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책방의 기자 모집에 선뜻한 용기
1월임에도 따사로운 햇볕이 창으로 들어오던 어느 조용한 주말. 무료하게 누워 인스타그램 피드만 내리던 나는 가끔 방문하던 동네 서점의 게시물을 보게 된다.
<XX 책방 2025상반기 신입기자 모집>
○○○○신문은 XX책방에서 발행하는 서평 중심의 4면짜리 종이신문입니다.···
매호 약 500부를 발행하며 전국 20여 곳의 동네서점에 무료배포됩니다.
심장이 뛰었다. 종이로 발행되는 글을 쓸 수 있고, 주제가 국한되어 있으며, 내 블로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읽는다는 점이 나를 울렁일만큼 설레게 했다. 꼭 내가 되었으면, 저 자리가 꼭 내 것이었으면 하는 욕심과 나는 꽤 적합한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그런데 딱 하나, 용기만은 솟구치지 않았다. 아무리 작은 책방의 짧은 신문이라지만 그것을 100호까지 견인해 온 이름 모를 사람들의 애정과 노력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과녘을 잘못 조준한 글이 그들의 애정과 노력에 먹칠하면 어쩌지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나보다 훨씬 용감한 누군가 그 자리를 꿰차버리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엄습했다.
가만히 천장 보고 누워서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일단 급한 대로 대강 나갈 채비를 하고 책방으로 차를 몰았다. 얼마나 마음이 급했는지 차를 타고 갔는데도 숨이 찼다. 턱 밑을 덜컥이게 하는 숨을 겨우 가다듬고 마치 오직 책만이 나의 목적이었던 양 들어갔다. 한참을 서성이다 책 두 권을 고르고, 계산대로 갔다.
데님 앞치마를 입고 계시던 사장님이자 책방지기님은 언제나 그랬듯 무심한 표정으로 계산을 하고 계셨고, 나는 발행되어 계산대 앞 잡지 서가에 비치된 종이 신문을 만지작 거리며 물었다.
"이거... 그... 신문인가요?"
아뿔싸, 큰일 났다. 차를 몰아오는 20분 내내 나는 머릿속으로 신문에 대해 내가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이 신문의 발행 과정에 얼마나 참여하고 싶은지를 '명확하고 간결하게' 서술할 말을 수 십 가지 준비했다. 기회만 된다면 이 신문이 어떤 부분에서 나의 흥미를 끌었고, 내가 얼마나 기사를 잘 쓸 수 있는지 역설하기 위해 준비했단 말이다. 그런데 고작 나온 말은 불쑥 기자가 되겠다는 사람의 기개나 기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역량 따윈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한 마디였다.
그런 내 마음을 알 길이 없는 책방지기님은 계산할 때보다는 좀 더 화색을 띠고 말했다.
"아, 그거 저희 책방에서 발행하는 신문이에요. 무료로 배포하고 있으니 가져가서 읽어보세요!"
무력하게 뉘인 신문을 마지못해 집어 들다가 '100호 특집'이라는 활자를 보니 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독자가 되고 싶어서 온 게 아니다. 나는 제작의 일원이 되고 싶다. 그 뜻을 그에게 전하러 20분을 달려온 것이다. 지금 그냥 나가버리면, 이 기회는 나보다 용감하고 명확하게 의사표현을 할 줄 아는 누군가에게 돌아갈지도 모른다. 출처 모를 자신감이 앞뒤 맥락 없이 솟구쳤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것 같아요. 신입기자를 모집하신다는 글...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대단하신 것 같아요."
상호 간의 웃음으로 대화는 마무리되고 나는 그렇게 책과 신문을 도망치듯 서점을 빠져나왔다. 나오니 약한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비를 핑계로 차까지 내리 달렸다. 차에 타서 고민에 빠졌다. 하고 싶다는 말조차 선뜻 꺼내지 못하는 내가, 수많은 사람들의 애정으로 벌써 100호를 맞이한 이 신문을 함께 만들 수 있을까? 그 애정에 보답할 수 있을까? 사실 어쩌면 나는 자신이 없는 게 아닐까? 매일의 출퇴근과 이따금의 야근, 데이트와 음주가무, 캠핑을 비롯한 갖가지 취미. 빽빽한 일상에 책이라는 매개만으로 여기에 시간을 낼 수 없는 사람은 아닐까? 고민은 끝없이 이어졌고, 여느 날보다 피곤했던 그날 밤은 한숨과 함께 늦게까지 이어졌다.
며칠 뒤 퀭한 눈을 겨우 뜨고 출근한 나는 카카오톡을 켜서 책방 공식 계정에 메시지를 보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얼마 전 책 두 권을 사가면서 책방 신문에 대해 슬쩍 여쭤보고 간 사람입니다. 기억하실지 몰라 좀 길게 설명을 드리게 되네요. 혹시 작가 모집이 완료되었을까요? 자신이 없어 주저한 주제에 마음에 계속 열망이 남아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지금 읽어보면 정말 단도직입적인 메시지다. 소개도 없이 불쑥 보내진 메시지는 그 당시 가장 진솔한 내 마음을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혹시 벌써 모집이 완료되었을까, 초조해하던 와중에 기다리던 답장이 왔다.
"안녕하세요. 네 기억합니다. 기자 활동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 시즌 신규 기자 모집이 종료되긴 했는데 신규 신청이 없어서 수시로도 모집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아래 모집 안내글을 보시고 내용을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기자들과 상의 후 답변 드리겠습니다."
점심과 퇴근 사이, 모든 직장인들이 지루함에 몸부림치고 있을 시간. 나는 펄쩍 뛰며 쾌재를 불렀다. 물론 아직 선정된 것도 아니지만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냉큼 모집 안내글 링크에 들어가 찬찬히 읽었다. 지원 신청서에 작성해야 하는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1. 필명
2. 자기소개와 신청동기
3. 신문 리뷰
4. 가장 좋아하는 책과 그 이유
이 중 한 가지 항목을 빼고 모든 항목은 그냥 말로 설명하라고 해도 술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겐 너무 명확하고 뚜렷한 주제였다. 누군가에겐 어려운 주제일 수 있으나, 나는 면접처럼 열심히 생각하고 준비했던 항목이라 머릿속에 개요까지 잘 짜여 있었다. 복병은 의외의 항목이었다.
[다음 화 예고]
어디 멋진 필명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