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다합(Dahab)
작열하는 햇빛으로 뜨거웠던 다합에도 밤이 왔다. 낮에는 느낄 수 없었던 선선한 바람이 창문 사이로 흘러 들어오고, 그 누구도 입을 떼지 않는 고요한 차 안은 적막이 감돌았다. 다합을 오던 첫날 새벽도 지금과 같았다. 불빛 없는 어두운 길, 달빛에 어슴푸레하게 비춘 삭막한 산의 윤곽들, 차의 라디오에서 나오는 알 수 없는 중동풍의 음악. 다합으로 들어갈 때와 달리, 나가는 길의 기분은 오묘하고도, 자꾸 울컥울컥 목이 멨다.
다합을 떠나는, 다합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짐을 싸서 택시에 모두 싣고, 빠진 물건이 없는지 집을 쭈욱 둘러봤다. 세 달간 내 집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다합에서의 옥탑방 문을 마지막으로 닫고서야 떠난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제 그 문을 나서면 다시 그 방으로 들어갈 일이 없음을 그제야 확신했다. 마지막이 오지 않을 거라고 나도 모르게 기대했던 내 믿음이 깨졌다. 모든 순간이 그렇듯 다합에서의 생활에도 야금야금 마지막은 다가왔고, 그것을 비로소 마지막 순간에야 깨달았다.
여행 중 우연히 만난 여행자의 영상을 보고 순식간에 프리다이빙에 빠져버린 남편의 뜻에 따라 들어온 마을이었다.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 어떤 사람이 새로 다합에 들어왔는지 모두 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을인 다합. 바다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는 것 외에 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이 마을은 낡은 추억 속의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었다. 바람이 부는지, 파도가 치는지, 바다 수온이 따뜻한지, 그래서 오늘은 스노클링을 할 수 있을지가 다합 살이 초미의 걱정거리이자, 관심사였다. 또는, 한국인이 운영하던 '초이앤리' 빵집의 오늘의 빵이 무엇일까 정도.
매일같이 들어가서 이제는 어디에 무슨 물고기가 사는지 알 정도로 친숙한 앞바다 배너피쉬베이(Bannerfish bay)와, 치명적으로 예쁘지만 스노클링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일가든(Eel garden). 남편의 프리다이빙 강습을 따라 종종 가던 블루홀. 세 달이나 있으면서 미처 가보지 못한 아일랜드까지. 이 조그마한 마을에 뭐 그리 할 것이 있다고, 세 달을 살고 나와서 나는 만족보다 미련을 더 가득 품에 안고 나왔다.
사람들과 만나면 주고받던 실없는 농담, 어느새 부터인가 매 끼니 함께했던 옆집 부부와 또 다른 오빠, 선택권도 별로 없으면서 어떻게든 맛있는 걸 먹고자 머리 굴리며 고민했던 저녁 메뉴, 별 보러 종종 가던 베두인 카페.
별것도 아닌 것을 별것으로 만드는 다합의 힘은 위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