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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선혜 Feb 15. 2023

누가 '집간장' 맛 초콜릿을 먹을 것인가.

칠만 칠천 원짜리 초콜릿의 추억




퇴근하는 남편 손에 하얀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마지막 근무를 하는 후배가 그동안 고마웠다고 준 선물이란다. 빳빳하게 각이 살아있는 쇼핑백 안에 들어 있는 빨간 상자 하나.


"초콜릿이래. 예약해서 겨우 샀다던데?"




안 그래도 낮에 아이와 집 앞 편의점에 들러 초콜릿을 보긴 했었다. 페레로 로쉐와 키세스를 들었다 놨다 했다. 남편은 워낙 단걸 안 좋아한다. 그건 아이와 나도 마찬가지다. 동생이 시카고에 여행 갔다가 사다 준 유명한 초콜릿도 그대로 집에 모셔져 있다. '그거나 나눠 먹을까' 고민하는 데, 아이가 말했다.

 



"엄마, 아빠는 초콜릿보다 감자튀김 더 좋아해. 이거 만원이나 주고 사긴 아까워."








열두 살 현자님께서 그때 이미 앞 날을 내다보신 걸까. 마침 남편이 초콜릿을 선물 받아오다니. 역시 안 사길 잘했다 싶었다. 남편과 아이가 샤워하러 들어간 사이 빨간 상자에 적힌 브랜드를 검색해 봤다.  머리를 말리며 나오는 남편을 식탁으로 오라 손짓하며 외쳤다.





"세상에, 이 초콜릿 그냥 초콜릿이 아니네. 이거 하나가 천 원이래."


편의점에서 만 원짜리 초콜릿도 망설인 나로선 깜짝 놀랄 가격이었다. 아이까지 모두 식탁에 모였을 때 나는 마치 고대 유물을 발견한 듯 그동안 네이버에서 찾은 정보를 읊었다.





"이게 강남에 있는 어떤 초콜릿 가게에서 파는 수제 초콜릿인가 봐. 가격은 천 원."
"헤엑? 천 원? 나라면 안 사겠다."





가격을 처음 들은 아이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응, 근데 이게 사고 싶다고 마음대로 살 수도 없어. 예약이 시작되고 30초 만에 마감됐대. 현금으로만 살 수 있고, 매장에서 직접 찾아가야 하나 봐. 택배도 안 되는 거지. 어떤 사람은 부산에서 새벽기차 타고 찾으러 갔대."





아이는 못 믿는 눈치였다. 남편은 아예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리고 상자를 열었다. 퍼즐 모양으로 짜 맞춰진 18조각의 초콜릿이 드러났다.







삼색볼펜까지 가져와서 치열하게 배분한 흔적




"사진 찍고 먹자."


초콜릿을 향해 뻗은 아이의 손을 치우고, 필터를 바꿔가며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초콜릿이 더 잘 보이게 상자를 요리조리 움직여 마저 더 찍고, 그래도 아쉬워서 아이에게 초콜릿을 안겨줬다. 초콜릿을 상장처럼 들고 있는 아이를 향해 '웃으라'고 하다가 내가 먼저 웃음이 터졌다. 아이도 따라 웃었다.





한바탕 요란을 떨고 나니 상자 안에 있던 빳빳한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각 초콜릿의 재료와 맛의 특징이 소개되어 있었다. 700 상자만 만든 한정판 초콜릿이라더니. 맨 아래에는 우리가 받은 초콜릿이 499번이라고 적혀있었다.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던 세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무슨 맛을 먹을지 고민했다. 아이가 가위바위보를 제안했다. 각자 6개씩. 치열한 승부 끝에 나는 꼭 먹고 싶었던 일본산 호지차가 든 초콜릿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모두가 거부했던 '집간장' 맛 초콜릿도 내 몫이었다.





먹다 보면 감흥이 떨어지니까, 가장 먹고 싶은 초콜릿부터 먹겠다는 남편을 따라 우리도 신중하게 처음 먹을 걸 골랐다. 남편은 시나몬, 나는 호지차, 아이는 캐러멜. 두 손가락으로 초콜릿을 살짝 쥐고 앞니로 깨물었다. 아이는 얼른 삼키지 않고 작게 나눈 초콜릿을 혀로 둥글렸다.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쥔 초콜릿을 요리조리 돌려보았다. 10시 반에 마주 앉은 우리는 12시가 넘어까지 초콜릿 설명을 읽고, 맛보고, 웃고 떠들었다.








"나는 이 초콜릿을 왜 사는지 알 것 같아."
다음에 먹을 초콜릿을 고르던 남편과 아이가 나를 쳐다봤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초콜릿 하나를 놓고 오랫동안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어본 적 있어? 처음에는 밸런타인데이를 노린 상술이라고도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 우리한테 이렇게 즐거운 경험을 선물해 준 후배한테 너무 고맙네."





"엄마는 그래서 이거 다음 밸런타인데이 때 사러 가고 싶어?"
"아니. 사진 않을 것 같고, 그냥 선물 받고 싶어."





내 대답에 아이는 코를 찡긋거리며 웃었다. 초콜릿을 삼키고 남편이 거들었다.
"원래 자기 돈 내고 사기엔 아깝고, 남이 사주면 좋은 거. 그게 제일 좋은 선물이잖아."








남은 초콜릿을 정리하다가 아직 손도 못 덴 '집간장'맛 초콜릿이 눈에 띄었다. 먹어본 사람이 쓴 후기에는 간장맛이 느껴지지 않는다던데, 그래도  내키지 않는다.





오늘 저녁에는 벌칙으로 이 집간장맛 초콜릿을 걸고 셋이서 공기 대결을 펼쳐야겠다. 우리는 어제처럼 많이 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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