식감에 단맛이 적어 담백하다.
당근 고구마라는 명칭으로도 불리는 '풍원미'는 베타카로틴 함량이 높은 기능성 고구마다. 실제로 구웠을 때 익힌 당근에서 느껴지는 fresh 한 향과 강한 단맛, 촉촉함을 가지고 있다.
좌측부터 순서대로 풍원미, 베니하루카, 신자미, 강화 속노랑고구마
껍질색에서도 구분되는 고구마
색 외에도 재래종(토종)이냐 외국에서 들어온 품종을 뜻하는 외래종이냐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강화도 재래종인 '강화 속노랑고구마'는 지금껏 고구마에서 느껴보지 못한 감칠맛이 있고, 조청 같은 향의 묵직한 단맛이 특이적이다. 일본에서 개량한 품종인 '베니하루카'는 2019년 기준, 한국의 전체 고구마 재배 면적 중 40%를 차지하고 있었을 만큼 대중적인 고구마다. 그만큼 익숙한 맛인데 단맛이 강하면서도 지속력이 길고, 구웠을 때 촉촉해 목 막힘 없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강화 속노랑고구마'처럼 과거부터 한국의 토양에서 자라온 재래종이나, '풍원미'나 '신자미'와 같이 국내에서 육성한 품종의 고구마가 더욱 늘어나야 한다. 외래종을 정식으로 반입해 재배할 경우, 품종에 대한 로열티를 외국에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농민신문 측에서 조사한 결과 '베니하루카' 종이 공식 반입된 기록이 없다는 거다. 외래종을 '밀수' 했다는 건데, 한국에서 금지하는 해충이 서식하는 일본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금지한 품종이 고구마 재배 면적의 40%를 차지한다는 말이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제대로 알고 먹기 참 힘들다.
'내가 너무 몰랐어. 미안해'라는 말을 최근 자주 하게 된다. 근처 마트에서 구입한 농산물은 농약, 비료로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키고 있었고, 어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뒤늦게 알게 된 죄책감을 피하기 위해 소비자가 어디까지 공부해야 하는 걸까? 재래종이나 국내 육성 품종의 농산물을 최대한 자연을 해치지 않고, 농부나 유통자가 인간다운 대우를 받으며 생산, 유통된 식재료를 내 식탁 위에 올리고 싶다. 소비자가 공부하지 않아도 자신의 편의와 관능적인 기호에만 집중해도 되는 시장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취향만 존중해도 되는 시장을 마련할 올곧은 철학을 가진 농부와 유통인이 늘어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