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어째서..
우리의 만남에는 나만의 계기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가정의 변화, 부모님의 부재와 독립. 나에게 생기지 않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부모님의 공백이 생겨버렸다.
나는 서른이 넘은 나날들 속에서 소리를 지르는 방법도 누군가에게 속 마음을 말하는 방법도 모르고 살아왔다. 그런 내가 엄마와 잦은 다툼과 목놓아 소리를 쳐보고, 울면서 화를 내며 생전 겪어보지 못했던 엄마 혹은 나의 사춘기를 겪으며 엄마와 마음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이면 지나갈 거라 생각했던 해프닝 같았던 사건들이 겹치면서 평생 단짝이라고 생각했던 엄마와 멀어지게 했다. 엄마의 단짝 아빠는 엄마가 없는 나에겐 그다지도 관심이 없는 분이었다. 위기의 중년들은 멀리 서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걸 알아버렸다.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는 매일 뼈가 부러지는 고통도 아니었고, 뼈를 제거하는 여러 번의 대수술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유방암에 걸려 수술대에 올랐을 때도 아닌 그 당시였었다. 뭔가 늘 육체적으로 아프기만 했던지라 정신적으로 아픈 건 견디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변해가는 상황들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면증과 불안, 우울증까지 겹치면서 하루에 한 시간도 못 자는 지경에 이르자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부모님의 울타리에서 도망치듯 동생이 있는 곳으로 에코백 하나 들고 이사 아닌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가족, 부모님과 멀어지는 날이 오리라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런 날이 덜컥 온 것이다.
그것처럼 내 인생에 없을 것 같았던 사람이
내가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찾아왔다.
부모님과 온전히 멀어진 후가 되어서야 진정한 독립이 성립되었다. 이사 온 후에도 쉽사리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한 채 불안정한 시간이 제법 길게 흘러갔다. 부모님과 함께 지낼 때 제대로 잠들지 못했던 시간들을 보상받기라도 하듯이 일주일 꼬박 낮, 밤을 가리지 않고 잠에 취해 지냈다. 숱하게 자고 깨어나니 조금은 맑아진 정신으로 앞으로에 대해 또다시 생각에 빠졌다.
생존, 자립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 없이 혼자 살 수 있도록 자립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자 일순 진짜 혼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성인이 되면 누구나 해봄직한 고민은 남에 일이라 생각했는데 나는 가족 모두와 멀어지고 나서야 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지금껏 늘 누군가의 케어 속에서 성장한 나로서는 혼자 살아간다는 건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라 그 사실을 직면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혼자가 되면 어떤 걸 해야 될까?라는 수많은 고민을 하는 와중에 동생은 천천히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고 했다. 그 무렵 가족만 아는 나의 오랜 취미가 있었다. 그건 다른 것도 아닌 인터넷방송이라는 뉴스에서 곧잘 자극적인 소재로 이야기되는 플랫폼이었다. 사실 그전에는 인터넷 방송을 통해 돈을 벌어 볼까? 할 만큼 좋아하던 일 중 하나였다. 모르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집안에서만 활동하는 나에게 즐거운 생동감을 전하는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함께한 반려견이 세상을 떠난 후 우울감에 빠져 한동안 하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불현듯 정체되어 있는 현재 나에게 생동감을 줄 수 있는 '무언가'에서 당장에 내가 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일, 그건 누군가와 대화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무언가'를 떠올릴 때 인터넷방송을 떠올린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존재했다. 병원은 얄궂게도 방문할 때마다 나에게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겨주는 곳이었는데 최근에 병원을 방문할 때면 호르몬수치 이상으로 갑상선 수술을 준비해야 된다는 말을 듣고 지속적으로 수술에 대한 준비 검사를 하고 있던 차였다. 흔히들 알고 있는 갑상선 수술 후유증으로 손꼽히는 후유증은 목소리 변화였다. 인터넷방송을 직업으로 삼을까, 하던 나에게 꽤 큰 고민을 안겨준 부분이자 다시 무언갈 할 수 있도록 생각하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내 목소리를 좋아해 주던 누군가에게, 다시 한번 목소리가 달라지기 전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잃어버린 일상의 활기를 되찾는 내가 할 수 있는 방송하기를 다시 시작했다.
다만, 매일 뉴스에 나오는 자극적인 인터넷방송과는 거리가 먼 라디오방송이었기에 뉴스처럼 그런 위험한 형태의 일도 없었고 하루의 일과를 나누는 소소한 한, 두 명의 사람이 오고 가는 작은 책방 같은 느낌의 공간이었다. 물론 그래서 돈벌이도 불가능한 오로지 나의 일상의 즐거움 밖엔 되지 않는 시간들이었지만 불안했던 당시의 나에게 타인의 일상 이야기들은 꽤나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사람이 오지 않는 나의 작은 책방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목소리 좋으세요."
근래에 많은 일들 때문에 자존감 낮아져 있던 나에게 생기를 돋아주는 말이었다. 낯설고도 위험한 익명의 인터넷 세상, 저 좋은 말에 어떤 의미가 숨어있을까? 끝없이 의심을 해보아도 부질없었다. 그 공간에서 득 보는 사람은 나였기 때문이었다. 타인에게 휘둘릴 만큼 마음에 여유도 없었고, 세상을 모른다기엔 생각보다 약았던 나로서는 익명이 보장된 공간에선 나 또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아프거나 장애인이라는 타이틀 대신 아프지 않은 '일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익명이란 공간에 숨어 일반인이 되었던 나는 그 사람을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자립하여 혼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 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