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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양 Sep 23. 2024

김밥에 담긴 웃음 한 알

무명배우여서, 퇴사합니다. 240923

초등학생 때 소풍 가서 나눠먹은 친구네 집 김밥이 그렇게 맛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좋았던가 김밥을 정말 좋아한다.

알록달록 여러 가지 김밥이 있지만 그중에 꾸미지 않은

기본 맛을 좋아한다. 그런 김밥들도 저마다 맛이 다 다르고, 사진만 봐도 어느 정도 맛이 유추가능하다. 뭔가 빈 것 같지만 손맛이 담긴 맛을 좋아한다. (설명 능력이 한없이 부족함을 느낀다....) 이런 맛들은 대부분 24시 분식집도 아니고, 배달도 아닌, 지하철 역 근처에 아무렇게나 쌓아두고 파는, 갤러리아 급으로 아침 일찍 가야만 살 수 있는 김밥에서 느낄 수 있다.

(곧 출근하지 않으니, 그 김밥을 먹을 날이 없겠지?)


김밥과의 인연은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진다. 오픈전에 매니저님과 수다와 함께 김밥과 커피를 나눠먹으면 최고의 아침 식사다. 하지만 근무가 바뀐 후로부터 한 명만 오픈을 하니, 수다 떨며 나눠먹을 사람이 없어 조금 외로운 것 같다.


나는 특이한 병이 있다. 바로 <김밥병>.

김밥이 며칠 내내 먹고 싶은 병이다.

오늘은 지하철 역사 내에서 참치김밥 한 줄을 사서 출근했다.

멋들어진 반투명 선글라스를 낀 사장님은 사람들의 월요병을 지워주려는 듯 기분 좋은 인사를 김밥과 함께 건네고 있다.

내 앞의 사람들은 인생이 바빠 쳐다도 보지 않고 무미건조한 “네”라는 대답만 남기고 빠르게 줄을 비우지만 그래도 사장님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안녕하세요~뭐로 드릴까요?”

“안녕하세요? 참치 하나 주세요”

“네~ 감기 조심하세요”

카드리더기에 카드를 꽂으면서도 시선은 나에게 꽂혀 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도요”

“요즘은 감기가 잘 안 났는답니다”


아침부터 대표님이 감기에 걸려서 나흘째 고생 중이란 카톡을 나눠서 그런가 대표님 얼굴이 떠오른다.


“그렇대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장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기분이 좋다. 나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지었다. 내가 너무 크게 웃었나?  흠칫 놀랐다. (이토록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사람이라니 휴...)


어제 퇴근 후에도 김밥을 먹었는데, 소화가 안된 체로 잠들어 잠을 설쳤다. 게다가 아침에 하필 슬프고 감미로운 성시경 노래를 들어서 조금 센티했는데 사장님 덕분에 하루가 전환된 기분이 들었다.

사장님도 지나는 많은 손님 중 나의 웃음으로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르는 서로가 서로에게 웃음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건 대단한 거니까.

환승구에서 앞 남자의 옷 태그에 smile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괜히 입꼬리를 올려본다.


나는 응대 중에 나이스한 고객님들에게 에너지를 얻는 날이 정말 많았다.

그런 고객들 덕에 이제는 낯을 많이 가리지도 않고, 넉살이 살짝 늘었다. 원체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에 얼굴이 쉽게 붉어져서 난감한데, 이것도 많이 고쳐진 것 같다.

겨울 냄새를 풍기는 아침 달

출근길 가방 안에 누워오던 김밥은 매장에서 수다 떨 사람도 없이 혼자 먹었지만, 김밥 포일에 붙은 오늘 아침 6시에 만들었다는 스티커가 눈에 띈다. 이 한 줄은 누군가의 새벽잠, 누군가의 정성, 누군가의 웃음이 담겨 나의 소중한 하루가 된다.


그래서 오늘 나의 응대 마무리 멘트는 “감기조심하세요.”였다.


여러분도 감기 조심하세요. 목이 안 좋으면, 배도라지차를 드셔보세요. 뜨끈하니 좋답니다.


근데 사장님, 웃음은 주시고 젓가락은 안 주셨어요. 굶주린 여성처럼 야생미를 뽐내며 뜯어먹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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