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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미 Jan 27. 2022

어쩌다 프로 장 트러블러가 되었나



지금 회사에 취직하고 약 1~2년 정도 지났을 시점이다.


업무에 슬슬 익숙해져갈 즈음, 심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조금씩 숨통이 트이기 시작하니 자연스럽게 술자리가 잦아들었다. 술이라는 게 참 마법 같은 것이라서, 마시면 기분이 그렇게 좋다. 건강 관리에 집중하고 있는 지금도 술은 내게 완전히 끊어낼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존재다.


아무튼 그 덕에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는 물론, 아무런 약속이 없어도 집에 와서 맥주 한캔을 따는 것이 버릇처럼 되어버렸다. 그 때는 또 어찌나 매운 음식에 빠졌었는지! (사실 지금도 영혼은 매운 음식을 원하고 있다) 불닭볶음면을 일주일에 2~3번은 끓여 먹었다. 여기에도 역시 맥주가 빠질 순 없었다.


그 날의 기분에 따라 삘 받으면 2캔씩 마시고 잠을 청하는 게 일상이었고, 유일한 낙이었다.  


처음에는 불닭볶음면을 먹었을 때, 다음날 아침부터 화장실 신호가 오는 게 반갑게 느껴졌더랬다. 비록 건강한 형태(?)는 아니었지만 괜히 속을 비워낸다는 그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어느 날은 변비가 있으면 의도적으로 불닭+맥주 조합을 찾아 즐겼다. 그리고 어김없이 다음 날엔 화장실에서 무차별적인 공격을 평온하게 받아냈다. 그것이 장이 나에게 처음으로 주는 경고인 줄도 모르고 바보같이 말이다.


습관이란 무서운 거다. 즐거운 일이건, 슬프고 화나는 일이건 이유를 막론하고 술과 매운 음식을 찾았으니까. 쓸데없이 '맵부심'은 왜 부려가지고, 굳이 땡기지 않는 날에도 주변에서 건네면 맛있게 먹었다.


아마도 이 쯤부터일 것이다. 이상하게 '똥'에 집착을 갖기 시작한 것이. (이 이상 더러운 얘기는 쓰지 않았으니 안심하고 읽어도 된다) 매운 것에도 내성이 생긴 것인지, 화장실에 가서 시원하게 볼 일을 보는 횟수가 줄어든 것이다.  


배는 묵직하고 무거운데, 화장실을 못가니 영 불편한 상태가 지속됐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안부 인사 대신 평소에 화장실을 몇번 가냐고 물어보면서 내가 변비인지 아닌지 확인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급성 장염이 찾아왔다. 열이 40도까지 올라서 내과에서 수액을 맞고 간신히 살았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조금만 무리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았다 싶으면 이상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눈 옆에 대상포진이 일어나지 않나, 어느 날은 러닝 후에 집에 돌아오는데 온 얼굴에 두드러기가 잠식해서 빨갛게 부어오르질 않나. 그 모습이 얼마나 징그러웠던지 오돌토돌 피부 표면이 일어난 게 마치 성난 두꺼비같았다.


그럴 때마다 다들 스트레스를 엄청 많이 받았냐고 하면서, 나를 유리멘탈 취급하기 시작했는데 나도 원인을 모르니 괜히 내 자신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회사에서는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 좀 쉬라고 해서 그때는 장염 덕을 좀 봤다)


아무튼 그 뒤로도 장염은 잊혀질 때마다 나를 찾아와 괴롭혔다. 급성 장염에서 만성 장염으로 악화하는 중이었던 거다. 왜 이렇게 유독 장염이 잘 걸릴까 원인을 찾다가 면역력에는 장 유산균이 중요하다는 글을 보고, 꼬박꼬박 챙겨먹기 시작했다. 상태가 안 좋다 느끼면 하루에 2포 또는 2알씩 챙겨 먹을 정도로 의존증이 커졌다.


다행히도 그 덕분에 화장실을 가는 횟수가 조금 더 늘어나는 듯 했다. 역시 '장 유산균이 짱이구나' 생각했던 나는 이로써 내 장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2021년 4월, 사랑니를 뽑기 전까지는 말이다. 정확히는 사랑니를 뽑고 나서 'ooo'를 먹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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