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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재 YeonJay May 07. 2023

#003. 왜 그만두는데? (1)

퇴사하겠다고 말한 날, 나만의 사직서를 드러냈다

" 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다른 분들 안 계시는 자리에서 했으면 합니다. "

아침회의가 끝난 뒤, 조심스럽게 카톡을 보냈다.

혹시나 옆자리 동료들이 무심코라도 카톡 내용을 볼까 봐 스마트폰으로 보냈다. 괜히 눈치가 보였다.

카톡 하나 보내는 게 이렇게 비장한 일이라니.


“ 대충 어떤 내용이죠? “

막상 말하려니 머리가 하얘졌다. 바로 써야 하나?

얘기한 김에 얼른 자판을 눌렀다. 그 사이에 고민하고 맘이 바뀌기 전에 보내야겠다.


(1) 내일 오후 반차 신청하려는데 처리 부탁 드립니다.

(2) 곧 진행 예정인 프로젝트 참여는 어려울 듯 합니다.

후임 채용을 요청드리고, 인수인계 준비를 하겠습니다.


“ 급하게 처리할 게 있으니 1시간 뒤에 얘기합시다. “

부장의 카톡을 확인한 뒤, 아무렇지 않은 척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했다. 애꿎은 자료파일만 뒤적였다.


2층 빈 회의실, 기다란 책상을 가운데 두고 부장과 마주 앉았다.

" 내일 오후 반차는 무슨 일 때문에 쓰려는 거죠? "

" 병원에 다녀오려구요, 몸이 안 좋아서요. "

" 곧 준비할 프로젝트 참여 못 하겠다는 건, 퇴사하겠다는 뜻인가요? "

" 네. "

" 그만두려는 이유가 뭐죠? "

이유? 이유라...

맘 먹고 얘기하자면 많지. 차마 있는 그대로 다 말을 못 할 뿐.

" 지금 맡고 있는 업무나 앞으로 들어올 일들이, 제 역량으로 감당하긴 어렵습니다.

몸이 안 좋기도 하구요. "

가장 그럴싸하다고 생각한 이유, 머릿속에서 여러 번 다듬고 연습한 이유를 꺼내 말했다.

최대한 담담하게.  


" 최근 연재 씨가 했던 업무 중에 제일 큰 건이 뭐였죠? 00 현장 리모델링 공사 아니었나요?

그거 연재 씨가 웬만한 건 다 했잖아요. 자재 조사에 3D모델링에…아, 도면은 거의 L 씨가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연재 씨가 앞으로도 못 할 건 없을 거 같은데요? "

" 글쎄요. 요즘 회사에 일이 들어오는 경향을 보니, 예전보다 옥외광고나 인쇄 쪽이 줄어든 게 보입니다.

요즘 트렌드가 디지털로 대체되는 추세니... 그리고 회사에선 리모델링 같은 건축공사 일을 계속 받을 거 아닙니까? 그렇게 된다면 제가 여기에서 계속 일하는 게 어려울 듯 하네요. "

" 아니, 앞으로 들어올 일은 생각하지 말고 지금 하고 있는 업무만 봅시다. 내가 보기엔 지금 연재 씨가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봐요. 그리고 지금 급하게 해야 될 큰 작업들이 없잖아요. 연재 씨 역량이 부족해서 퇴사하겠다? 그건 내가 사장님께 보고드릴 이유가 못 돼요. "


충분히 해낼 수 있다, 라...

이제 와서 날 띄워주려고 하다니.

꽤 긴 시간 동안 묵묵히 일해온 직원이 그만둔다 하니, 부장도 어떻게든 나를 붙잡고 싶을 거다.


" 연재 씨가 그래도 여러 프로그램 다루는 게 능숙하고, 우리 회사에 들어오는 웬만한 일은 잘 해내는 편이라

다른 사람 구하기 어려울 텐데... "

부장은 계속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단호하게 나가야 한다.

" 연재 씨가 지금 일을 다 소화해 낼만큼 역량이 된다 하더라도, 퇴사하겠다는 마음은 변함없나요? "

" 네. "

또렷한 눈빛과 말투로 의지를 전했다.

" 몸이 어디가 많이 안 좋은가요? "

" 허리도 아프고 속도 안 좋고... 오후에 반차 써서 병원 갈 정도니까요. "

"... 알겠습니다. 일단 내일 오후 반차는 서류 작성해서 올리면 처리할게요.

사장님께는 연재 씨 건강이 안 좋아서 퇴사한다고 말씀드릴 거구요, 구인광고는 오늘 중에 올릴 겁니다. 나중에 사장님과 따로 면담이 있을 거에요. "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

온갖 미디어에서 언급되는 문구. 읽을 때마다 어찌 그리 공감이 가는지. 학생일 때는 몰랐지만 직장인으로 살면서부터는 정말 절절하게 다가온다. 생각과 너무나 다른 직장생활, 무너진 워라밸, 복잡한 인간관계 속 눈치싸움, 회사 내 온갖 큰소리와 갈등...

조직을 위해 일하다 보면 ‘나’라는 존재가 깎이고 상처받는다. 물론 일하다 보면 그만큼 월급이 따라오고 좋은 일도 생기지만, 그걸로 100퍼센트 만족할 수 있으면 사직서를 품지는 않겠지.

나도 마찬가지였다. 회사를 다니면서 정말 여러 가지 일을 겪었다.

‘이렇게 일하는 게 맞나? ‘ 하면서도 가슴속에 품은 사직서를 꺼내지 않았다.  어리광 부리지 말아야 한다고, 남들도 이만큼은 다 해낸다며 나를 달랬다.

온갖 흔들림 가운데서 힘들어하는 모습은 뒤로 밀어냈다. 회사에서 험한 소리를 들어도,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 일도 ‘어떻게든 해내야지’란 생각에 참고 해냈다. '이번엔 진짜 퇴사한다’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스트레스로 자잘자잘하게 아픈 곳이 많아지면서도 다음날 아침이면 꾸역꾸역 출근 준비를 했다.


그렇게 존재 자체가 희미해져 가던 사직서를, 진짜 마음의 소리를 오늘에서야 조금씩 밖으로 드러냈다.

무작정 버티기에는 몸과 마음의 상처를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5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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