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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양 Feb 19. 2024

백화점 C 양 체험판_34

34화_밸런타인데이의 백화점 풍경

-본문은 이해를 돕기 위한 약간의, 아-주 약간의 픽션이 들어간 faction이며 구독자 분들의 흥미를 얻기 위해 없었던 일을 꾸며내지 않습니다.  


어젯밤부터 내린 비에 서울 하늘이 온통 젖었어요.

아침 출근길에는 내리는지 안 내리는지 모를 정도의 비가 내렸는데, 그저 짐 생기는 게 싫어서 맞고 출근했어요.

덕분에 열심히 세팅한 머리는 소용없어졌지만, 여유로운 월요일 근무 시작합니다.

오늘도 저와 함께 출근해요!


34화_밸런타인데이의 백화점 풍경

밸런타인데이의 유래는 3세기(269년)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결혼은 황제의 허락 아래 할 수 있었는데, 밸런타인(Valentine)은 서로 사랑하는 젊은이들을 황제의 허락 없이 결혼을 시켜준 죄로 순교한 사제의 이름이다. 그가 순교한 뒤 이날을 축일로 정하고 해마다 애인들의 날로 기념하였다.



포틴데이를 아시나요?

매월 14일을 포틴데이로 정하고 선물을 주고받는 날입니다. 매월 있는 날인데,

그중 가장 흔하게 아는 것이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와 3월 14일 화이트데이 아닐까 싶어요.

어른들이  저런 날은 다 장사해 먹으려는 상술이다 하였지만,

사랑을 고백하고 싶지만 쩔쩔매는 누군가에게는 정말 고마운 날이 아닌가요? 사랑을 고백할 구실을 주니까요!


지난주 14일은 밸런타인데이였습니다.

흔히 여자가 남자에게 선물 주는 날인데, 어느샌가 서로 주고받는 날이 되었습니다.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때 초콜릿이나 사탕 말고도 여러 가지 선물을 주고받는데 그중 손꼽히는 것 중 하나가 향수입니다.

백화점도 밸런타인데이를 맞이해 여러 가지 리본으로 예쁘게 선물 포장된 중저가의 <있어 보이는> 제품들을 선보였습니다.


한 오 년 전까지만 해도 밸런타인데이며 화이트데이며 빼빼로데이며 그날 콘셉트에 맞춰 초콜릿이나 사탕들을 증정해 왔는데, 요즘은 선호하지 않는 분위기인지라 따로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이래도 되나?"라는 내부 목소리가 있었지만 호텔 디저트나, 디저트오마카세를 더 선호하는 요즘 트렌드를 반영한 결정이었습니다.

자칫 짜칠 수(?)(이보다 더 말맛을 살릴 말을 찾지 못했다) 있는 디저트 증정보다 핸드크림과 미니어처 추가 증정이 있으니, 응대하기 나름이라 생각했습니다.


매출을 기대하는 날은 유독 말아먹는(?) 희귀한 법칙이 있어서 설레발은 치지 않았으나, 평소보다 조금 더 재고를 준비하고, 손님이 몰려서 선물 포장에 시간을  오래 쓰게 될까 봐 선물용 쇼핑백에 리본을 정성스럽게 미리 묶어두고 갖가지 세팅을 맞춰두었습니다.


오픈을 하기도 전에 정문 앞에 손을 맞잡은 젊은 커플들을 보며 저분들은 어떤 데이트를 하려나? 하고 오지랖 섞인 상상을 하며 매장을 오픈했습니다.


웅장한 클래식이 백화점 오픈을 알리고, 젊은 커플들이 들어옵니다.

하지만 오픈 후에도 한동안 조용했고,

향수가 인기 없는 건가? 싶어 다른 매장 쪽으로 고개를 빼꼼 내어보았더니,  다른 매장도 비슷하더군요.


"도대체 저 커플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저 멀리서 눈에 익은 남자 고객님께서 조금은 구겨진 쇼핑백을 들고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매장 쪽으로 걸어왔습니다.

척하면 척! 고객의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저건 환불이에요.

사정을 듣자 하니 여자친구 선물을 샀는데 여자친구분이 안 쓴다고 하는 바람에 환불하러 왔다고 하며 난처한 얼굴을 했습니다. 연신 미안하다는 고객님께 아니라며, 당연히 사용하시지 않으실 거면 환불하시는 게 맞는 거라며 신경 쓰이지 않게 하려고 말을 고르고 골라 답했습니다.

응대가 마무리되고, 마음 한편에 그 고객님이 이 향수를 구매할 때 지었던 설레는 표정이 자꾸 겹쳐 보였습니다. 비 맞은 강아지처럼 귀를 축 늘어뜨린 듯한 그의 모습이 안쓰러웠습니다.


하지만 개시도 못 한 이 시점에 마이너스라니. 머릿속이 어지러워졌습니다.

이제야 오픈한 오전 시간인데 괜히 마음이 조급해져서 이것저것 리플릿들을 뒤적였어요. 잠시라도 핸드빌로 고객 유입을 해 볼 작정이었던 거죠.


다른 매장 상황도 비슷해 보였습니다. 밸런타인데이 전날부터 "내일 밸런타인데이잖아. 벌써 피곤해." 라며 피곤함을 내비치던 매니저님들도 저와 비슷한 표정으로 매장을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저녁 티타임 즈음,

남자 선물을 구매하실 거라는 이 고객님은 삼십 대 중반의 여성분.

이 분과 그 남자분은 어떤 관계인지, 또, 그 사람을 회상하며 어떤 설레는 얼굴을 할지 벌써부터 상상되어  저까지 설레옵니다.

역시나 밸런타인데이 선물이었고, 기념일까지 더해진 날이라 특별한 걸 해주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괜히 열정이 더 불타올라 과한 리액션이 튀어나왔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조금 오버해도 이해해 주시겠지 라는 생각으로 계속 응대를 이어갑니다.

만난 지 일 년이 조금 지났다는 고객님은, 상대방이 귀찮음이 심해 향수를 뿌리지 않는 성격이라 자신이 바꿔주고 싶다고 말씀하시며, 습관이 들지 않아 안 뿌리면 어떡하죠?라는 걱정을 동시에 하시며 발을 동동거렸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선물한 향수인데 노력하시지 않을까요? 그리고 습관이야 고객님께서 만들어드리면 되는 거죠~“

선물 포장을 하는 와중에도 처음 보는 나에게 상기된 얼굴로 이런저런 사소한 연애이야기를 늘어놓는 그녀를 보며 귀여운 소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분 간의 수다 후 그녀는 매장을 벗어났고, 그 뒷모습을 보며 다시금 생각했죠.


 '역시 사랑은 사람을 빛나게 해!'


오늘은 집에 가 냉장고에 넣어둔 아끼던 초콜릿을 오랫동안 천천히 녹여먹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밸런타인데이에 사랑을 고백하려는 누군가와 백화점도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퇴근길



여중 여고를 나온 저는 무슨무슨 데이 때마다 감흥이 없었지만, 인사치레 마냥 친한 친구들끼리 초콜릿을 나눠먹었고, 그 당시 인기 있었던 선생님의 책상 위는 초콜릿으로 가득 찬 장면을 본 날들이 있었습니다.

학원에 가면 동생들이 삐뚤한 글씨로 적은 카드와 함께 두고 간 초콜릿이 있었고, 그 초콜릿을 먹으며 연습하곤 했는데, 어른이 돼서 이런 날들이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날처럼 보이기 시작했죠.(나이를 거꾸로 먹나…..)

'그동안 학생 시절을 너무 시니컬하게 보낸 건 아닌가'라는 생각과 동시에 '유난이야.'라고 생각하는 저는 오늘도 조금은 무미건조하게 회사 단체 대화방에 얘기합니다.


"밸런타인데이 매출 실적 공유드립니다."





옆에 있는 그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에 너무 늦었다 생각된다면,
오늘은 밤이 올 거라던가, 별이 빛날 거라던가,
어떠한 핑계를 대서라도 꼭 말하세요.
부끄러워 꺼내놓지 못한 애달픈 달큰한 마음도 꺼내게 만들었던 그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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