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다리가 되었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왼쪽 무릎보다 오른쪽 무릎이 좀 더 부어 보이네-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날 점심은 역대급으로 맛있었던 물닭갈비를 먹고 후식으로 아이스 라떼를 마셨던 날이다. 유독 이 날의 음식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건, 그만큼 내 다리에는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코끼리 다리가 되기 전에, 이미 내 몸은 또 한차례 경고를 줬었다. 눈으로 볼 것도 많고, 맛볼 것도 많은 삼척이라- 그 전날에는 싱싱한 회 한 접시와 매운탕에, 시원한 소주도 한잔 거들었다. 얼마 벌어지지 않는 턱관절 때문에 두툼한 회 한 점도 덜덜덜 안간힘을 쓰며 먹고 있는 나 자신이 웃프기도 했다. 더욱 가관이었던 건 음식을 뱃속으로 들이밀면 밀수록 열이 나는 몸뚱이였다. 엄지발가락과 턱관절의 통증도 심해져갔다. 결국, 그 좋아라 하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 숙소로 돌아와 소염진통제를 털어놓고 잠이 들었다. 새벽 내내 식은땀을 흘리면서.
그 뒤로 계단도 오르내리기 힘들 정도로 부어오른 무릎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발을 접질린 적도 없는데, 멀쩡한 무릎이 부어오른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초록색 검색창에 '무릎 부음'이라고 검색해 보면 다양한 결과가 나왔다. 그중 나의 증상은 베체트병과 비슷해 보였다.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이었다. 평소에 튼튼하다고 자부해왔던 나 자신, 무슨 일이야.
그때부터 다시, 강원도에서 제대로 못했던 여행을 병원 투어로 대신하기 시작했다. 순전히 '여행'이었다면 돌아다니고 구경하는 것만으로 나에게 뭐라도 남는 것이 있었을 텐데. 병원 투어는 나에게 원인과 결과, 그 어떤 것도 확실히 남겨주는 것이 없었다.
일반 한의원에 갔더니 봉침을 놓고 체질 개선을 해보자고 하고, 비싸기로 유명한 한방병원에 갔더니 MRI 촬영부터 하자고 했다. 대형 병원에서는 이렇게 높은 염증 수치를 보고도 그저 잘 먹고 푹 쉬라는 말 뿐이었다. 대부분은 '확신'이 없는, 그저 진단을 위한 진단이었다고나 할까.
뭐라도 중복되는 소견을 들었으면 좋았을 런만. 도대체 몸이 왜 이러는지 원인을 알 수 없어 너무나 답답한 심정이었다. 그 순간, 친언니가 처음 들어보는 단어를 꺼내더라. "장누수 증후군 같은 거 아니야?"라고. 친언니는 어릴 때부터 아토피 피부 질환으로 고생을 해서 '자가면역질환' 관련해서는 거의 박사급 수준이었다. 왜! 왜 내 옆에 박사님을 두고 다른 곳을 돌아다녔을까. 조금은 실마리가 풀리는 듯했다.
습관처럼 초록색 검색창을 켰다. 장누수 증후군은 기능의학병원에서만 정식으로 칭하는 질환이었다. 일반 병원에서는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반쪽짜리 질환. 어쨌거나 기능의학 분야에서는 장누수 증후군이 생기면 나처럼 신체 곳곳에서 염증과 통증 반응을 일으킨다는 자료들이 상당히 많았다. 나처럼 관절에 염증이 생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신 근육통으로 오는 사람까지 다양한 사례가 있었다.
그렇다면 장누수 증후군을 치료해줄 수 있는 병원을 가야겠구나! 생각했다. 벌써 몇 번째 병원 투어인지 정확히 셀 수도 없었지만, 이 짓을 포기할 수 없었다. 단순히 항생제 따위를 잘못 먹어서 걸린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라기엔,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을 만큼 증상이 심각해지고 있었으니까. 나의 평범한 일상도 올스탑 된 상황이었다.
장누수 증후군을 치료하는 곳을 찾아서 기능의학병원과 한의원 두 곳을 가보았다. 절망스럽게도, 기능의학병원에서조차 나의 증상을 '특이하다'라고 했다. 염증의 원인을 찾는 검사야말로 가장 까다롭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해봐야 아는데 나이도 젊고 건강했던 사람이 할 만한 검사인지 모르겠다고. 단, 항생제를 먹고 나서 상태가 악화한 것이니 장 건강을 회복시키는 것부터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방법은 기능의학병원에서 제공하는 수액 및 영양제 치료와 식단 처방 등이었다. 그때 처음 '포드맵 식단'에 대해 들어보았다. 아무튼 치료의 핵심은 장에 무리가 가지 않는 식단을 지켜야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
그다음은, 살면서 듣도 보도 못한 방법으로 여러 난치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한의원이었다. 진료를 받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홀린 듯 80만 원을 결제해 버렸다. 너무나 간단한 치료 방법에 금세 마음을 뺏겨서, 기능의학병원이고 뭐고는 후순위로 밀려나고 말았다. 어느 곳도 명확히 밝혀주지 않던 나의 염증의 원인을, '알레르기 반응'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원장님에게 하루빨리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곳의 치료 방식은 기가 막힐 정도로 신기했다. 알레르기 요소가 들어있는 병을 들고, 팔을 들었을 때 얼마나 잘 올라가는지 움직임의 정도를 보고 알레르기 유무를 판단했다. 계란 알레르기가 있다면, 계란 알레르기 병을 손에 쥐고 호흡을 하면서 등에 마사지 건 같은 기계로 따발총을 연신 맞는다. 그리고 마무리로 한의원 침까지 맞고 30분 동안 휴식하다가 가면 된다. 24시간 동안 계란과 관련한 모든 음식을 먹지 않고 접촉하지 않으면 치료가 된다.
지금도 기괴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그 당시에는 이 방법밖엔 없다는 생각에 간절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치료해야 할 알레르기 개수는 100여 종 가까이 될 정도로 너무 많았고, 심지어 첫 번째로 시행했던 계란 알레르기 치료 효과도 느끼지 못했다. 여전히 배가 부글거리고 가스가 차서 불편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걸 믿고 몇 개월씩 치료를 받아야 한다니, 머지않아 인내심의 한계에 부딪힐 것이 뻔했다.
결국 한의원 치료는 그만두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이번엔 소득이 아주 없진 않았다. 원인을 끝까지 알 수 없는 병원 투어는 이만 접고 스스로 '식단 관리'를 하자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