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번째 순간
계절에 관한 일본어 중에 '하루이치방(春一番)'이라는 말이 있다. 겨울이 끝날 무렵에 최초로 부는 강한 남풍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루이치방은 곧 겨울의 종식과 봄의 도래를 의미한다. 어떤 관계가 더 이상 예전 같을 수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때가 있다. 관계에도 하루이치방이 불어오기 때문이다. 이런 바람은 예고 없이 찾아오긴 하지만 느닷없는 것은 아니어서, 일단 한 번 일기 시작하면 다음은 속수무책이다. 방향을 바꾼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 계절은 변하고 관계는 휘청인다. 계절은 다시 돌아온다는 점에서 얼마간 희망적이지만, 관계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절망에 조금 더 가깝다.
함께한 계절을 뒤로하고, 서로 다른 계절을 향해 나아간다. 관계는 그렇게 엇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