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늘 내 곁은 아이들로 붐볐다. 세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벅차기도 했지만 뿌듯하고 든든했다. 그땐 아이들 손을 하나씩 잡을 수 있게, 딱 손 하나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아이들이 훌쩍 커서 각자 다른 하루를 살아간다. 고학년이 된 첫째는 엄마보다 친구가 더 좋아졌고 둘째까지 학교에 입학하자 막내와 함께 하는 시간도 부쩍 줄어들었다. 일찍 하교를 하는 둘째 가방을 들고 있거나, 놀이터에서 노는 것이 좋은 막내만 내 손을 잡고 있다. 드디어 손 하나가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나마 코로나로 함께하는 시간이 길었는데 코로나를 이겨내고 날씨까지 따스해지자 각자 외부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특히 막내는 어린이집을 나서자마자 놀이터로 뛰어가서 지칠 때까지 논다. 한 동안 어린이집에 가지 못했고 친구들과 뛰어노는 즐거움을 처음 느끼고 있다. 짠한 마음에 가능한 많은 시간을 놀이터에서 보낸다. 그 사이 오빠들은 학교 방과 후 수업을 가거나 각자 일과를 한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놀이터에서 노는 친구가 없다 보니 이전처럼 세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는 모습을 보는 것이 드물게 되었다.
4월인데 갑자기 여름처럼 덥다가 꽃샘추위가 찾아와서 며칠 집에서 지냈다. 날이 조금 풀리자 놀이터에 아이들이 붐빈다. 평소처럼 막내는 가방을 던지고 놀이터로 향한다. 신나게 놀고 있으니 방과 후 수업을 마친 두 오빠들 놀이터로 왔다. 엄마에게 인사만 하고 집에 가려는 아이들을 잡았다. 놀이터에서 조금만 있다가 함께 집에 가자고.
내 옆에 손을 잡고 종알종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던 첫째가 갑자기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놀이에 합류한다. 집에 들어가자고 약속한 시간을 잊고 아이는 모처럼 놀이에 빠져들었다. 신나게 뛰어노는 세 아이들의 모습이 반가워서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계속 늦어졌다. 얇은 옷을 입고 땀을 내며 뛰어노는 아이들 사이에 나만 혼자 두꺼운 옷을 입고 잔뜩 움츠린 채 한참 서 있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봄꽃보다 더 보기 좋다.
저녁 준비 시간까지 버티다가 결국 아이들에게 내가 먼저 집에 가자는 말을 꺼냈다. 각자 가방을 메고 신나게 집으로 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나의 행복이 따라간다. 점점 셋이 함께 있는 시간이 귀해지니 집에 가는 길조차 소중하게 다가온다.
"애들아, 잠깐만 멈춰봐."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아이들의 뒷모습을 사진에 남겨둔다. 사진첩을 가득 채운 화사한 봄꽃 사진 가운데 가장 빛나는 모습이다.
천천히 크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