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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땅을 밟다

출장 통보부터 모로코 도착까지

by 영스타

평화로운 2월 말, 조용한 사무실 여느 때와 같이 평화로운 표정으로 단어 두 개를 놓고 고심하고 있던 때. 메신저가 깜빡였다. 또 단체 채팅방이겠거니 열어 본 메신저에는 너무나도 예상 밖의 내용이 담겨 있어, 어안이 벙벙했다.


'영, 품질부서 요청으로 모로코행 출장이 결정되었습니다. 3월 4일 출발 예정이고 출장 기간은 두 달 정도입니다. 많이 배우는 기회가 될 겁니다. 가족 분들께 알려주세요.'


두 달짜리 출장을 이렇게 결정한다고? 당황스러움을 내려놓고 달력을 흘끗 봤다. 3월 4일이면 그날로부터 딱 열흘 뒤였다. 메신저 발신자인 상사를 찾아가 '이게 무슨 상황이냐'라고 물으려던 차, 상사가 내 자리로 와서 면담을 요청했다.


탕비실에 커피를 쥐고 상사와 마주 앉았다. 커피가 차가워서 그런지 상사와의 대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몸이 서늘했다. 대규모 회의가 아니고서야 딱히 마주할 일 없는 건너편의 저 외국인 상사가 너무 멀어 보였다. 성격이 급하고 매사가 바쁜 그는 자기 할 말만 급하게 하고 사라졌다.


"영, 지금 한국 프로젝트는 급한 사안도 없고, 모로코가 곧 완공되니 가서 품질 이슈를 점검해야 해. 상무님을 따라 모로코에 출장을 좀 다녀왔으면 좋겠어. 가서 많이 배우고 오면 너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야. 가족들한테는 빨리 알리고, 모로코 HR 팀장이 곧 비행기 티켓을 구매해 메신저로 전달할 거고, 주의사항을 알려줄 테니 잘 숙지해서 다녀오면 돼. 건강하게 잘 다녀와!"


'지 할 말만 하고 가는 게 무슨 면담이야...'


볼멘소리를 꾹 누르고 자리로 돌아와서 구글을 켜서 모로코를 검색했다.

'북아프리카 지역에 위치한 나라로, 지중해와 대서양을 접하고 있으며 베르베르, 아랍, 유럽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아프리카에 간다. 말로만 듣던 아프리카 대륙을 내가 밟는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다 보니 불현듯 어떤 노래가 떠올랐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만두를 좋아해. 만두를 많이 먹어 배탈이 났어...'


갑자기 유년의 기억 속에서 건져 올려진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아프리카가 얼마나 낯선 대륙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한국으로부터 10,000km 정도 떨어져 있는 대륙에서 만두를 좋아한다니,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소리인가. 말도 안 되는 가사의 노래가 대한민국의 어린이들 사이에서 구전되어도 누구 하나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 만큼 아프리카는 낯설다. 그다음엔 우리가 그 낯선 대륙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에 대해 생각한다. 아프리카는 나라가 아니라 54개국으로 이루어진 대륙이다. 그 말인즉슨, 그들을 '아프리카 사람'으로 묶고 한 가지 특성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배경지식도 없고 낯선 나라로 간다는 사실에 설레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안고 바쁘게 출국 준비를 했다. 장기 출장을 앞두고 생일과 일상을 적당히 수습하며 시간은 부지런히 갔고,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인천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비행기를 놓친 트라우마와 놓칠 뻔한 트라우마로 공항에 4시간가량 일찍 도착했더니, 생각보다 사람이 별로 없었다. 라운지에 앉아 쏠쏠한 용돈벌이인 번역 알바를 하면서 맥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안주로는 짜장범벅과 신라면 중 고민하다, 신라면을 집어 들었다. 작은 컵 신라면을 먹을 때는 몰랐다. 신라면이 이렇게 그리워질지. 현지 라면은 가져온 볶음김치를 다 넣어도 못 먹을 맛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장시간 비행을 위한다는 핑계로 맥주를 마시다 보니 보딩타임은 속절없이 다가왔다. 덜큰하게 취한 채로 비행기에 올랐고 자본주의가 발명한 망작, 이코노미석에 몸을 대충 구겨 넣었다. 에미레이트 항공의 이코노미 클래스는 어매니티로 슬리퍼를 제공하지 않았다. 슬리퍼 구색만 흉내 낸 헝겊이라고 비난하던 슬리퍼라도 없으니 불편했다. 아쉬운 대로 양말을 갈아 신고 잠을 청했다. 잠결을 헤매던 중 'Chicken Or Beef?'를 두 번쯤 듣고, 와인 몇 잔을 마시는 동안, 비행기는 중간 환승지를 위해 쌩쌩 날았다.


열두 시간가량을 날아 두바이에 도착했다. 긴 여정의 5부 능선은 무사히 넘어온 거다. 직장을 다닌 후로는 돈보다는 시간이 귀해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직항만 탔다. 그런데 모로코의 수도 카사블랑카까지는 직항이 없다. 아니, 열두 시간을 날아온 곳에서 또 비행기를 타고 아홉 시간을 더 날아가야 도착한다. 환승 대기 시간 내내 '모로코는 얼마나 멀고 먼 나라인가'라는 질문을 멈출 수 없었다.


한 시간 반 남짓한 환승 시간 동안 샤워공간을 빌려 대충 몸을 씻고, 다시 에미레이트 항공사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텅 빈 뒷자리에서 '눕코노미'를 한껏 즐기고 한국에서 하던 번역을 마무리하니 어느새 비행기는 카사블랑카에 착륙했다. 밤을 날아 새벽의 땅을 밟으며 꼬박 24시간을 건너온 나를, 이 낯선 땅은 뜨거운 태양과 한낮의 품으로 반겨주었다.


말도, 사람도, 땅도, 식물도 모든 게 낯선 이 나라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사람들을 마주하게 될지 까마득했고 까마득한 만큼 기대도 됐다.

도착.jpg 공항에서 시내로 나가는 길목, 낯선 자와 돌아온 자를 반기는 카사블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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