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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룡 Mar 27. 2022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옌롄커

두 번째로 읽은 옌렌커의 소설, 그를 금서 작가로 만들었던 그 문제작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다.

어딘가를 지나다가 본 영화 광고 중에 문득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와서, 응? 소설 아냐? 하면서 봤더니 역시나, 옌롄커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였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소설을 읽어보기로 했다.

영화는 선정적인 장면으로 광고를 한 모양인데, 선정적인 내용이 있긴 하지만 소재에 불과하다.

소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중국에서 국공내전이 있은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때, 국공 내전에서 공을 세운 어느 사단장 휘하의 한 사단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군인이 되어야만, 공산당에 들어가야만, 간부가 되어야만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당시 중국 사회에서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훌륭한 공산당원은 실상 어떤 모습인가를 보여준다. 옌롄커는 이 작품을 소개하며 "구호"나 "단체"보다는 "인간"과 그 사랑을 중시해야 한다고 했다. 비록 중국 사회를 배경으로 그렸지만 세상 어디에나 있는 이야기라고 하면서.


취사병 우다왕

우다왕은 시골 출신으로, 본래라면 시골에서 평생 정해진 작업을 하며 살아야 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운 좋게 시골 인민공사 대장의 눈에 띄어 그의 추천으로 군에 입대했고, 공산당원이 되고 간부가 되어 가족을 도시로 옮겨 살게 하겠다는 각서를 쓴 후 그 딸과 결혼했다. 그의 목표는 오직 하나,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모습을 보여 간부가 되고 가족을 도시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마침 일은 힘들지만 승진이 빠른 취사 분대에 자리가 나자, 그는 인사권이 있는 지도원의 어린 아들과 열심히 놀아준 덕에 취사병이 되고 공산당에 들어가고 사단장 사택의 취사를 맡게 되었다. 비록 아직 간부는 못 되었지만 요리 솜씨로 표창을 받기도 한, 나름대로 훌륭한 공산당원이요, 군인이었다.


사단장 부인 류롄

간호병으로 일하면서 마오쩌둥의 어록을 달달 외는 적극분자였던 그녀는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온 사단장 눈에 띄었다. 얼굴도 예쁘고 마오쩌둥 어록도 달달 외는 그녀에게 반한 사단장은 곧 그녀를 둘째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무려 스무 살 가까이 터울이 지지만, 그래도 사단장이니까 그 부인이 되는 것은 곧 사단장이 누리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단 하나, 남자로서 할 일을 못한다는 것 빼고는.

그래서 류롄은 젊은 취사병이자, 사단장이 일하러 나간 후 사택에 남은 자신 외의 단 한 사람인 우다왕에게 추파를 던지기 시작했다. 


사단장

사단장이 남자 구실을 못하게 된 것은 아마도 전쟁 상처 때문일 것이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한때 사단장과 함께 일했거나 사택 공무원이었던 몇몇 뿐. 사단장이 첫 부인과 이혼한 까닭이 무엇인지 명확히 말해주진 않지만, 그녀 역시 다른 남자를 만났고(어쩌면 사택 공무원들을 불러 '복무(서비스)'를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돈보다는 사랑이라는 결론에 이르러 사단장과 헤어졌을 것이다. 물론 사단장이 내쫓았을 수도 있다. 사단장은 이 사실을 숨긴 채 류롄과 결혼했고, 아마도 결혼한 첫날, 그 사실을 고백하며 류롄에게 무릎 꿇고 빌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시작됐고, 이미 유사한 일을 겪은 사단장은 취사병 우다왕에게 특별한 분부가 없는 한 절대로 2층에 올라가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

류롄의 유혹을 받은 우다왕의 반응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오랫동안 가족과 떨어져 사는 젊은 남자가 아름다운 여자로부터 유혹당했을 때 보일 법한 기대감과 흥분 속에, 이 사실이 발각되면 자신의 인생이 끝장 나리라는 불안감이 뒤섞인 반응. 그래서 씻고 오라는 류롄의 명령에 향기 나는 비누까지 써 가며 싹싹 씻고도 막상 불 꺼진 침실에 이르자 두려움에 휩싸여 그 자리를 벗어나고 말았다.

처음에는 우다왕도 그런 유혹을 이겨낸 자신을 자랑스레 여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도원을 만나 "어쩌자고 사단장 부인의 눈밖에 났느냐, 당장 취사병을 바꿔달라는데 어쩔 테냐"는 호통을 듣자 정신을 차리고 다시 류롄을 찾아가 한 번 더 기회를 달라며 싹싹 빌었다.


류롄은 그에게 기회와 타락을 함께 가져왔다. 순진한 공산당이던 우다왕이 사실은 당이 '인민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리그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마저 그 타락한 길을 가기로 한 것이다. 류롄은 자리가 나면 우다왕을 간부로 발탁해 가족을 도시로 옮길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고, 우다왕은 열심히 류롄에게 복무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아내와의 결혼 생활에서 사랑을 느끼지 못했던 우다왕이 류롄과의 관계에서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에게 류롄은 진짜 아내 같고, 진짜 누나 같고, 진짜 가족 같았다. 간부가 되지 않아도 좋고, 가족을 도시로 옮기지 않아도 좋으니, 류롄과 결혼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그 곁에서 평생 시중들고 싶어진 것이다. 

그런 그와 달리 류롄은 훨씬 현실적이었다. 류롄이 우다왕을 사랑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사단장과 헤어질 생각이 없었던 건 확실하다. 어쩌면 애초에 모든 것을 계획해놓고 우다왕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 아무리 시대가 옛날이라지만, 두 달 가까이 그렇게 지내면서 임신을 대비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도 그 상황을 자연스레 받아들인 것을 보면 단순히 섹스뿐만 아니라 정말 임신을 원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예상하지 못한 결말

이렇게 해서 뜨겁지만 짧은 관계는 끝났다. 우다왕은 류롄이 시킨 대로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내내 그녀를 잊지 못했다. 결국 한 달 반 만에 사단을 찾아갔더니, 사단 전체가 발칵 뒤집혀 있었다.

아마도 류롄이 임신한 것을 알게 된 사단장이 남자 구실을 못하는 자신과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아내의 비밀을 숨기기 위해 사단 전체를 해체하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자존심 때문일 수도 있고, 류롄을 정말 사랑했을 수도 있다. 하여간 류롄과 우다왕의 짧은 사랑 덕분에 사단에 속한 수많은 군인들이 뜻하지 않게 외지로, 궁벽한 타향으로 떠나게 되었다. 류롄이 우다왕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해.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해"라고 한 걸 보면, 이 모든 사달이 그녀로부터 일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불륜 관계의 끝은 뻔하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아무리 잘 맞고 아무리 서로 사랑해도 결국은 파국으로 끝날 것이라고, 사단장에게 들켜 경을 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말은 전혀 뜻밖이었다. 경을 친 사람은 사단장 사택의 비밀을 알고 있으면서 감추었거나 떠들었던 사람들,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병사들이었다. 우다왕은 간부는 되지 못했지만, 원하던 대로 가족과 함께 도시로 이사해 그 도시의 공장장을 맡았다. 류롄은 여전히 사단장의 부인이었고, 나중에 사단장이 성 사령관이 되자 역시 사령관 부인이 되어 상류층의 자리를 누렸다. 사고를 저지른 두 사람은 손해 본 것이 전혀 없다.


지도원이 우다왕을 붙잡고, 류롄에게 잘 말해서 자신 만은 사단에 남겨달라고 할 때 알려준 그의 처지는 우다왕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역시 인민공사 부장의 사위가 되어 군대에 들어갔고, 아내를 군대에서 일하게 해 주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결혼할 수 있었다. 당시 평범한 중국 인민들 사이에 흔히 있는 일이었을까. 어떻게든 바닥에서 벗어나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은 욕망은 인간으로서는 너무 당연한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마오쩌둥의 구호는 사실 "높은 사람에게 잘 보여라"는 말과 같다. 그래서 눈에 띄고 그래서 승진하면 삶이 달라지는 세상이었으니까. 비록 겉으로는 공산당에 충성하고 모두를 위해 나 한 몸 희생하리라는 열정으로 가득한 것 같지만, 그 속을 열어보면 너나할 것 없이 입신양명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멋진 말로 포장해도 결국 그 목적은 하나다. 하지만 누가 그들을 욕할 수 있을까? 우리도 그렇게 똑같이 살고 있다. 그 자리가 공산당이 아닐 뿐. 옌롄커가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옌롄커란 작가

옌롄커의 소설은 두 편 읽었는데 어쩜 이렇게 느낌이 다른지 모르겠다. <딩씨 마을의 꿈>에서는 어린아이 시점에서 단순하고 가볍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짧은 문구의 반복으로 시적인 느낌을 준 반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길고 아름다운 묘사와 비유가 넘치고, 심리 묘사가 세밀하다. 작가 이름을 몰랐다면 같은 작가가 쓴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을 것 같다. 참 글솜씨가 좋은 작가요, 서문만 봐도 호감이 생기는 작가다. 

옮긴이 말을 읽어보면, 중국 문학계를 이끌고 있는 이들이 옌롄커를 포함한 5,60년대 생 작가라고 한다. 그 전의 작가들은 혁명을 당연히 받아들여 현실과 맞지 않고, 그 후에 태어난 작가들은 개방 이후 중국의 변화를 표현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전쟁 이후 정치적 혼란을 겪은 세대와 그 후 풍요로운 삶을 누린 세대의 표현 방식이 얼마나 다른가. 

나는 비록 풍요 시대를 더 많이 누린 세대지만, 아픔이 있던 시대의 시와 소설에는 감동받지만, 개인의 표현이 주를 이루는 요즘 시와 소설에는 감동을 받지 못한다. 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이 나쁘다기보다는 세대에 따라 표현력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아픈 시대를 다룬 옌롄커의 소설이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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