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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작가 Mar 31. 2024

내성적인 엄마가 걱정인 나에게

글.그림 김유미

푸바오가 인기다. 판다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 그런지 SNS 알고리즘은 어느새 나를 아기 판다 푸바오에게로 이끌었다. 그 덕에 내게 영감을 주는 소재들이 풍성해졌다. 푸바오로 시작해 바오 가족에게 입덕하는 것은 정해진 운명인 걸까? 사육사가 판다에게 떨어진 당근을 씻어 주는 것을 봐도 심장이 아픈 걸 보니 그림에서 판다 이야기가 계속될 것만 같다. 오늘은 판다로 글까지 쓰고 있으니 입덕을 부정할 순 없겠다. 


 판다 가족 영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짤은 바로, 엄마 판다 아이바오의 것이다. ‘등짝 스매싱’을 검색하면 푸바오가 연관 지어 나오는데 아이바오가 말썽 피우는 그녀의 딸 푸바오 등짝을 때리는 영상이다. 여기서 킬링포인트는 아이바오를 말리지 않고 살살하라는 사육사다. 또 놀러 간 푸바오를 피해 본격적으로 대나무 먹으려는 아이바오가 딸이 다가오는 기척에 한숨을 크게 쉬는 영상은 몇 번이고 돌려 봤는지 모르겠다. 마치 엄마와 내 모습 같아서 웃음이 났다. 


 부산집에 가 있을 때면 나는 엄마 껌딱지가 된다. 부산에 간다고 하면 다들 여행가는 기분이겠다며 부러워하지만, 엄마와 함께 있을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집 밖을 거의 나가지 않기에 크게 감흥이 없다. 삼시세끼 집밥을 먹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집순이인 엄마를 외출시키기란 여간 쉽지 않다. 전망 좋은 카페로 커피라도 마시러 가자고 해도 나가면 다 돈이고, 물이 제일 맛있다며 꿈쩍도 하지 않는다. 막내 동생을 동원해도 소용이 없다. 삼 남매가 돌아가며 보채도 엄마는 꿋꿋하게 생선을 굽는다.


 한때는 명절이면 집에 가지 않겠다고 엄마 속을 썩인 적이 있었다. 기차표 예매 전쟁을 치르는 일도, 친척들이 명절 내내 우리 집을 차지하는 상황도 싫었다. 딱히 서울에서 할 일도 없으면서 기다리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럴 때면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닭볶음탕을 해주겠다며 나를 꾀었다.


 이 철없는 행동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선 고쳤다. 중국 출신 방송인은 명절에서나 중국에 계신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30대가 조금 넘었던 그는 부모님이 100세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고향에 가는 일이 100번도 채 안 된다며 울먹였다. 부산에서 혼자 지내는 엄마는 보름달이 뜨면 내게 전화한다. 달이 크다며, 얼른 달 보고 소원을 빌라는 것이다. 엄마에게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물으면 우리 가족의 건강 때론, 나의 시집이라 했다. 언젠가 보름달이 떠도 엄마의 전화가 오지 않을 거로 생각하니, 아찔했다. 천 번 넘게도 보지 못할 가족을 보러 가기 귀찮다고 했으니 나도 참 어리석었다. 이후로 해가 뜨면 엄마에게 굿모닝 톡을 보냈고 점심에는 무엇을 드셨는지 물었다. 적어도 2~3개월 한 번은 부산에 가려고 노력했다. 


 엄마가 정년퇴직하면서 내 간섭과 집착은 점점 심해졌다. 하루 종일 외롭게 있을 엄마가 걱정되었다. 한동안은 회식으로 맛있는 것을 먹을 때도, 친구들과 좋은 곳을 갈 때도 엄마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가뜩이나 친구도 많지 않은 분인데, 이사를 하는 바람에 동네 친구들도 없는 상황이었다. 취미라도 만들자며, 활동적인 게 싫다면 나처럼 그림을 배우면 딱 좋겠다며 엄마를 꾀었다. 나중으로 미루는 엄마 손을 잡고 미술학원에 가 “우리 엄마 좀 잘 부탁드려요.”하고 나와야 걱정이 멈출 것만 같았다. 과거에 엄마가 나를 이끌고 웅변학원에 간 것처럼 말이다. 


 엄마의 핑계는 한결같다. 직장을 관뒀으니, 시간이 없다는 이유는 안 먹혔다. 날이 더워서 싫다거나 코로나가 무섭다고 했다. 그럴 때면 나는 푸바오처럼 엄마 옷을 잡아당기고 배를 주물렀다. “그럼, 엄마! 애들이랑 베트남으로 놀러 갈까? 아니면 제주도 한 번 더 가볼까?” 이쯤이었다. 엄마는 아이바오처럼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냥 집에 있고 싶어. 이제 사람들 만나는 것도 싫고, 안 할래. 안 해도 되잖아.”라며 나를 밀치고는 TV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던 중에 엄마가 좋아하는 젊은 트로트 가수가 나왔다. 그제야 미소를 보인다. 엄마는 직장, 시댁, 친정 그리고 우리에게 벗어나 혼자 있고 싶다고 했다. 더 이상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하겠다며, 동네 산책을 하고 옥수수 먹으면서 TV 보는 요즘이 최고로 행복하단다. 엄마는 제대로 집순이 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다.


엄마의 시간/53.0x45.5cm/oil on canvas/2020, 김유미 작가

 30대의 엄마는 집에서 책만 보는 내가 걱정이었다. 저러다 친구도 못 사귀는 건 아닐까 싶다고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다. 어디서 추천받았는지 몰라도 엄마는 싫다는 나를 이끌고 웅변학원에 데리고 갔다. 조용하고 활동적이지 않다고 해서 심심하거나 외로운 것이 아닌데, 뭔가 잘못된 일인 양 자꾸만 고쳐 주려고 한다. 지금 내가 그런 모양이다. 


 혹시 누군가 집에만 있겠다는 엄마가 걱정이라면 가만히 내버려 두면 된다. 그동안 자신이 타고난 기질과는 반대로 살아오느라 가진 에너지를 다 소진했을 테다. 혼자였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과 말, 그리고 낯선 관계들과 고군분투했을 시간 속에서 해방되고 자신의 시간을 찾은 것이다. 그런 엄마의 시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주말에 여동생이 서울로 일이 있어 온단다. 아이를 낳고는 처음 오는 일이라, 동생의 방문이 설렜다. 예전 같으면 엄마도 꼬셔서 함께 오라고 할 테지만, 트로트 라이브 방송을 봐야 한다는 엄마의 의사를 존중했다. 대신 4 살배기 조카도 함께 오냐 물으니 혼자 온다고 한다. 유치원 체육행사가 있고 마침 남편이 봐준다고 잘됐다고 했다. 내심 함께 오길 바랐는데, 내 동생 눈치 없는 건 여전하다. 서울 오는 김에 롯데월드도 가고 좋지 않겠냐며 힌트를 줬지만, 동생은 혼자가 편하다고 했다. 


 눈치가 없는 건 나였다. 동생도 자유로운 시간을 원한 것이다. 언니와 쇼핑도 하고 카페에서 수다도 떨고 화장실도 혼자 가는, 그런 자유 말이다. 다들 엄마가 되면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해지는 건가. 나의 엄마와 엄마가 된 동생도,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동안 쌍둥이를 출산한 아이바오까지.

 우리에게 자신의 시간을 양보한 세상 모든 엄마의 시간을 응원한다.


김유미 
일과를 끝낸 저녁 시간에 그림을 그린다. 그림만큼 글짓기도 좋아한다. 온종일 그리고 쓰며 사는 삶을 꿈꾼다. 쓴 책으로는 『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뤘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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