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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 솔 Jul 03. 2022

벚나무에게

Apr 9, 2022

3월 하동에 갔었다. 쌍계사 십리벚꽃길을 보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꽃이 만개했다는 날짜에 맞추어 내려갔지만 기대했던 풍경은 볼 수 없었다. 올해는 작년보다 개화 시기가 늦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잔뜩 움츠린 꽃망울만을 눈에 담고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이 지나자 남녘에 벚꽃이 만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긋난 타이밍이 조금 아쉽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다시 이레가 지나면 내가 사는 곳에도 벚꽃이 필 것이고, 벚꽃은 어느 곳에서 보든 아름다우니까. 무엇보다 올해도 흐드러진 벚꽃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테니까.


집 앞 벚나무의 성미 급한 꽃봉오리 몇 개가 먼저 말간 제 얼굴을 드러낸 날, 코로나에 확진됐다.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7일간의 격리 생활이 시작됐다. 눈치 없는 일기예보는 다가오는 주말이면 벚꽃이 만개할 거라고 전망하고 있었다. 격리가 끝나면 꽃은 이미 절정을 지나 잎을 떨구고 있을 터였다. 왜 하필 지금일까. 하고많은 순간 중에 왜 하필이면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때일까. 평소 벚꽃에 대한 나의 애틋한 마음을 잘 아는 사람들이 안타깝게 되었다며 위로의 말을 전해왔지만, 억울한 기분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언제부터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부터 벚꽃잎 흩날리는 이 시절을 좋아하게 되었나.


벚꽃에 관한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의 모교는 한 학년에 학급이 하나뿐인 작은 시골 초등학교였다. 3학년인가 4학년 때쯤이었을 거다. 식목일을 앞두고 학교에서는 전교생의 이름으로 우리 지역에 벚나무를 심는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고, 아마 지자체와 함께 가로수 조성 사업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내 이름으로 된 벚나무는 마곡사로 향하는 604번 지방도 한편에 심겼다. 도로를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진 가로수에는 나와 교우들의 이름이 적힌 하얀색 이름표가 달렸다.


애당초 튼튼하지 못했던 이 이름표들은 어느 순간 훌쩍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아직 꽃 피우지 못한 벚나무 아래서 멋쩍은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던 기억도 세월과 함께 풍화되어 갔다. 그래도 내 고향 길가에 선 벚나무 한 그루가 내 이름으로 심겼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았다. 벚나무는 해마다 무럭무럭 자랐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난 내가 기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의 어른으로 성장하는 동안, 벚나무만큼은 한결같이 제자리를 지키며 기대하던 모습으로 자라주었다. 해마다 모진 바람과 긴 겨울을 견뎠고, 봄이 오면 어김없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삶의 길목길목에서 자주 굽이치던 마음은 그런 나무의 존재만으로도 위안을 얻곤 했다.


벚꽃에 대한 애정은 아무래도 오래전 그때, 벚나무에 내 이름표가 달리던 날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보기에도 작고 연약해 보였던 벚나무들은 이제 나이테가 늘어 크고 단단해졌다.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한층 더 깊고 짙어져 있는 벚나무들의 그늘을 보면서 이제껏 지나온 시간들을 생각한다. 비록 너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나도 어느새 이만큼 자라서 제법 잘 살아가고 있다고. 내년 봄에는 내 고향 벚나무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부기1.

지난봄에 쓰다만 글, 여름 오고 난 뒤에 간신히 고쳐 쓴다.

시와, <나무의 말>

부기2.

그리고 2023년 내 고향 벚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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