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을 읽고
사랑은 물과 같은 것인가. 그 큰 사랑이 내리내리 아래로만 흘러간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집을 떠나고 어린 새들은 날개를 퍼덕여 둥지 위로 날아오른다.
<청춘의 문장들> p.44
“내일 점심에 꼬막 비빔밥 먹으러 와.”
토요일 오후가 되면 일요일 점심 담당인 엄마가 식사 메뉴를 알려주는 전화를 한다. 주말이면 집 근처 친정에 가서 점심을 먹고 한나절 놀다 온다. 부모님이 우리 집 근처로 이사 온 뒤 자연스럽게 갖게 된 주말 루틴이다. 이번 주는 싱싱한 꼬막을 준비했나 보다. 맛있는 엄마 밥을 먹을 수 있어 즐겁고 주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 반갑다. 아이들 또한 매주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는 날을 기다리며 먹고 싶은 메뉴를 미리 주문하기까지 한다.
엄마가 지난주에 챙겨 준 반찬통을 깨끗하게 씻어 한가득 챙겨서 친정으로 향한다. 친정에 도착하니 현관부터 고소한 냄새가 풍기고 이미 식탁은 갖가지 음식으로 가득했다. 엄마는 주방에서 꼬막을 무치며 큰소리로 우리를 반겼다. 침을 꿀꺽 삼키면서 그 많은 음식을 준비한 엄마의 바쁜 손길이 떠올렸다. 손을 씻고 바로 주방에 가서 주걱을 들어 손을 보탠다. 엄마는 고슬고슬 지은 밥 위에 꼬막을 한 움큼씩 얹어주었고 마지막으로 내 밥 위에는 남은 꼬막을 싹싹 긁어 수북이 올려주었다. 많이 먹으라며.
어릴 적부터 쌍둥이 남동생이 몸이 약하고 입이 짧아서 부모님의 손길을 더 많이 필요로 했다. 배고파 울 때도, 어린 나는 동생이 분유를 먹을 때까지 울지 않고 기다렸다고 한다. 크면서도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고 병치레 없이 잘 크는 나와 달리 동생은 엄마가 밥을 떠먹여 줘야 겨우 몇 숟가락 먹었고 자주 아파서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식탁 위에는 동생이 좋아하는 반찬이 자주 올라왔고 엄마의 손길은 동생에게 더 많이 머물렀다. 항상 동생에게는 한 숟가락만 더 먹으라고 사정사정했고 나는 너무 많이 먹는다고 눈치를 받곤 했다. 그 당시는 부모가 동생에게 주는 특별한 관심에 서운함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은 서서히 얼어붙었고, 대학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나며 엄마에게 모진 소리를 쏟아냈다.
내가 엄마가 되고부터 부모님은 내 밥그릇을 세심하게 살핀다. 편히 밥 먹으라고 아이들 식사를 챙겨주는 것은 물론 좋아하는 반찬을 내 앞으로 옮겨주거나 밥 위에 올려 준다. 밥 한 그릇을 맛있게 다 먹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좋아한다. 많이 먹으라는 말과 내 곁에 머무는 손길이 낯설지만 참 따스하다. 엄마가 되어보니 부모의 마음이 조금씩 보인다. 엄마의 양손을 두 아이에게 내어주어도 한 아이가 남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엄마의 관심을 한 아이에게 온전히 쏟을 수 없는 상황이 왕왕 생긴다. 언젠가 열이 나서 아픈 둘째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이자 어린 막내가 입을 삐죽 내밀고 물었던 적이 있다.
“엄마는 작은오빠가 더 좋아? 엄마는 우리 중에 누가 제일 중요해?”
“엄마는 우리 아이들 셋 다 똑같이 중요하고 사랑하지. 그런데 지금은 오빠가 아파서 엄마가 오빠에게 조금 더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야. 엄마는 한 명인데 엄마가 챙길 아이들은 셋이잖아. 누군가 엄마의 도움이 더 필요한 상황이면 엄마는 어쩔 수 없이 그 아이를 더 돌봐야 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서운한 마음이 들 수 있어. 엄마가 안아주면 좋겠는데 오빠만 챙겨주니 섭섭하구나. 조금 기다려주면 엄마가 조금 있다 안아줄게. 잠시만 기다려 줄 수 있겠어?”
아이는 여전히 뽀로퉁한 표정이지만 더는 투정 부리지 않고 엄마를 기다렸다. 토라진 아이를 달래고 꼭 안아주니 어릴 적 쌓인 차가운 감정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내 안에 어린 꼬마가 빙긋 웃는다.
질리도록 꼬막을 먹고 낮잠을 한숨 자고 일어나서 집에 돌아가려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빈 반찬통을 가득 담아왔던 쇼핑백이 현관 앞에 다시 놓여있다. 가방에는 다음 한 주 동안 딸의 분주한 손길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묵직하게 담겨있다. 양손으로 들어도 꽤 무거운 반찬을 넙죽 받아서 든든한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입가에 옅은 미소와 함께.
“엄마, 잘 먹을게요. 고마워요.”
“갈치는 빨리 구워 먹어. 넉넉하게 넣었으니 아이들만 주지 말고 너도 꼭 한 조각 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