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버스 편까지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좀 놓인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휴양을 즐길 여유 따윈 안 생기고, 환경 역시 따라주지 않는다. 나짱의 두 번째 숙소 소호 호텔은 저렴한 가격에 적당한 크기의 깔끔한 방, 조식 서비스까지 있어서 선택했는데, 다 사진빨이었다. 방문을 열자마자 바로 침대와 발이 닿는다. 욕실을 제외하고 침대를 중심으로 반경 세 걸은 정도의 공간밖에 여유가 없다. 더욱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창문이 옆 건물과 맞닿은 쪽으로 나있어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지가 좁으니 호텔도 노량진 고시원처럼 지은 것인가? 오늘 아침만 해도 시싱부티크호텔을 찬양하며 여유롭게 조식을 즐겼는데, 마치 꿈을 꾼 것 같다. 더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방에 머무르는 시간을 최소화하기로 결정하고, 주변 좋은 호텔의 로비를 배회하며 시간을 보냈다.
소호 호텔 방에 들어온 것은 쑥이 소매치기를 당하고 다시 호텔로 들어와 체크인할 2시가 되자마자였다.
( 방 체크인 전까지 시내를 둘러보며 휴양지에서 일어날 법한 일 : 소매치기를 당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뒷좌석에 앉은 선수가 쑥의 크로스백을 힘껏 채갔고, 가방 스트랩 끈이 당기는 힘에 끊어져버렸다. 신용카드, 현금 100불 등등의 가방째로 당한 것이다. 그대로 카드 분실 신고를 하며 방으로 돌아왔다. ) 더웠고,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제만큼은 아니어도 쾌적한 방이 우리를 맞이했으면 좋았겠지만, 문을 열자마자 쾌쾌한 냄새가 난다. 나는 호찌민 에어비앤비 루프탑 숙소, 어젯밤 묵었던 시싱호텔, 오늘부터 잘 소호 호텔 모두 사진도 전혀 보지 않은 상태로 와서 마음의 준비가 없었다. 십 년 전 호찌민에서 묵은 숙소도 좋은 곳은 아니었지만-한 층에 객실 한 개씩인 10층 건물이었다- 창문이 있었고, 건너편 호텔 수영장도 보였다. 논문으로 읽은 튜브형 가옥형태, 냐옹을 이미 호찌민에서 체험했지만 나짱은 사정이 더 좋지 않다.
건물이 정사각형이 아니라 직사각형으로 길어 전면부가 더 좁다. 게다가 그 전면부 쪽으로 계단이 나 있어서 그나마 햇빛을 볼 수 있는 더 줄어든다. 우리 방 606호는 엘리베이터 바로 옆인데, 양 옆으로 객실이 있어서 우리 방에는 빛이 들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도 밖에 해가 떴는지, 비가 오는지 알 수가 없다. 당연히 환기가 되지도 않고, 습기를 머금은 카펫과 침대는 쾌쾌함을 잔뜩 머금은 채로 손님들을 맞이하는 것이다. 게다가 나짱은 호찌민에서 종종 눈에 띄던 스타벅스도, 커피빈도, 하이랜드 커피점도 없어 고시원 숙소를 나와 쉴 곳이 없다. 옆 큰 호텔 체인 1층에 가서 에어컨을 쐬고 화장실을 이용했다. 나도 들어가서 뽀송한 이불에 몸을 뉘이고 싶은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아~부티크 호텔이여!!!
우울한 기분으로 주변 호텔 로비와 길을 배회했다. 그러다가 ‘베트남 홍보관’스러운 건물이 있어서 들어가 봤는데 전통 수예 갤러리였다. 이곳은 호텔 숲 사이에 베트남 전통 가옥들이 아담하게 자리 잡은 갤러리로서 들어오면 전통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역사적 인물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아오자이(베트남 전통의상)를 입은 장인이 실시간으로 베틀을 짜고 있어 다른 세상으로 들어온 느낌을 준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덩달아 운치를 더한다.
한편에는 기념품도 판매한다. 빈털터리가 돼서 살 돈도 없었지만, 살 만한 물건도 별로 없다. 벤탄시장에서 안 산 소품들-라탄 티코스터, 자개 티코스터 및 수저세트가 자꾸 생각난다. 나짱이 관광 지니까 밟히는 게 기념품일 줄 알았는데, 방수팩만 널려있다. 세계여행관광협회(WTTC)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베트남 GDP의 6.6%가 관광산업에서 직접적으로 창출*되고, 올해 들어서 외래 관광객 천만명 시대**를 열었는데도 아직 관광상품 등 디테일한 부분은 수준이 떨어지는 것 같다. 베트남이 두 번째인 신유에 따르면 베트남 관광 산업 전체가 다 이렇지는 않다고 한다. 메콩강 투어 등 근교 투어, 그리고 남북전쟁 관련 박물관과 구찌터널이 유기적으로 연계된 괜찮은 투어 프로그램도 있다고 하니, 베트남 관광 산업이 대단위 리조트, 호텔들 중심으로만 개발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관광기념품 부문은 단기간에 디자인 수준이 월등히 향상된 대한민국을 잘 벤치마킹하면 좋을 것 같다.
*자료출처: 호텔, 여행사, 항공사 및 기타 승객 운송서비스, 요식업, 레저 등 여행관광 연관산업까지 확장하면 127억 달러의 생산 가치를 창출했다고 한다. (코트라 해외시장뉴스, ‘전도유망’ 베트남 관광산업, 2016-09-21) https://news.kotra.or.kr/user/globalBbs/kotranews/4/globalBbsDataView.do?setIdx=243&dataIdx=151859
**자료출처: TRADING ECONOMICS, 베트남_외래관광객 수 현황 https://ko.tradingeconomics.com/vietnam/tourist-arrivals
기분전환을 위해 저녁은 일부러 ‘육고기’로 챙겨 먹었는데도 갑갑한 숙소로 들어오니 화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서 수영장이 있는 층으로 가봤다. 다행히 낮에 다이빙하던 아이들이 없어서 수영장은 비어있다. 우린 얼른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누가 오기 전에 수영장을 차지했다. 이 호텔 수영장은 방 크기만큼 작아서 ‘한 팀 전용’이다. 우리가 꿈꾸던 인피니트 풀은 아니었지만 나짱 야경이 보이는 가운데 수영을 즐기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수영을 했으면 맥주를 마셔야지!’ 핸드폰도 놔두고 딱 맥주값만 챙겨서 해변에 나가본다. 유명한 루이지애나 바는 비싸서 꿈도 못 꾸고 바로 옆 가로등 불빛이 매우 환한 곳에 자리르 잡았다. 우리 자리 뒤로 덩치가 좋은 러시아 언니 오빠들이 있으니까 안심이 된다. 밤의 나짱 해변은 낮 동안 해변에서 장사를 마친 사람들이 쉬기도 하고, 관광 온 가족들이 가끔 산책을 하는 조용한 분위기이다. 우리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에 취하려는 찰나, 술 취한 듯 보이는 아저씨가 우리를 보더니 멈춰 서서 우리를 계속 노려본다. 우리도 처음에는 무시하려고 했으나 그 아저씨가 계속 미동도 없이 서있자 무서워졌다. 결국 빠르게 정리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을 쳤다.
저 개저씨는 뭐니? 진짜! 점점 베트남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진다. 남자 둘이 맥주를 마셨어도 저렇게 쳐다봤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