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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한국, 그리고 한국인들

프라하 이야기 마지막편

by 밍글

프라하 시리즈를 클로징하며 머나먼 유럽 프라하 땅에서 내가 만난 한국적 요소들,


그리고 재외동포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프라하의 한국인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다.








1. 한국과 체코의 하늘을 잇는 인연


체코를 대표하는 바츨라프 하벨 공항에 내리면 모든 표지판에 한국어가 병기되어있다.


유럽 한복판의 공항에 내렸을 때 한국어가 나를 반겨주는 안도감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감정이다.


왜 체코공항에는 친절한 한국어 안내말이 붙어있을까?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체코항공과 대한항공 간 투자로 맺어진 인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2013년 체코항공의 지분 44%를 인수해 2대 주주에 등극했고, 한때 인천-프라하 노선을 주 4회씩 공동운항 했었다.


4년여간 활발한 지분경영을 이어오던 대한항공은 2017년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체코 민간 항공사인 '스마트윙스'사에 지분전량을 매각했는데,


이후 찾아온 코로나가 직격탄이 되어 체코항공은 경영난을 겪으면서 2021년 끝끝내 파산 절차를 밟았다.




photo credits: Czech Airlines




명맥상으론 '체코항공'이란 이름은 스마트윙스의 지주사로 전환되긴 했으나, 'Czech Airline'의 실체는 파산신청 결과로 101년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기업의 역사로 보면 아쉬운 이야기지만 두 나라의 하늘길을 잇는 인연 덕분에 지금까지 프라하 공항에선 한글의 존재감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2. 프라하의 한인교회 사람들


처음부터 한인교회에 정착하려던 생각은 없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모태신앙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시절 내 신앙은 걸음마도 떼지 못한 수준이었다.


그런 나에게 어느날 같은 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왔던 한국인 룸메이트 친구가 '교회 같이 나가볼래?'라고 제안해주었다.


그렇게 나의 한인교회 생활은 시작되었고, 놀랍게도 그곳에서의 신앙생활을 통해 내 믿음은 회복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같이 나누는 식탁교제가 좋아서, 주일마다 듣는 익숙한 찬양과 한국어 설교 메세지가 좋아서 매주 교회를 들락날락 거렸다.


하지만 타국의 땅에서 저마다의 삶을 기도와 말씀으로 살아내는 성도님들을 보며, 그리고 그들과 교제하며 내 삶 가운데 하나님의 존재를 다시 한 번 묻게 되었다.


믿음의 눈을 들어 바라보니 하나님은 나의 믿음 없던 어린 시절, 아니 태초부터 내 삶에서도 역사하고 계셨고, 나를 그 땅으로 인도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매주 성경공부로 모이는 저녁마다 따뜻한 집밥을 내어주신 교회 사모님, 잠시 있다 떠날 걸 앎에도 공동체 일원으로 기꺼이 맞아준 청년부 식구들, 주의 평강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던 믿음의 가정들.


낯선 땅에서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나에게 교회는 하나님을 다시 만난 성소가 되었고 1년간의 유학생활 시작부터 끝까지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3. 프라하의 한국 기업들



2018년 프라하를 여행으로 다시 방문하게 되면서 그때 그 한인교회를 4년만에 다시 찾아간 적이 있다.


성도님들 중 익숙한 얼굴보다 새로운 얼굴들이 더 많이 보였었는데, 그 배경은 프라하로 이주해온 '주재원 가정'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개척 당시부터 사용했던 교회 예배당에서도 더 많은 공간을 할애해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늘어난 규모를 통해 갈수록 많은 한국 기업들이 체코에 진출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2018년, 프라하 재방문 때 다시 찾은 한인교회 근처 카페에서




체코는 지리적으로 동유럽, 서유럽, 남유럽을 잇는 유럽의 심장부에 위치해있다.


뿐만 아니라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인건비가 저렴하고, 산업화 수준도 우수해 삼성엔지니어링, 현대자동차, 두산, 넥센타이어 등을 비롯한 20여개 국내 기업들이 직간접 투자를 통해 진출해있다.


최근에는 한수원, 두산, 대우 등을 주축으로 한 '팀코리아' 협상단이 체코 신설원전 수주 확정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 기사에 따르면 부활절 연휴가 끝난 4월 말쯤 계약 체결이 마무리 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활발한 경제적 교류와 협력이 이뤄지는 나라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체코에서 살면서 '인종차별'에 대한 위협은 거의 느껴본 적이 없었다.


불과 몇년 사이 다시 찾은 프라하에서 더 강하게 느껴지는 한국의 존재감은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게 했다.








타지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한인 디아스포라들의 삶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해외에서 살게 되는 날이 올까? 라는 막연한 상상을 하게 되기도 했고,


반대로 타지에서의 삶을 통해 내 나라가 나에게 당연한 권리로 부여해준 많은 자원들(공교육, 의료혜택, 각종 사회적 인프라 등)에 감사하게 되기도 했다.


앞으로의 내 삶이 또 어떻게 펼쳐질지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해외에서의 삶을 동경할 이유도 없고, 국내에서의 삶을 필연으로 여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삶에는 저마다의 무게와 고충이, 그리고 행복과 감사의 요소들이 같이 따라오기 마련인 것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도시 프라하에서의 꿈같았던 일상들을 회상하며,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주어진 새로운 매일에도 동일한 감사를 고백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Kampa Park, 'Before I Die' Giant Chalk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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