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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작가 Jun 02. 2024

구해줘

글.그림 김유미

한없이 답답하고 우울해질 때 저마다의 해소법이 있다. 혹자는 달콤한 간식을 먹거나 술을 마신다. 운동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누군가를 만나 눈물을 쏟아내기도 한다. 그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점을 본다. 각자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부정적인 기운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쓴다.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미간에 보톡스가 시급한 주름이 더해지고 눈 밑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날이었다. 모든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는, 하늘이 날 잊었나 싶은 서러운 하루였다. 회사에서는 난처한 문제가 생겼고 연애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사랑과 일, 일과 사랑, 그게 삶의 전부라고 프로이트는 말했지만 내겐 이 두 가지가 최고로 어렵다. 위로가 필요했다. 카카오톡(이하 카톡) 대화 목록을 뒤적거렸다. 이번 주는 생리를 시작해 수영강습을 빠진다는 친구에게 말을 걸려다 말았다. 얼마나 나오기 싫을지 잘 알기에 금방 대화창을 닫았다. 요즘 사업이 어렵다던 지인의 카톡 상태 메시지는 심각했다. 셀카 올리기를 좋아하던 그가 프로필 사진을 없앴다. 또 다른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계속되는 야근에 죽겠단다. 우리 모두 위로가 시급하다.


정시퇴근에 꼬박꼬박 월급을 받고, 그날도 아닌 나는 차마 그들에게 투정 부릴 수가 없었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마다 친구를 찾을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힘들 때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 친구라고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들에게 어두운 기운을 전염시킬 수는 없다. 마음이 복잡한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상대는 너만 힘든 게 아니라고 했다. 겨우 꺼낸 속마음이 휴지 조각처럼 나풀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남아있던 기운마저 빠졌다. 때로는 내 슬픔이 드라마 속 주인공의 눈물처럼 특별했으면 좋겠다.


이후로 마음이 울적해도 혼자서 기분을 달래기 시작했다. 고기를 굽거나 택배를 기다렸다. 고기와 택배로도 사라지는 슬픔이 아닌 날에는 모든 감정의 스위치를 끄고 침대로 향한다. 나는 우울하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가 꺼려진다. 실은 지켜보는 일도 어렵다. 누군가 아프거나 힘겹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걱정을 넘어 속상하고 화가 난다. 공감이 아닌 상대를 동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만다. 위로는 위로받는 사람이 하여금 자신이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일이라는 시 구절을 기억한다. 위로하고 위안을 받는 일에 서툰 나는 그렇게 이불 속으로 도망친다.


이불 속은 꽤 좋은 피난처가 된다. 전기장판까지 틀면 대여섯 번째 알람이 울리고야 깨는 통잠을 잘 수가 있다. 근심 속에서도 곧잘 잔다고 하면 다들 신기해한다. 나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꿈나라에 갈 수 있다. 아무래도 타고난 재능 같다. 이런 나도 바로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릴 때가 있긴 하다. 공복이거나 기다리는 연락이 있으면 그렇다.

뒤척이지 않고 바로 잠드는 밤/72.7x53.0cm/oil on canvas/2020

우울할 때 잠을 자는 행동은 전형적인 회피유형이라고 한다. 회피행동에는 술, 쇼핑, 게임 등이 있는데 가장 손쉬운 행동이 바로 수면이다. 돈이나 체력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 게으른 내게 딱 맞다. 물론 상황을 외면하는 건 건강한 해결책은 아닐 테다. 그렇다고 살면서 매번 부딪히고 싸울 수만은 없다. 도망도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의 하나다. 잠시 자리를 피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용기를 충전하고 돌아와도 늦지 않다. 이런 회피행동이 장기적이고 습관화되어서 무기력에서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것을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 전에 한 생각이나 잠들기 전 감정 상태는 뇌에 그대로 각인된다. 뇌과학에 따르면 자기 전에 불안에 떨거나 누군가를 원망하게 되면 그때 편도체가 왕성하게 활성화된다고 한다. 우리 뇌에서 감정을 처리하는 편도체는 즐거움, 불안, 공포 등 감정 기억을 만들어 낸다. 이런 편도체가 활성화된 상태에서 수면할 경우 편도체가 강화된다. 즉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채 잠들게 되면, 분노하고 불안해하는 마음이 버릇처럼 돼버린다. 그 때문에 취침 전에는 편도체를 안정시켜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 명상을 많이들 이야기한다.


사실 아침이 와도 골칫거리는 그대로 남아있다. 결국 스스로 처리해야 할 대상이고 감정들이다. 적어도 깨어 있는 동안에 부풀었을 자괴감과 바닥 쳤을 자존감은 지켰으니 다행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하는 걱정과 고민의 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늘 아래 풀지 못할 실타래는 없고, 이 또한 지나간다는 인생의 진리를 알고 있다. 잔인하지만, 너만 힘든 게 아니라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니다.


수면은 그것을 상기시킬 시간을 벌어다 주고 문제를 직면할 에너지를 충전해 준다. 실제 우리가 자는 동안에는 뇌와 몸에 여러 가지 독소가 제거된다. 망가진 감정의 평행을 맞추기 위해서 밤새 세포의 치유와 회복이 일어난다. 또 학습된 내용은 분류 저장되는데, 불필요한 감정은 버리고 중요한 부분은 남겨서 장기기억으로 처리된다. 그렇게 자는 동안 감정은 조절된다. 수면도 꽤 과학적이다.


이 과정에서 꿈을 꾸기도 하는데, 꿈은 심리상태를 반영한다. 평소 하던 생각들이 꿈으로 연출된다. 오늘 있었던 특별한 순간이 주제가 되고 출근길에 무심코 들은 노래가 배경음악이 된다. 잊은 줄 알았던 과거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르고 원하는 미래의 장면이 흐릿흐릿 어물거린다. 한참 꿈속을 헤엄치다 누군가 내민 손에 놀라 잠에서 깬다. 상대를 보고서야 이내 안심하고 내민 손을 잡는다. 붙잡은 손을 놓지 않고 불안한 마음을 멈춘다면 다시 인생을 사랑할 수 있다. 그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꿈도 이룰 수 있다. 그러니 다시 깨어나야 한다. 나를 구해줄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므로.


김유미 
일과를 끝낸 저녁 시간에 그림을 그린다. 그림만큼 글짓기도 좋아한다. 온종일 그리고 쓰며 사는 삶을 꿈꾼다. 쓴 책으로는 『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뤘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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