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번역가다 #3
나는 돈을 받고 일하는 프로 번역가다.
하지만 내 입으로 “나는 번역가예요” 라고 말한지 아주 오래되지는 않았다. 나는 그 언어의 전공자도 아니고, 취미로 일하다가 프로가 되었기 때문에 보란듯이 번역가라고 말하기가 자신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태도가 내가 번역한 글을 돈 주고 보는 독자들에게 몹시 미안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나이 어린 프로 선수가 “아이고, 저는 아직 아마추어에요. 아직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니까 조금 못해도 이해해주세요.”라고 하면 관중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참 겸손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아직 어리니까 좀 봐주자고 생각할까? 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저 선수는 책임감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 이런 사람이야"하고 오만을 부려야 한다는 게 아니라 돈을 받았으면 떳떳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 부족하다는 말로 스스로를 숨기고, 빠져나갈 핑계를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취미로 번역하는 사람들의 글에 ‘나 정식으로 배운 적 없어. 그래서 오역 많아. 이해해 줘"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는 것을 종종 본다. 그런 말을 붙여놓으면 한결 마음이 편하다. 행여라도 누군가 틀린 거 아니냐고 따져묻더라도 “그러니까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했잖아"하고 방어막을 칠 수 있으니까.
정식으로 판매되는 물품에 저런 경고문을 붙일 수는 없으니, 프로로 데뷔하는 순간 그 방어막은 사라지는 셈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날것 그대로 생생한 비난을 듣기를 각오해야 한다. 그게 아프디 아픈 프로의 세계다. 실수를 하지 않으면 제일 좋지만, 사람으로서 정말 단 하나도 실수를 하지 않는 게 가능할까? 내가 스트레스 받을 때 가끔씩 찾아가보는 황석희 번역가의 블로그에도 실수를 절대 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은 천재거나 오만한 사람이라고 했으니까.
이따금, 취미로 번역을 할 때가 그리워지곤 한다. 마감과 자기 불만족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그래서 책임감을 다 던져버리고 싶을 때 그런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일단 직업이 되고 나면 다시 취미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돈 때문만은 아니다. 뭐랄까, 한 번 점령했던 고지에서 내려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 이런 걸 명예욕이라고 하던가?
그래서 꾸역꾸역한다. 최대한 스트레스를 줄이려고 하면서.
내 경우에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은,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번역하는 것이다. 몇 번인가, 내 취향이 아닌 작품을 번역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하는 내내 고역이었다. 내용에 공감이 가야 바쁜 와중에서 재미라도 찾는데, 도대체가 주인공이 왜 저러는지 이해도 안 가는데 재미는 무슨 재미! 다행스럽게도, 나는 취미로 할 때부터 장르 소설만 번역했기 때문에 들어오는 요청도 장르 소설이 대부분이었다. 자기계발서 번역 요청이 많이 왔더라면 아마 벌써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른다. 김택규 번역가의 《번역가 되는 법》을 보면 그분도 소설이 좋아서 그 분야 위주로 일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역시, 다른 번역가들도 힘든 작업 중에서 자신의 즐거움을 간직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나도 요즘은 요청 들어오는 작품을 무작정 번역하지 않고 내 취향이 아닌 작품을 거절하거나 내 취향의 작품을 먼저 제안하려 노력한다.