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 떡볶이 대신 먹을 수 있는 추천 요리
지난 4월 경, 항생제 부작용으로 인해 SIBO(소장 내 세균 과잉증식) 상태가 되면서 역대급 장 트러블러가 되었다. 기능의학병원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지는 않았으나 SIBO 증상의 99.9%를 겪고 있었기에 확신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는 뱃속에 가스가 너무 많이 차서 불편한 상태가 하루 종일 지속되고, 음식을 먹으면 바로 배가 아파서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루에 몇 번씩이나.
'밥 먹고 바로 화장실 가는 사람이 부럽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 또한 그것이 소화가 잘 돼서 좋은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걱정부터 앞선다. 특히 복통과 설사가 동반된다면 그건 프로 소화러(소화를 너무 잘하는 사람)가 아닌 장 트러블러일 것이기 때문에.
아무튼- 지난날의 나를 되돌아보니 항생제를 먹기 전부터 나는 조금씩 단계적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엽기 떡볶이를 매주 한두 번씩, 불닭볶음면은 2-3일에 한 번꼴로 먹고, 그때마다 맥주 한 캔씩 곁들이는 것이 일상이었으니까. 알싸하게 매운 음식과 술이 위장의 벽을 허물고 유해한 세균들이 증식하기 좋은 환경들을 만들어주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래 놓곤 어느 날 급작스럽게 터졌던 대상포진이나 두드러기 등과 같은 면역 질환을 약만 먹으면 금방 낫는, 너무나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 여겼던 것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자극적은 음식들을 찾았다.
기어코 다친 적도 없던 무릎이 코끼리 다리처럼 부어오르고, 걷지 못하는 수준까지 되어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당시엔 '망할 놈의 항생제'라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실은 운이 좋았던 것이다. 운 좋게 항생제 부작용을 겪은 덕분에 위장 건강 관리를 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그게 나의 식습관을 포함한 모든 생활 습관을 바꿔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영양제를 통한 SIBO 자가치료와 저포드맵 식단을 병행하며 소장 내 세균을 죽이기 프로젝트에 돌입.
서서히 상태가 호전이 되고 정상적으로 걷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고포드맵에 해당하는 음식들도 하나 둘 시도하게 되었다. 위장에 별로 좋지 않다는 카페인이나 기름진 음식들, 초고추장으로 범벅이 된 파절이까지도 겁 없이 먹었다. 식욕도 늘어 예전처럼 과식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 몸 컨디션의 변화를 기민하게 관찰하고 블로그에 기록했다.) 그래도 전처럼 배가 엄청 부푼다거나 설사를 하진 않았다. 유익균 증식에 도움을 주는 장 유산균과 장 점막 재생, 보호를 돕는 l-글루타민도 나를 든든하게 서포트해주는 느낌이었다.
결국 또다시 간사해지는 이 마음. 그동안 참고 먹지 않았던 엽기 떡볶이 생각이 다시 났다.
일주일이 넘게, 유튜브에 넘쳐 나는 엽기 떡볶이 먹방을 보며 달래려 했지만 오히려 괴롭기만 할 뿐이었다. 매운맛도 매운맛이지만 밀가루 떡의 쫄깃한 식감이 더 그리웠다. 결국 밀가루가 없이도 쫄깃한 떡볶이를 만들 수 있다는 '쌀종이 떡볶이' 레시피를 획득. 매운맛을 내는 고춧가루가 없어도 충분히 맛있는 궁중 떡볶이를 요리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로 빨간 맛에 다시 도전하게 되는데...) 살다 살다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쌀종이를 김밥처럼 말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위한 쌀종이 떡볶이 만드는 초간단 레시피]
1. 쌀종이(라이스 페이퍼)를 3장씩 집어서
2. 따뜻 미지근한 물에 적셔주면 흐물흐물해짐
3. 김밥처럼 돌돌돌 말아줌
4. 궁중 떡볶이 양념(물, 진간장, 굴소스, 꿀, 참기름, 후추, 참깨, 양파, 대파, 당근, 표고버섯, 소불고기)에 쌀종이 떡볶이를 먹기 좋게 잘라서 볶아주기
쌀종이 떡볶이는 만드는 법도 쉽고 맛도 있어서 대만족이었던, '엽기 떡볶이 대체 요리'였다. 너무 맛있어서 소식엔 실패했지만 그래도 편하게 소화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몸 컨디션도 괜찮은 걸 보아 쌀종이 떡볶이가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 뒤로 좀 더 친하게 지내기로 했다.
그리하여 엽기 떡볶이 대체 요리 두 번째. 엽기 떡볶이보다는 덜 매운 시장 떡볶이를 사다가 밀가루 떡 대신 쌀종이 떡을 넣어 먹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긴 했지만 양념을 너무 많이 먹으면 배가 아플 것 같아서 물에 조금씩 헹궈 먹었다. '맛만이라도 내보자'라는 생각이었고 물에 헹군 맛도 나름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3개월 뒤, 망각의 동물답게 요즘 컨디션이 좋다는 이유로 겁대가리를 상실한 채 엽기 떡볶이 오리지널 맛을 주문했다. 아무리 식단 관리를 하긴 해야 하지만, 과거 최애 음식 중 하나였던 엽기 떡볶이를 영영 맛보지 못한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엽기 떡볶이는 치킨, 라면, 와플 등 근래 먹었던 음식들 중에 가장 후회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엽기 떡볶이를 먹고 몇 시간이 지나자 온몸이 간지럽기 시작했다. 친언니도 나처럼 자가면역질환의 증상(아토피 피부염)을 가지고 있고 평소에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 가렵다는 얘기를 할 때가 있다. 엽기 떡볶이를 함께 먹고 몸 상태가 어떠냐고 물어보니, 똑같이 가렵던 참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 왜 엽떡을 먹고 몸이 가려운 것일까? 열심히 또 찾아봤더니- 매운 음식이 체내 열을 올리면서 간지러움을 느낄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콜린성 두드러기 같은 증상이라고 할까.
사실 음식을 먹고 간지러움을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서 당황스럽고 짜증이 났다.
이제 정말로 확실해졌다. 장 트러블러에게 엽기적으로 매운 음식은 정말 안녕해야 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