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역과 단어 치환, 의역과 오역

나는 번역가다 #4

by 와룡

번역에 관한 책을 읽어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직역과 의역이다. 번역학 사상 수없이 논의된 문제고 아직도 답이 없는 문제. 답이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 양쪽이 각기 필요할 때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하나가 옳고 하나가 틀리지 않기 때문에 번역가의 스타일과 판단에 따라 적절히 사용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직역과 의역의 범위는 워낙 넓지만, 가장 간단하게 단어를 옮길 때를 생각해보자. 영어에서 흔히 사용되는 예로, “piece of cake”가 있다. 이걸 “케이크 한 조각"이라고 옮기면 직역이고 “식은 죽 먹기"라고 옮기면 의역이다. 일각에서는 “piece of cake = 식은 죽 먹기"가 성립하므로 “식은 죽 먹기"는 직역이라는 말도 있다. “케이크 한 조각"이라고 옮기면 의미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오역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출처가 필요한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한편으로는, 영미권에서 “케이크 한 조각"이라는 말을 아주 쉬운 일이라는 의미로 쓴다는 것을 알릴 수 있으므로, 문화의 전파와 표현 범위의 팽창이라는 측면에서는 “케이크 한 조각"이라 옮기는 것도 틀리지 않는다고도 한다. 역시 일리가 있다. (출처가 필요한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이러니 직역이니 의역이니 하고 오랫동안 논의가 끊이지 않았겠지.

그 위대한 번역가들이 오랫동안 논의하고도 답이 나오지 못했는데 난들 무슨 주장이 있을까? 그저, 둘 다 틀리지 않았으니 직역이냐 의역이냐를 가지고 번역 품질을 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다만, 한글날이 있는 10월이기에 굳이 주장하자면, 우리말에 맞지 않는 어색한 표현은 번역 품질의 지표에 들어가야 한다. 직역이든 의역이든 우리말로 읽을 때 어색하면 잘 되었다고 할 수 없는 번역이다. 이따금 우리말로 어색한 번역을 놓고 본래 언어(원시어)의 느낌을 잘 살린 것이라 하는 글을 보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요즘 우리말 교육이 참 형편없나 보다는 생각이 든다.


번역계에 몸담고 있다 보면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어 실력이 아니라 우리말 실력이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원문이 아무리 좋고, 그 원문을 아무리 잘 이해해도 이를 우리말로 표현할 줄 모르면 제대로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를 옮겨 맨부커상을 받은 데보라 스미스를 생각해보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

물론, 외국어 실력이 좋아야 한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단지 그만큼 우리말에도 뛰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나무위키를 즐겨본다. 정보를 주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그 문체가 좋아서다. 나무위키에서 “의역" 항목을 찾아보다가 이런 말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한참 웃었다.


문제는 의역을 '뜻을 이해하기 힘들거나 직역으로 하려니 매우 이상한 문장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몰라 뭉뚱그려서 번역하는 행위'로 알고 있는 경우다. 하지만 이러는 경우는 의역이 아니라 그냥 오역이다.
(중략)
간혹 웹상에 번역된 자료를 보게 될 때 뜻을 다 잡아내지 못했다는 의미로 "(오역이나) 의역이 포함되어 있다".라는 사족이 붙어있을 때가 있는데, 이것은 '의역'이라는 단어를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중략)
한국 웹에서 번역을 하는 많은 역자들은 표현 아래에 녹아있는 의미체계를 잡아내서 옮기는 수고를 거치지 않고 그냥 문장을 한국어로 '치환하기'만 하곤 한다. 여기에 흔히 '원문의 느낌을 살리기 위한다'는 이유가 붙기도 하는데, 지나친 직역투가 살리는 건 원문의 느낌이 아니라 원문의 형태일 뿐이다.

나무위키(https://namu.wiki/w/%EC%9D%98%EC%97%AD)에서 발췌


나도 저기서 말한 것과 유사한 반응을 몇 번 보았기에 왜 저렇게 느끼는 것인지 고민했다. 떠오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그 언어의 콘텐츠가 막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아마추어 번역 콘텐츠가 훨씬 많아서 우리말이 어색한 아마추어 번역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둘째, 그 언어의 콘텐츠가 좋아서 배우기 시작한 입장이므로 번역된 결과물에서 그 언어를 유추할 수 있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첫째 이유를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아마추어 번역은, 나무위키에서 말한 것처럼, “오역이나 의역이 있으니 주의하세요"라는 경고문을 달곤 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직역이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직역도 아니고 그냥 단어 치환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어디선가 비난이 들려올 것 같아 미리 말하면, 당연히 아마추어 번역 중에도 돈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상당한 수준의 결과물도 있다. 여기서는 그런 일부 케이스 말고 흔히 보는 케이스를 말하는 것이다.

나도 아마추어 시절이 있어서 명확히 기억하는데, 경험이 부족한 아마추어였을 때는 A라는 원시어를 사전에 나오는 B라는 도착어로 바꾸지 않고 B’로 바꾸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을 느껴서 단어를 사전에 나오는 말로 치환하는 것이 가장 마음이 편했다.

결단코 아마추어 번역물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어떤 언어로 된 콘텐츠가 초반에 도입될 때는 그런 단어 치환 형 번역물이 널리 알려지기 마련이고, 이 때문에 초기 독자들은 그런 치환형 번역투가 그 언어의 특징을 살린 제대로 된 번역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런 번역투가 그 언어의 특징을 잘 살렸다고 느끼는 것은 앞서 말한 두 번째 이유 때문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단어를 그대로 치환했기 때문에 그 언어를 얼마쯤 배운 사람이라면 번역된 콘텐츠를 보고 원문을 유추할 수 있는데, 이를 원문을 잘 살린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앞서 예를 들었던 “piece of cake”를 번역문에 썼다고 생각해보자.


“그 사람 속이는 것쯤이야 내겐 케이크 한 조각이라고!”

우리나라에 영어가 흔히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이 문장을 본 대부분의 독자는 어리둥절하겠지만 어느 정도 영어를 배운 사람은 자연스럽게 원문을 유추하고 의미를 파악했을 것이다. 그에 더해, “그래, 영어는 식은 죽 먹기를 저렇게 쓰지. 내가 영어 공부를 제대로 했어!”하고 뿌듯해할 수도 있다. 그런 독자가 보기에 저 문장은 제대로 된 번역문이며, 영어적(?)인 느낌을 풀풀 풍기는, 원문을 잘 살린 글로 느껴질 것이다.

지금이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워낙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많은 독자가 저 번역을 어색하다고 여기리라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다.


두 가지 이유라고는 했지만, 그 이유의 근간에는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한 언어’라는 공통점이 있다. 막 알려졌기 때문에 치환형 번역투가 옳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런 오해는 초반에 그 언어의 콘텐츠를 접한 독자들에게 국한되기도 한다. 나중에 그 언어가 널리 알려져 우리말과 외국어에 능숙한 사람이 옮긴 멋진 번역문이 많아지고 그 번역문을 접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그런 오해는 사라질 것으로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나는 지금 아마추어의 번역은 직역이고 프로의 번역은 의역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추어도 의역할 수 있고 프로도 직역할 수 있다. 직역과 의역의 개념은 그 범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주장이 있을 수 있어서 내가 딱 뭐라고 정의를 내릴 수 없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의역이 잘못된 것이 아니므로 "잘 모르니까 오역과 의역이 있을 수 있어요"라는 경고는 "잘 모르니까 오역이 있을 수 있어요"로 바꿔주십사 하는 것이고, 우리말로 어색한 것을 원문의 분위기를 살린다는 이유로 억지로 옳다고 주장하지 말아 주십사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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