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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부신 일상 May 21. 2022

즐거움이 먼저다

<EBS 당신의 문해력>을 읽고

“책 읽기의 즐거움을 느끼려면 내가 읽고 싶은 책, 그리고 내 수준에 맞는 책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기본적인 두 가지가 무시되기 일쑤다. 책은 교훈을 얻거나 지식을 높이거나 권장도서여야 의미가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책을 마음 편하게 고르지도 읽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독서의 진정한 즐거움을 알 리가 없다.”  

-EBS 당신의 문해력, p.244 -



“엄마, 오늘은 책을 1장(챕터) 더 읽어주면 안 돼요?”


평소 책 보다 게임을 먼저 찾는 아이들이 유일하게 책을 찾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 우리는 함께 책을 읽는다. 아이가 더 어릴 적에도 하지 않았던 잠자리 독서이다. 아이가 읽기를 바라며 구입한 책에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자 답답한 내가 책을 펼쳤고, 세 아이 모두에게 책을 읽어주기 좋은 시간을 찾다 보니 잠들기 직전이었다. 잠들기 직전이라 딱 15분 정도 읽은 후 미련 없이 책을 덮는다. 책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절대 묻지 않는다. 엄마의 굿 나잇 인사이다.


첫째가 어렸을 때는 소위 말하는 책 육아에 관심을 가졌다. 아이 연령대별로 다양한 책을 준비해서 목이 쉬라 밤새 책을 읽어주며 높은 책 탑을 쌓아가는 일상을 욕심냈다. 하지만 첫째는 전집 중에서 단 몇 권만 지겹도록 반복해서 봤고 다른 책을 시도하면 스스로 책장을 덮거나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아이가 하나에서 둘, 셋이 되자 하루에 책 한 권 읽어주기도 벅찼다. 밤새 책을 읽기는커녕 엄마가 먼저 지쳐 잠이 드는 날이 더 많았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아이의 책은 무거운 짐이 되었다. 아이는 거대한 책장을 보며 무엇을 느꼈을까?


그 후, 책 읽기에 대한 관심은 아이에서 나로 이동했다. 억지로 아이를 불러 책을 읽어주는 대신 나 스스로 책을 읽었다. 아이는 엄마가 읽던 책을 펼치고 엄마를 따라 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그림을 그렸다. 가끔 엄마가 책을 보고 있으면 슬그머니 와서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다. 하지만 아이는 내 욕심만큼 책을 읽지 않았다. 내가 책을 읽다 보니 조금씩 알게 되었다. 책이 전부가 아니고 책은 즐기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다양한 책을 읽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책에 더 손이 간다는 것을. 아이가 다양한 분야의 책을 비슷한 관심과 즐거움으로 읽기를 바랐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기대였는지 알게 되었다. 아이는 얼마나 지루하고 힘들었을까! 무작정 많은 책을 읽는 것도 능사가 아니었고, 읽기는 단순히 글자를 읽는 것 이상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책에 대한 지나친 낙관과 기대를 버리게 되자 함께 책을 읽는 시간만으로 충분했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책은 취향일 뿐이다.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만 누군가는 차를 마시는 것과 같다. 커피를 즐기면서도 신맛이 강한 커피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책도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아이들이 특정한 시기에 읽어야 한다는 책을 구입하지 않는다. 멋진 전집이 가득 전시되었던 책장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 뒤죽박죽 꽂혀있다. 아이들은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은 때 즐겁게 읽는다. 신나게 뛰어놀다가 잠시 숨을 돌릴 겸 앉아서 책을 뒤척일 수 있다면, 재미있는 것이 많은 세상에서 잠들기 전 엄마가 책 읽어주는 시간을 기다리기만 한다면 충분하다. 책 말고 즐길 수 있는 것이 다양한 세상에서 책만 아는 바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자는 첫째는 책을 몇 장 읽지도 못해서 코를 곤다. 아이는 책 보다 엄마 목소리를 더 기다린 것 같다. 아침에 물어보면 읽어준 책 내용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엄마의 목소리로 함께 한 책은 부드럽고 따스한 기억으로 온몸이 기억할 것이라 믿는다. 삶이 힘겨운 순간 엄마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책을 펼칠 수 있으면 좋겠다. 바쁜 하루를 은은한 스탠드 등 아래에서 책과 함께 편히 잠들 수 있는 삶이면 좋겠다. 그 마음을 담아 오늘도, 내일도 졸린 눈을 비비며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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