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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내음 Aug 15. 2017

36.안나푸르나가 알려 준 것들

1. 그게 꿈이라면 뭘 망설여?

프로젝트 때문에 한 2,3년 있어보자고 싱가포르에 간 것이 7년이란 시간을 보냈고 마흔이 넘었다. 물론 그때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해외 근무를 마다하지 않고 갔지만, 마흔이 넘으니 돌아가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봉도 나쁘지 않고, 혼자 생활이니 어디 얽매일 일도 없고, 주말이면 운동이나 쇼핑을 가고, 어찌 보면 사람답게 살아 보고 싶은 생활은 다 하고 있었지만 사람으로 산다는 건 계속 같이 갈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서 일 가르쳐 놔도 외국인들과 선후배 관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일터를 떠나면 서로 남남이기 일쑤이고, 심지어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 버린다. 발전과 변화 없이 가족도 친구도 없는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일만 하다 인생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살아오며 경험했던 모든 것과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충동질하는 열정이 뭔가 새로운 세상을 원했다. 서울로 돌아가 다시 맨땅에서 시작해야 하는 나로서는 마음을 단단히 먹을 동기부여가 필요했고, 누군가 ‘안나푸르나 한 번 가 보세요’ 한마디 던진 말이 잊어버리고 있던 어릴 적 꿈을 떠 오르게 했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산에 열심히 다녔던 이유가 언젠간 히말라야에 갈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정말 이렇게 가게 될 줄이야.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해 온 곳, 하지만 생각하면 갈 수 있는 곳이 아닌가? 하나의 정점을 찍고 새로운 산으로 향해야 하는 시점에서 안나푸르나는 필연적인 기회였다. 생각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지만,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미 행동에 옮기는 나다. 싱가포르 정리하는 일정과 한국에 들어가야 하는 일정에 맞춰 네팔행 비행기부터 예약했다. 


2. 삶은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히말라야 같은 것이다.

급하게 결정하고 오느라 비행기표와 옷가지 외에 준비된 것이 없었다. 그 높은 산에 가면서 루트조차 미리 정하지도 않고 갔으니까. 카트만두 호텔에서 만난 여행사 매니저에게 트래킹 루트에 대해 계획을 잡아 달라 요청을 했고, 사전 정보가 없던 터라 한라산 올라가듯이 쭈욱 올라갔다 내려오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더랬다. 산행이 시작되고 하루 종일 올라가더니, 다음날도 오르막, 그렇게 도착했던 고레파니가 해발 2800m. 그다음 날은 1000m가량을 종일 내려간다. 기껏 올라간 산을 내려올 때 기분은 정말 허탈했다. 그리고 다시 오르막을 만나고, 내리막을 가는 과정에서 문득 내가 생각하던 '산'에 대한 정의가 깨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봐야 백두산 2,744m, 한라산 1,947m 정도인지라, 하루면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게 가능한 코스다. 그래서 늘 인생을 산에 비유하면서 인생에 정점을 한 번 찍으면 40대 후반엔 내리막이라는 관념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 다니던 회사에 끈을 놓지 못하고 자존심이며 꿈이며 버려두고 악착같이 붙어 있을 수밖에. 히말라야를 걸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산의 정의는 올라갔다 내려오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 산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삶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히말라야 같은 것이고, 마흔을 넘긴 나는 이제 다음 산으로 넘어가기 위해 내리막을 가고 있는 길이었다.  



3. 정상에 있고 싶은 사람은 다음 산으로 넘어갈 수 없다.

안나푸르나에 오는 여행객 중, 가장 짧은 트래킹 코스를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하는 2박 3일 코스가 있다. 고레파니 위에 있는 푼힐(3200m)까지 다녀오는 코스로 2박 3일이면 가능하다. 푼힐은 히말라야 전경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의 경치를 보노라면 더 이상 아무 데도 가고 싶지가 않다. 구름이 발아래 떠 다니고, 이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데 굳이 힘들게 더 갈 이유가 무엇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정상에 있으면 알 수 없다. 다음 산이 얼마나 더 아름다울지, 얼나나 더 높을지. 물론 그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보기 전엔 알 수 없다. 한 고개를 넘고, 다음 고개로 넘어가려면 고개와 고개 사이의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야만 한다. 그래도 다리라도 있으면 다행이고, 그마저도 없으면 계곡을 따라 빙 둘러 가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렇게 바닥까지 가야 다음 산을 시작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산을 타는 동안 정상에 머무는 시간은 정말 짧지 아니한가. 그러니 가는 길을 즐기지 못하고 정상에서의 즐거움만 생각한다면, 즐거울 수 있는 시간은 정말 짧은 순간일 수밖에 없다. 


4. 산을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더 조심해야 한다. 다음 산을 올라야 하니까.

왕년에 산 좀 다녔노라 하면서 내리막에서 뛰어가다 넘어졌다. 하루 종일 내리막 길을 가다 보면 속도가 붙다 보니 다리가 풀리면 넘어지기가 쉽다. 먼 길 가야 하고, 가면 갈수록 산골짜기라 다치면 정말 답이 없다. 산을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을 커버할 수 있는 약이나 비상식량 등을 가지고 있지만, 알다시피 그 짐의 무게가 만만치 않아 여유 있게 가져가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행여 누군가 옆 사람을 도와주고 나면 자칫 자신이 필요할 때 손을 쓸 수가 없게 되는 수도 있어서 민폐형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를 잘 책임져야 한다. 넘어지면서 오른쪽 발목이 살짝 겹질렸다.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앞에 가던 포터 라잔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그 친구도 쉽사리 내 짐을 더 들어준다고 할 수도 없다. 이미 20kg가량을 메고 있으니까. 잠시 쉬었다가 정신을 다시 가다듦어 본다. 정신줄 놓고 룰루랄라 내려가다 다치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산도 없을 뿐만 아니라, 되돌아 가는 것도 문제니까. 산을 잘 내려가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려가는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산을 올라야 함에 있다. 가끔 일을 하다 보면 마지막 마무리를 잘 못하는 사람들을 본다. 계속 걷다 보면 산이 지루한 것처럼 회사생활도 매일 반복되면 지치고 재미없게 마련이지. 회사를 다니지 말아야 할 백만 가지 이유들로 푸념을 하면서 회사를 그만둘 땐 다시는 아무도 안 볼 것처럼 관계를 망가트리고 가는 경우도 있다. 결국 다음 가야 하는 회사에서 레퍼런스 체크가 오면 그렇게 떠난 후폭풍이 자신에게로 다시 돌아가게 되거든. 최소한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게 되면 그게 어디로 옮겨가도 세상이 정말 좁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더군나다 IT 마케팅 분야에 20여 년간 일하던 나는 어느 나라에 가서 사람을 만나도 한두 다리 건너면 다들 아는 사람들과 연결이 되더군. 그러니 내려가는 길에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5. 두 번째 고개, 세 번째 오르는 고개는 첫 번째보다 훨씬 쉽다. 

다시 오르막을 만났다. 이 트래킹이 처음 시작된 나야풀이 생각난다. 정말 갈 수는 있는 걸까? 멀리만 보이던 안나푸르나를 보면서 한 숨 짓던 첫걸음 말이다. 안나푸르나에 가겠노라 결심했던 그 순간부터 등산 장비와 옷과 신발을 더운 나라 싱가포르에서 구하지를 못해 한국에서 공수까지 해 오며 준비했던 시간, 비행기를 타고 카트만두와 포카라를 거쳐 나야풀 앞에 서기까지의 다사다난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두 번째 산등성이에 오를 때는 그저 가던 길을 가기만 하면 됐다. 모두 준비가 되어 있고, 심지어 첫 번째 고개를 넘으며 경험한 것들이 한층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 물론 여러 고개를 넘어갈수록 또 다른 복병이 있다. 예를 들자면 고산병이라거나 씻을 수 없음에 대한 답답함. 그래도 첫 번째 고개 앞에 서기까지 필요한 노력에 견줄 바는 아니다. 사실 회사를 그만두고 이렇게 여행을 떠난 게 첫 번째가 아니어서 더 쉬웠는지 모른다. 30대 초반, 남들이 꿈의 회사라 일컸던 잘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꿈꾸던 세계일주를 1년간 하고 돌아왔다. 정말 대책 없이 떠났기도 했지만 한국에 돌아가서 한동안 일자리를 찾지 못해 어려웠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 여행 덕분에 싱가포르에서 일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40대 초반, 어쩌면 그때보다 더 어려운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짐작이 된다. 한국에서의 40대가 얼마나 혹독한 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알 테니까. 더구나 한창 일할 나이 30대 외국에서 7년을 보냈으니 인맥과 영업이 중요할 나이에 부딪혀야 할 현실은 결코 녹녹지 않으리라. 그늘도 없고, 고도도 높고, 가이드도 없이 알지 못하는 길을 혼자 터벅터벅 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젊음의 상처들과 바꿔 왔던 경험들이 그 시간을 견뎌내게 해 줄거라 믿는다.


6. 남들 따라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때', '속도', '방향'을 알고 가는 게 중요하지. 

하루 평균 8시간가량 걷는 일이 반복이 되니 점점 일상이 되어간다. 6시 기상, 7시 조식, 8시 출발. 새로운 도전을 한다고 해도 결국 적응이 되면 다시 반복되는 일상이 되고 만다. 뭔가 새로움을 주기 위해 '나마스테' 인사를 하루 동안 몇 번이나 하는지 카운트해 보기로 했다. 다시 말하면, 하루 동안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몇 번이나 인사를 하는지 세어보는 것인데, 그날 하루 동안 50회가 넘게 인사를 했다. 그중 대부분은 나와 반대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은 걸어가는 속도가 비슷해서 만나기가 어렵거든. 종일 나와 다른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니, 내가 가야 할 길을 이미 다녀온 사람들이라 한편 부럽기도 했고, 한편 나만 이 길을 올라가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잘 못 가고 있는 건 아니다. 보이지 않지만 돌아가는 사람 수만큼이나 내 앞 뒤로 같은 방향을 보며 걷는 사람들이 있는 거다. 살면서 왜 나만 그런 길을 가는 걸까?라는 질문들을 수도 없이 하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을 뿐이다. 로지에서 사람들과 인사를 하다 보니 노르웨이에서 자원봉사 왔다가 트래킹에 온 스무 살도 안 된 여학생부터, 학교 선생님으로 정년퇴직을 하시고 혼자 오신 70대의 일본인 할머님, 결혼기념일 기념으로 왔다는 말레이시아 부부, 심지어 오른쪽 팔에 붕대를 메고 온 유럽 청년도 있었다. 모두가 제 각각의 이유와 자기만의 때를 만나 이곳에 온 것이다. 그러니 오는 사람이나 가는 사람이나, 나이 먹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 사람이나 누구도 잘 못 가는 길은 아니다. 다만 산에서 바보 같은 경우는, 내려가는 길이 쉽다고 뛰어가다 다쳐서 다음 산을 올라갈 수 없는 경우, 빨리 가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산 좀 탄다고 오만하게 무리하며 빨리 올라가다가 고산병에 걸려 중도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의 경우다. 또 있다. 제일 나쁜 경우는 가 보지도 않고 온갖 핑계만 백만 가지 대는 사람들이다. 모두 각자의 때에 자신의 스피드에 맞춰 시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아닐까? 비, 바람이 불 때는 잠시 피했다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7. 정상엔 아무것도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촘롱 이후로는 줄곧 오르막, 고도가 높아지고 사람이 지내기엔 점점 열악해지는 환경, 체력과 지혜와 인내가 요구되는 길이었다. 히말라야 로지에선 당연히 따듯한 물이 나오지 않았고, 식당 외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들이 가져온 렌턴이 없으면 캄캄한 주변을 손으로 짚어가며 움직여야 할 상황이다. 몸에 체온 유지를 위해 씻지도 못하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무조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녀야 했다. 하지만 가야 할 목표가 바로 눈 앞에 있다는 흥분 감이 모든 걸 잊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음날의 7시간은 정말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고도 3000m가 가까운 히말라야 베이스캠프에서 ABC 4200m로 올라가는 길. M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서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마지막 세 시간은 중간에 주저앉고 싶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체력도 바닥나 있었고, 호흡은 가빠지고, 산소가 부족하니 머리는 팽그르르 어지럽고, 다리는 천근만근에, 너무 많이 걸어서 다리도 살짝 풀리고, 발바닥과 발가락도 마비가 되는 느낌이었다. 감정 컨트롤도 잘 안되고 두 세발자국 가서 한 번 쉬기를 반복에 반복, 한편으론 MBC에서 그냥 1박 할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여러 차례 들었다. 추운데 등은 땀에 젖어 있고, 배낭이고 카메라고 다 버리고 싶은 심정, 누구에게 투정을 할 수도, 끌고 가 달라 부탁을 할 수도 없는 상황. 멀리 ABC가 보이는데도 발걸음은 계속 그 자리인 것 같아 정말 죽을 맛이더군. 하지만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니 해가 지기 전까지 무조건 ABC에 도착해야만 했다. 사실 눈이 하얗게 덮인 ABC를 상상하며 왔으나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베이스캠프에는 눈이 없었다. 눈이 있었다면 풍경은 더 멋졌겠지만 오는 길엔 더 어려움이 있었을 거다. 베이스캠프 뒤로 안나푸르나 사우스를 비롯한 7~8000m 높이의 산 봉우리 예닐곱 개와 혼자 힘으로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천 길 낭떠러지가 있고, 바람은 세차게 불고 있었다. 제 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아본다. 흠, 이젠 뭘 하지? 갑자기 뭘 해야 할지 멍해졌다. 뭘 기대하고 온 거지? 뭔가 목표점에 왔다는 희열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허무함? 등반가들처럼 몸에 자일을 감고 아이젠을 끼고 저 설산을 기어 올라가면 이런 허무함이 없을까? 갑자기 해야 할 뭔가가 없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저 이 추위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을 뿐, 어쩌면 이 열악하고 힘든 환경에서 빨리 돌아가고 싶은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도 오라고 한 적 없고, 무엇을 기대하고 간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언제나 그랬다. 꿈이 하나 현실이 되면 또 다른 꿈을 꿔야 하는 강박관념 같은 것. 때로는 꿈은 그냥 꿈으로 남아 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랬다. ‘꿈은 변하는 게 맞는 겁니다. 10년 전에 꿈이나 지금의 꿈이나 계속 같다면, 그 사람은 꿈을 한 번도 이뤄 본 적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산다는 건 하나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계속 꿈꾸고 이루며 사는 것이지요’.


8. 언제나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이 존재한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내려오던 날 아침, 독수리 조차 날기 어려운 고도의 하늘에서 비행물체가 나타났다. 하늘을 휘휘 도는 것 같더니 마침 내가 내려가는 길 쪽으로 착지를 한다. 내가 있던 자리의 고도가 4200m, 페러글라이딩을 하려면 8000m 상공쯤에서 낙하한 게 아닐까 가늠해 본다. 저 무거운 페러글라이딩 장비를 들고 등반해서 비행한 게 아니라면 말이지.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걸 시도하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곳에 가면 내 시도는 연습게임 같은 생각이 들곤 한다. 상상 이상의 일이 일어나거든. 한편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직도 세상엔 가야 할 길이 더 많다는 걸 보여 주는 것이고, 자만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보이기 때문이다. 


9. 오르막이라도 가 본 길은 쉬운 법이다. 

운이 좋게도 ABC에서 멋진 해돋이를 맞이한 뿌듯함을 가지고 돌아오는 길숙제를 마치고 가는 기분이랄까같은 무게의 배낭을 메고 같은 길로 돌아가는 중인데발걸음이 훨씬 가볍다돌아오는 길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긴 마찬가지인데 한 번 가 본 길은 쉽다어디가 힘든 구간이고 어디에서 쉴 수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스스로 컨디션을 조절할 수가 있다. ABC에서 내려오는 첫째 날은 올라가는 길에 하루 반나절 걸리던 거리를 9시간 걸려 하루 만에 내려왔다. ABC까지 가는 데 6일, 하산하는 데 3일, 총 9일간의 사투가 끝났다.


10.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포카라로 돌아왔다. 안나푸르나에 가기 전이나 다녀온 이후로나 이곳은 변한 것이 없다. 나 역시 다녀왔다는 사실만 남았을 뿐 외관상 달라진 게 없다. 다만 저 산을 바라보는 내 눈과 마음은 달라졌다. 멀리서 관망하거나 꿈꾸던 대상에서 그의 품 속에 호흡하며 느꼈던 기쁨과 괴로움 속에 성장한 마음을 품고 미련 없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 아니, 내가 이뤄왔던 삶의 정상에서 내려와 다음 정상을 향한 첫걸음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마치 '노인과 바다'의 어부처럼.


"다시 모든 것을 잃었다. 자신이 어부로 태어났다는 사실만 빼고 말이다. 그러나 노인은 청새치에 대한 미련을 갖지 않았다. 상어에 대해 분노도 품지 않았고, 자신의 불운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일상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깊은 잠에 빠진 노인은 아프리카 사자의 꿈을 꾼다. 죽음 직전까지 갔지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니 거대한 청새치를 잡아 금의환향한 어부처럼." -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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