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이런 건 아니었다.
퇴사를 하고 처음에는 혼자 먹는 일품요리, 맛있는 일품요리, 간단한 일품요리 같은 걸 찾아보고 앞으로 우아하고 여유 있게 점심을 먹으리라 다짐했었다.
정해진 점심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서 빵이나 떡 같은 것으로 대충 먹고 어쩌다 시간이 난다고 해도 시계를 보면서 서둘러 먹어야 했던 직장 생활에서의 점심을 '럭셔리 점심'으로 바꾼다면 나의 퇴사는 큰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요리를 하고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느긋하게 먹는 점심이란 얼마나 우아한가. 요리를 하기 싫을 때는 맛있는 식당을 찾아가서 조용하게 먹는 점심은 또 얼마나 근사한가
그러나 현실은 ....
시계를 보고 점심시간이 가까워오면 먹을까 말까부터 고민한다. 안 먹으면 건강에 안 좋으니 뭐라도 먹자고 마음먹고 주방으로 가서 우선 한 바퀴 훑어본다.
뭐 대충 먹을 거 없나 눈으로 빠르게 스캔한 후 아무것도 없으면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다시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한다. 마침 먹을거리가 있으면 그걸 꺼내고 없으면 이번에는 싱크대 식료품칸을 열고 쭉 검토한다.
국수? 뭐 넣고 비벼 먹지? 패스. 스파게티? 면 삶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패스. 짜파게티? 어제 먹었는데, 패스. 스팸? 난 못 먹으니 패스. 라면? 뜨거워서 더워, 패스. 시리얼? 우유가 없네. 아쉽다.
이렇게 철저한 검토가 끝나고 나면 "아무거나 먹지 뭐. 어차피 한 낀데." 아주 쿨한 결정을 하고 나서 가장 빠르고 쉬운 메뉴를 고른다.
달걀 프라이 한 개, 고추장 한 스푼을 찬밥에 넣고, 호박, 당근 , 버섯은 머리속에 넣고.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