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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나의 새벽별 May 17. 2022

[나의 해방 일지]가 준 해방

평범함의 욕망

"난 궁금한 건 하나밖에 없었어.
나 뭐예요? 나 여기 왜 있어요?
50년 후면 존재하지 않을 건데 이전에도 존재했고,
이후에도 존재할 것 같은 느낌.
내가 영원할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에 시달리면서도 마음이 어디 한 군데도 한 번도 안착한 적이 없어."


"인간은 다 허수아비 같아.
자기가 진짜 뭔지 모르면서 그냥 연기하며 사는 허수아비.
어떻게 보면 건강하게 잘 산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모든 질문을 잠재워두기로 합의한 사람들일 수도.
'인생은 이런 거야'라고 어떤 거짓말에 합의한 사람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여기 왜 왔을까?'

사는 내내 틈틈이 고민했다. 아니 공상에 빠졌다고 해야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아마 답을 절대 찾을 수 없는 저 질문들이 때로는 너무 괴로워서 덮어놓고, 묻어두고, 숨겨두고, 막아두기도 했었다. 절대로 새어 나오지 못하게.

그러나 살다가도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예고 없이 막을 새도 없이 나를 뚫고 분출했다. 그러면 난 또 하염없이 생각에 빠져든다. '여긴 어디인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지겹고도 지겹게 반복되는 활화산을 잠재울 방법 같은 것을 찾아본 적도 있으나 그건 죽은화산이 되어야만 가능할 일이다. 살아있는 동안은, 살아있는 내내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


이 드라마가 나에게 준 선물은 11,12화였다. 갈대가 가득한 동산을 오르면서 미정이 했던 말들은 나에게 해방처럼 쏟아 내렸다.


나는 이런 질문들을 잠재우지 못하니까 건강하게 잘 살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깨달음. 그것은 불행하거나 혹은 행복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 다른 모양의 삶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냥 나 인 것. 그저 나의 삶인 것.




미정이 자신의 삶은 지겹도록 평범하다고 할 때, 구 씨는 말한다.


"평범은! 같은 욕망을 가질 때... 그럴 때 평범하다고 하는 거야."


늘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그것이 욕망이라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한 채로. 사람들과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평범하고 싶었으니까 나는 한순간도 편안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평범하다 :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

온전히 같을 리가 없는 개개의 인간들이 모두 다 다른 길은 걸어가는 게 인생인데, 평범하다는 말이 과연 삶이라는 단어에 어울리기는 하는 말일까. 각자가 가진 인생의 실타래는 단 하나도 같을 수가 없다. 실의 길이도, 색도, 굵기도 다 다르다. 실타래가 감긴 모양도 꼬인 정도도 모두 다르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미정이고, 인생도 미정이다.






어제 짝꿍에게 물었다.


"자기는 평범하게 살고 싶어?"

"응."


"나도 그렇다고 이제껏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아. 그래서 평범하게 안 살려고. 그건 원래가 불가능한 일인 것 같아."

"으응?"


"나 이제 평범하지 않게 살 거라고~!"


"X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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