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그냥 해버렸다. 티켓 결제를.
나의 등산기록을 브런치에 하나하나 남겨보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첫 글을 게시한 것이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첫 기록. 22년 9월. 벌써 2년 전의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시간이 이렇게나 빠르게 흐름에 한번 놀라고, 어쨌든 저 글이 가지고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 하는 놀라움.
처음 등산은 시작한 건 순전히 재미 삼아였지만 지금의 나는 좀 다르다.
첫 등산 이후 오래 신지 않아 삭아버린 등산화와 가방은 나를 곧장 백화점으로 이끌었고, 그때 알게 된 '피엘라벤'이라는 브랜드가 이제 즐겨 입는 브랜드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피엘라벤에서 주최하는 <피엘라벤이 클래식>이라는 세계적인 트래킹행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마음속에 작은 외침이 지금까지도 이어진 것 같다.
"꼭 가볼 거야. 꼭 참여할 거고. 난 그 경험을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지난 2년간 그 작은 외침이 나의 지갑을 얼마나 열어젖혔는지 모르겠다.
작은 외침은 늘 큰 환상을 만들어냈고, 백패킹도 하지 않고 등산만 즐겨하는 나에게 65리터짜리 가방을 안겨주는가 하면, 시즌별로 항시 가장 예쁜 색 조합으로 늘 풀세트의 등산의류를 마련해 댔다.
브랜드가 원하는.. 어쩌면 최고의 고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는 충성고객이 되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장비와 의류는 항상 업데이트 중이다.(등산에서 빠질 수 없는 것 중에 하나도 멋이라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큰 기대가 어느덧 진짜환상으로만 굳어가던 올해 초.
작은 일에는 서슴이 없는 나지만, 큰 결정을 해야 할 때는 스스로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나에게 임무를 주기로 했고 그 작전명은 <그냥 해 > 프로젝트였다.
2024 올 해의 콘셉트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죄짓지 않는 선에서,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선에서 도전은 깨끗하고 멋있게.
그냥 해보는 거야 같은. 광고에서 나올법한 문장으로 한 해를 보내기로 스스로 약속했다.
원래도 나는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편인데 코로나 이후 급격하게 찾아온 변화는, 스스로를 어떠한 한계선에 가두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주저하는 나도 발견하게 된 터라 다시 무엇인가 돌려놓아야만 했던 것 같다.
사람도 그냥 만나보기 시작했다(하지만 추천은 하지 않는다. 사람은 골라 만나야 할 것 같다는 걸 배웠으니 됐다.)해보고 싶은 건 모두 했다. 지갑사정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다 했다. 등산은 말할 것도 없고, 수영, 춤, 하키, 템플스테이, 롤러스케이트까지..
그러다 어느 날 메일함에 온 메일한통이 한순간에 날 집중하게 했다.
"피엘라벤 클래식티켓! 얼리액세스에 도전하세요!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지갑사정은 뭐 이 시간 이후의 나에게 맡기 기로하고 이번만큼은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보겠다고 다짐했다. 환상이 진짜 환상으로 굳어지면 그것보다 슬픈 건 없을 것 같았으니까. 이런 마음이 들었을 때가 진짜 때가 온건지도 모르니까. 그래 이번만큼은 나도 도전해 보는 거야!
인터넷에서도 양도티켓을 사고팔 정도로 워낙에 치열하기로 유명한 클래식 티켓팅에 나도 동참하게 되었다.
나의 환상이었던 그곳. 피엘라벤 클래식의 원조격인 스웨덴클래식 티켓구매 링크에 접속했다.
시간이 멈춘 듯 정말 강력한 속도로 티켓팅에 참여했다.
고도의 집중력과 빠른 입력만이 티켓을 거머쥘 수 있다. 타타타타탁....!
(모든 서류작성은 영어로 이루어지는데 특히 나는 한국주소적을 때가 짜증이 날 정도로 시간이 걸렸다.. )
결과는 2차 서류 작성완료 후 실패. 이때는 대안이 없다. 2차적으로 원하는 클래식 장소를 골라야 했다.
그래! 한국도 있지! 다시 한번 도전! .... 뜨거운 인기를 실감할 정도로 빚의 속도로 또 실패.
"티켓 판매가 완료 되었습니다. 다음에 만나요!"
뭘 다음에 만나. 어디서 만나.. 그러다 나머지 클래식참여나라를 쭉 훑어보았다.
덴마크, 독일, 미국, 그리고 이번에 새로 추가된 나라 칠레.
"유럽보다는 나는 미국이 나아. 칠레는 남미라 혼자 가기엔 좀 부담스럽고.. 미국?"
왜 인지 미국이 친근하게 느껴질 찰나에 주저 없이 미국티켓구매링크를 눌렀고.
서류입력. 순순히 다음.. 다음.. 다음..
그리고 카드번호를 입력하세요? 그러면...
"축하합니다. 당신은 피엘라벤클래식 USA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봐요!"
이 모든 일이 단 6분 만의 일이었다면 클래식 티켓팅의 치열함을 당신은 느낄 수 있겠는가?
티켓팅시작시간이 한국시간으로 6시였고, 저 축하메시지를 본 시간은 정확히 6시 6분이었으니 말이다. 얼떨떨했다. 티켓팅에 성공해서 우선 축하는 하는데... 그렇게 원하던 꿈의 스웨덴은 아니고 , 접근성이 좋은 한국도 아니었다. 미국? 그래 어쨌든 축하해. 근데 미국클래식은 들어본 바도, 검색도 해본 적도 없는 나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어렴풋이 미국은 콜로라도의 로키산맥에서 트래킹이 진행된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얼떨떨하지만 설레는 기분. 뒤도 안 보고 그냥 내지른 기분. 오랫동안 꿈꿔온 그림은 아니지만 어쩌면 더 신선한 느낌이 드는. 2024 <그냥 해.> 프로젝트에 제일 잘 맞아떨어지는 걸작이 탄생한 것이다.
간다. 올 해는.
그렇게 궁금하고 경험하고 싶었던 내 작지만 원대한 꿈!
피엘라벤 클래식 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