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5, 2022
Y가 메시지를 보내온 건 퇴근 무렵이었다. 잠시 사무실 밖에서 보았으면 한다고 했다. 입사한 첫해 같은 팀에서 만난 우리는 이듬해 그가 다른 팀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친하게 지내는 사이가 됐다. 복도로 나가니 그가 익숙한 웃는 얼굴로 나를 반겼다. 내가 먼저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는 대뜸 얼마 전 가족과 함께 다녀온 제주 여행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평소 좋아하던 전이수 작가의 갤러리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러고는 내 앞으로 불쑥 작은 쇼핑백을 내밀었다. 전시를 보고 나오는 길에 기념품샵이 있어서 둘러보다가 마음에 들어 산 다이어리라고 했다.
"좋아할 진 모르겠지만, 내 거 사는 김에 하나 더 샀어."
갑작스러운 선물에 내가 짐짓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자, 그는 선물엔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다이어리를 살펴보다가 문득 내 생각이 났고, 그래서 한 권 더 샀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에는 들지만 내 취향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그렇더라도 내 몫으로 산 것이니 받아달라고도 말했다. 사려 깊은 말이었다. 나는 행여나 그가 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고 실망하지 않도록 호들갑스럽게 고마움을 표하며, 그의 취향이 담겼다는 선물을 기꺼이 받아 들었다. 아무 날도 아닌 날, 아무런 이유 없이 누군가 나를 떠올리기도 한다는 사실에 조금은 마음이 동한 채로.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에게 선물할 일이 생기면 소모품 위주로 고르곤 한다. 편한 사이라면 상대에게 아예 처음부터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묻는다. 내게 좋은 물건이 받는 사람에게는 좋은 물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내 딴에는 상대를 위한 배려라고 하는 행동이지만, 사실 쓰고 사라질 것이나 필요한 걸 선물하면 주는 사람 입장에서도 마음이 편안하다. 반면에 남아있는 기억 중에서 내 취향의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선물한 일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마저도 상대에게 괜히 쓸모없는 물건을 선물한 게 아닌가 한동안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만 짙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물하는 거라던 Y의 말은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포근한 느낌의 그림들로 채워진 다이어리를 한 장 한 장 넘겨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귀한 선물은 아닐까 생각했다. 만약에 우리에게도 다음이라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때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선물하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좋아할 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