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요작가 Mar 17. 2024

내가 궁금한 나에게

글.그림 김유미

‘가까운 가족들에게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네요. 가족과 만남을 통해 활력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화요일, 그 어느 때보다 도전에 맞설 준비가 되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주말에는 멋진 아이디 어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월요일 아침이면 어느 잡지사 홈페이지에서 별자리 운세를 확인한다. 한 주를 시작하는 나름의 루틴이다. 나는 참 이런 걸 좋아한다. 보편적인 이야기가 내게만 해당하듯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들. 타로와 사주가 그랬고, 요즘은 성격유형검사(MBTI) 그렇게 신기하고 재미난다. 


 MBTI에서 정의하는 나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가끔 우울한 자신에게 심취하고 말이 없고 게으른 완벽주의자라고 한다. 한번 싫은 건 끝까지 싫어하고 연락을 귀찮아하는 것까지 맞추니, 어쩜 이리도 용할까? 나를 발견하는 기쁨에 개발자에게 복채라도 내고 싶은 심정이다. 


 남에게 나를 설명하는 일이 곤혹스러운데, 10분만 투자하면 알파벳 4자가 성격과 취향을 대변해주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언제나 어려운 자기소개를 대신해도 좋겠다. 반대로 새로운 만남에서 본격적인 대화를 하기 전에 상대의 MBTI를 먼저 묻고 싶을 때도 있다. 어떤 유형인지 힌트를 얻는다면 서로를 탐지하는 어색한 시간을 줄일 수 있을 텐데, 혈액형이나 묻는 식상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이내 입술을 꾹 다문다. 이건 내가 I형이라 그런 것일까? 


 낯가림이 심하고 내향적이면 I형이라고 한다. 나는 I형에, 생각을 넘어 몽상에 자주 빠지니 N형이고 즉흥적으로 행동하기를 잘하니 P형이다. 생각을 많이 하고선 결국 제멋대로 행동하는 모습이 늘 모순적이라 고민했는데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는 동질감에 위로가 된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짜증이 났을 땐, 역시 난 계획성 없는 P형이라 그렇다고 자기 친절을 베푼다. 공감의 대명사인 F형임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슬픔에 왜냐고 묻는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한다. 점점 스스로를 테스트 결과 안에 가두고 있다. 


 온갖 심리 검사에서는 내가 생각이 많다고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특히 복잡한 상황에 부딪히면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하기보다는 회피하는 편이다. 그러고선 대신 답을 찾아 줄 심리적 혹은 미신적인 안전장치를 찾는다. 거기서 얻는 해결책은 조금이라도 고민해봤다면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내용임에도 말이다. 처음 본 상대에게서도 취미가 아닌 성격 유형을 궁금해하는 것도 굳이 정신적 에너지를 소비하고 오래 관찰하기보다는, 좀 더 편하게 정보를 얻고 싶은 마음이다.


 오롯이 고유한 나를 알고 싶다면 이런 테스트가 아닌 자신과 대화를 시도하고 이해하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남들이 나에 대해서 모른다고 해서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알기 쉬운 단어들로 시원하게 본인을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다. 복잡미묘한 매력덩어리인 나를 고작 10분짜리 테스트로 알아내기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만 안다
『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뤘습니다.』 중에서


 내가 궁금한 나는, 자신과 시간 보내기를 실천한다. 스스로에 대한 관찰을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원래 그림이 그런 용도였는데, 이제 그림은 약간의 일이 되어 내가 아닌 작업에 더 몰입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틈을 찾았다.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혼자만의 만찬을 즐기는 것이다. 만찬이라고 해 봤자 흰 우유와 스콘, 때론 반숙란이 전부다. 사실 요리하기 귀찮아 단출한 메뉴지만, 언제 먹어도 행복한 음식이기도 하다. 그 덕에 여유도 생겼다. 혼자 보내는 식탁의 시간은 자유롭다. 의식 없이 하는 행동 속에서 나를 발견한다. 밥 친구로 넷플릭스를 켜두지만, 그저 BGM이 될 뿐이고, 읽고 싶다던 책은 한두 장 책장을 넘기다 이내 딴짓이다. 혼자 있고 싶다지만, 친구에게 고기가 먹고 싶다고 카톡을 한다. 그렇게 시작된 수다는 자연스럽게 다음 약속으로 이어졌다. 생각보다 나는 말이 많고 연락을 귀찮아하지 않는다.


ⓒ'식탁의 시간', 53.0x45.5cm, oil on canvas, 2020, 김유미 작가

 다른 하나는 아침일기를 쓰는 일이다. 하루를 마감하며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 아닌, 그날의 기분을 알기 위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아침에 쓰는 일기는 밤보다 감성은 덜하지만, 파이팅이 넘친다. 잠으로 리셋이 되어 그런지, 차분하면서도 긍정적인 기운으로 가득하다. 오늘 내 기분은 내가 정한다는 마음으로, 나만을 위한 하루를 써 내려간다. 존재나 삶의 의미를 찾는 거창한 일이 아닌 만나고 싶은 사람, 점심으로 먹고 싶은 음식, 좋아하는 색깔 등을 묻고 채워 주는 작은 일들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것을 씀으로써 생각을 일깨우고 대화하며 표현하는 법을 익힌다. 좋아하는 일에는 감사하고 감동하고, 싫어하는 일은 거절한다. 그렇게 만든 내 공간 안에서 하고 싶은 일들로 채우고 있다. 자신을 알려면 이 정도의 노력은 필요하다. 하루 30분도 채 안 되니, 가성비가 꽤 괜찮은 방법이다. 


 이쯤 되니 이런 루틴을 만들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나는 확신의 인프피인 듯하다. 또 하나 확실한 건, 지금 내가 MBTI 과몰입 단계라는 것이다. 


김유미 
일과를 끝낸 저녁 시간에 그림을 그린다. 그림만큼 글짓기도 좋아한다. 온종일 그리고 쓰며 사는 삶을 꿈꾼다. 쓴 책으로는 『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뤘습니다.』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용기가 필요한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