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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나의 새벽별 Jul 08. 2022

엄마의 둥지

진정한 독립에 대하여

오늘 반장선거를 나가는 둘째에게 결과에 신경 쓰지 말고 준비한 것 맘껏 펼치고 오라고 말했다. 당선되든 안되든 계속 도전하는 네가 이미 충분히 자랑스럽다고.(참고로 둘째는 선거에서 매번 낙방하여 한 번도 임원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불쑥하는 말.

"내가 혹시라도 반장 돼서 힘들다고 하더라도 나 탓하지 마."

엄마가 나가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엄마는 무엇이 잘못되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신들에게 책임을 추궁한다는 것이다.

순간, 머리에 벼락 맞은 느낌이 들었다.

육아의 목표는 자립이라 생각하여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많이 주었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본인이 지도록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양육태도가 아이들을 더 두렵게  건가. 책임질 것이 두려워 시작조차 해보지 않는 아이가 되어버린 것인가. 나는 잔소리하고 탓하는 엄마로 인지되어 버린 건가.

엄마인 나는 뒤에서 묵묵히 있다가 힘들 때 위로해주고, 나아갈 때 응원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잔소리하고, 부정적인 색안경을 끼고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로 전락해있었다니... 충격적이고 슬펐다.


얼마 전 세미나에서 나에게 훅 들어와 터졌던 말이 생각났다.

'인간이 독립적 존재라는 것은 환상이라고.' 

인간은 서로 의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다만 스스로가 젊고, 힘이 있고, 건강할 때는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자만하는 것일 뿐이라고.

나는 독립이라는 허구의  환상에 빠져있었던 걸까.


살면서 후회가 남을 때도 있고, 미련이 생길 때도 있다. 아쉬움에 탄식할 때도 있고, 자책이 심해지면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 될 때도 있다. 어른인 나도 그런 날들이 수없이 많다. 하물며 아이는 오죽할까.

아이가 원해서 선택하고 행동했더라도 후회할 수도 있고,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 실패하고 원망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어떤 말을 건네는 엄마이고 싶은가...


삶이 뜻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와서 맘 놓고 실컷 울다 갈 수 있게 하자.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길로 걸어가더라도 믿어주고 지지해주자. 

훗날 어른이 된 아이가 한 번씩 들러 편안하고 포근히 쉬다 갈 수 있는 둥지가 되자. 그 따뜻함과 사랑으로 자기 삶을 다시 훨훨 살아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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